우리 그냥 자유하게 해주세요!😩
도저 회사를 때려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현직 백수 민우회 회원 활동 열심히 했으니 이제 네임드 회원이라고 해주세요.
실험실에서 느꼈던 고립감👤
자유롭게 전공 선택을 해서 공대에 왔다. 필수 교양 수업으로 듣게 된 전기공학과의 실험 수업에서, 같은 조의 한참 선배가 몇 살이냐며 말을 걸어왔다. 스무 살이라고 대답하자 이런저런 대화 끝에 연애 이야기가 나왔고, 갑자기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다른 조에 있던 A를 데려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그는 얼떨결에 통성명하였으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학생에게 자신을 소개하려는 친구의 의도를 깨닫고는 크게 당황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 수업에서 A는 나에게 와서 사과했고, 혹시 불편하면 조를 바꿀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악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몰라 어느 조로 바꿀 수 있을지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둘러보았지만, 그 실험실 전체에 여자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꿀 수 있는 조가 없었다. 그 때의 당황스러움과 고립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대의 문턱 앞에서 멈춘 자유🔬😖
그 이후로 전기공학과의 여성 친구들과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자기가 문을 열기 직전까지 전기공학과 강의실에는 원래 여자가 없다고 했던 내 친구를 오랫동안 생각한다. 2025년도 기준 자연대의 여성 비율은 48.7%이지만, 공대의 여성 비율은 22.2%에 그친다. 앞서 언급한 일화에서 내가 수업을 들은 전기공학과의 여성 비율은 당시 기준 10.8%이다. 취직 때문에 이공계를 선택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진짜 취직이 잘되는 학과에는 진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근처의 사람 중 ‘여성은 수학을 못한다’, ‘여성은 기계를 다루지 못한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여성들이 정말로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공대에 많이 갈 것 같은데, 거기는 분명 나 혼자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나처럼 레고를 사달라고 했다가 혼나는(“여자애가 무슨!”) 친구들이 아직도 많아서? 배터리 공장에 다니는 친구의 상사가 항상 “공장에는 여자를 안 뽑아야 한다.”라는 말을 여자인 내 친구 앞에서 버젓이 해대는 걸 아이들이 눈치챘나? 내가 살던 지역에 과학중점학교가 3곳 있었는데 2곳은 남고이고 공학이었던 1곳은 기숙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진학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을까? 어떤 집단에 여성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으면 여성 차별이 너무 심해서 다들 떠난 거라고 생각한다는 전 직장 동료의 말에 사람들은 다들 동의할까? 그렇게 해서 떠난 사람들은 자유 의지로 떠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자유에 관한 개인적인 성찰💭
내 첫 직장은 충격적으로 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나보다 3년 먼저 들어온 선배는 입사 당시 면전에서 “여자애들은 이 일 못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들으며 업무에서 배제를 당하는가 하면, 멀쩡한 여자화장실을 남자화장실로 바꿔놓아서 번번이 복도 끝까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이상한 윗사람들이 이상한 기준으로 뽑아놓은 직원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떤 직원은 여성인 자신이 공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면 공대는 대체 왜 나왔단 말인가. 그런 비상식적인 사람들 틈 속에 있으면 혹시 나도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는지 자아 성찰을 하게 된다.
나도 공과대학 소속이기는 하지만 공대에서 소위 “남성적”으로 여겨지는 학과들(전기/전자, 기계)에는 원서를 쓰지 않았었다. 내 전공은 공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데, 흥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내 흥미는 어디에서 왔나? 온전히 내가 자유롭게 규정한 것이 맞기는 할까?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처럼 고립감을 느낄 친구들을 실험실에 버려두고 나온 걸까? 출처도 불분명한 흥미를 위해서? 이런 의문들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끝맺으며
전기공학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성별에 편향되게 생각하는 사람일까?’를 고민했던 고등학생 나를 떠올리며,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의심하고 망가뜨리게 만드는 환경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같이 하는 모든 친구들이 정말로 자유로워졌으면 하고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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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
회사를 때려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현직 백수
민우회 회원 활동 열심히 했으니 이제 네임드 회원이라고 해주세요.
실험실에서 느꼈던 고립감👤
자유롭게 전공 선택을 해서 공대에 왔다. 필수 교양 수업으로 듣게 된 전기공학과의 실험 수업에서, 같은 조의 한참 선배가 몇 살이냐며 말을 걸어왔다. 스무 살이라고 대답하자 이런저런 대화 끝에 연애 이야기가 나왔고, 갑자기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다른 조에 있던 A를 데려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그는 얼떨결에 통성명하였으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학생에게 자신을 소개하려는 친구의 의도를 깨닫고는 크게 당황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 수업에서 A는 나에게 와서 사과했고, 혹시 불편하면 조를 바꿀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악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몰라 어느 조로 바꿀 수 있을지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둘러보았지만, 그 실험실 전체에 여자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꿀 수 있는 조가 없었다. 그 때의 당황스러움과 고립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대의 문턱 앞에서 멈춘 자유🔬😖
그 이후로 전기공학과의 여성 친구들과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자기가 문을 열기 직전까지 전기공학과 강의실에는 원래 여자가 없다고 했던 내 친구를 오랫동안 생각한다. 2025년도 기준 자연대의 여성 비율은 48.7%이지만, 공대의 여성 비율은 22.2%에 그친다. 앞서 언급한 일화에서 내가 수업을 들은 전기공학과의 여성 비율은 당시 기준 10.8%이다. 취직 때문에 이공계를 선택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진짜 취직이 잘되는 학과에는 진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근처의 사람 중 ‘여성은 수학을 못한다’, ‘여성은 기계를 다루지 못한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여성들이 정말로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공대에 많이 갈 것 같은데, 거기는 분명 나 혼자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나처럼 레고를 사달라고 했다가 혼나는(“여자애가 무슨!”) 친구들이 아직도 많아서? 배터리 공장에 다니는 친구의 상사가 항상 “공장에는 여자를 안 뽑아야 한다.”라는 말을 여자인 내 친구 앞에서 버젓이 해대는 걸 아이들이 눈치챘나? 내가 살던 지역에 과학중점학교가 3곳 있었는데 2곳은 남고이고 공학이었던 1곳은 기숙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진학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을까? 어떤 집단에 여성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으면 여성 차별이 너무 심해서 다들 떠난 거라고 생각한다는 전 직장 동료의 말에 사람들은 다들 동의할까? 그렇게 해서 떠난 사람들은 자유 의지로 떠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자유에 관한 개인적인 성찰💭
내 첫 직장은 충격적으로 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나보다 3년 먼저 들어온 선배는 입사 당시 면전에서 “여자애들은 이 일 못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들으며 업무에서 배제를 당하는가 하면, 멀쩡한 여자화장실을 남자화장실로 바꿔놓아서 번번이 복도 끝까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이상한 윗사람들이 이상한 기준으로 뽑아놓은 직원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떤 직원은 여성인 자신이 공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면 공대는 대체 왜 나왔단 말인가. 그런 비상식적인 사람들 틈 속에 있으면 혹시 나도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는지 자아 성찰을 하게 된다.
나도 공과대학 소속이기는 하지만 공대에서 소위 “남성적”으로 여겨지는 학과들(전기/전자, 기계)에는 원서를 쓰지 않았었다. 내 전공은 공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데, 흥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내 흥미는 어디에서 왔나? 온전히 내가 자유롭게 규정한 것이 맞기는 할까?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처럼 고립감을 느낄 친구들을 실험실에 버려두고 나온 걸까? 출처도 불분명한 흥미를 위해서? 이런 의문들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끝맺으며
전기공학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성별에 편향되게 생각하는 사람일까?’를 고민했던 고등학생 나를 떠올리며,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의심하고 망가뜨리게 만드는 환경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같이 하는 모든 친구들이 정말로 자유로워졌으면 하고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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