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랑하고 미워하는 너에게❤️‍🔥- 은중과 상연을 보고 생각하는 얼굴들


사랑하고 미워하는 너에게❤️‍🔥 
: 〈은중과 상연〉을 보고 생각하는 얼굴들






올해 계획: 친구들과 좋은 시간 보내기





새에겐 둥지🪹 , 거미에겐 거미줄🕸️ , 사람에겐 우정🫂 


우정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새에겐 둥지, 거미에겐 거미줄, 사람에겐 우정.” 새에게 둥지처럼, 거미에게 거미줄처럼, 인간에겐 우정이 안전하게 거할 은신처이자 돌아갈 집이 되어준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이 문장을 나는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조건 없는 환대에 가까운 우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릴 때면 곧바로 조금 난감한 기분이 된다. 이 말의 원문이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이기 때문이다. ‘man’을 사람이라고 읽으면서도 나는 이 포근한 세계로부터 비껴나 우정에 관한 말을 새롭게 발명해야 할 것만 같은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다 친구의 추천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봤다. 〈은중과 상연〉 1화에서 은중은 상연과 관계를 궁금해하는 질문에 “여자애 둘이 뭐, 지지고 볶다가 절교했다. 그게 다예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은중과 상연〉은 ‘여자애’ 둘이 지지고 볶다가 절교하고 다시 만나 내 서로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둘이 그토록 지지고 볶는 이유 중 하나는 은중과 상연이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은중이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을 상연은 가지고 있고, 상연이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을 은중은 가지고 있다. 그런 그 둘이 어째서 친구가 되었을까? 그건 당연하게도 둘이 서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로 다른 바로 그 이유로 말이다.


(▲이미지: 〈은중과 상연〉스틸컷. 어린 은중과 상연이 마주보고 있는 장면 ⓒ넷플릭스)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 있기를 결정할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2002년, 월드컵 8강 경기가 있는 날, 은중과 상연이 속한 동아리 사람들이 술집에 모여 함께 경기를 본다. 마지막 승부차기가 극적으로 성공해 모두 열광하며 기뻐하던 중, 은중은 무심코 벽에 기대 고요히 앉아 있는 상연을 발견한다. 주위의 들뜬 분위기는 멀어지고 은중의 시야에는 상연만 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다. 그것은 목격이다. 상연의 존재를 은중이 알아채고 응시하고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순간.


(▲이미지: 〈은중과 상연〉스틸컷. 월드컵 응원 중 상연이 혼자 앉아 있는 장면. ⓒ넷플릭스)


바로 전 장면에서, 은중은 동아리방에서 밤새 단 한 장의 필름을 백 장도 넘게 인화해 펼쳐 놓은 상연을 만난다. “나 인화하는 거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다.”라고 활짝 웃으며 말하는 상연을 보며, 은중은 “얘는 이길 수가 없다”라고, “상연이 옆에 있으면 내가 가진 모든 게 평범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진다.”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것을 더 멋지게 성취하여 이기고 싶은 호승심. 그리고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한 마음. 그러던 중 다시 상연을 만난 것이다. 상연이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 나눈다. 그러다 ‘짜증나게도’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라 인정해 버린다.


그러니까 애초에 둘이 지지고 볶을 수 있는 이유는 은중과 상연이 서로의 다름을 무릅쓰고 함께 있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질문하고 때로는 그 질문조차 유보하면서, 소리치고 부딪히다가도 다시 보듬으며 서로의 곁에 완강히 있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상연이 자기의 이유로 은중의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은중이 “다시는 너를 이해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때 둘의 관계는 끊어지고, 더이상 지지고 볶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은중과 상연의 끊어진 관계는 상연이 평생 끝끝내 감추고자 했던 자신의 취약함을 은중에게 모두 드러내고 함께 있어 주길 구할 때, 그리고 은중이 그에 응답할 때 다시 갱신된다.


(▲이미지: 〈은중과 상연〉스틸컷. 은중과 상연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 ⓒ넷플릭스)


그러니까 다시금 나는 우정의 기초가 우리의 같음이 아니라 다름에, 온전한 이해가 아니라 이해를 추구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정은 서로의 시간을 같이 겪는 현존 속에 있다고 믿는다. 은중이 “답이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너의 시간을 같이 겪을게.” 결심한 것처럼.



〈은중과 상연〉을 보며 생각난 얼굴들 🖇️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은중과 상연〉을 보며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떤 친구는 한 달에 두세 번은 만나고 어떤 친구는 올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때때로 친구는 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곁에 있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갈림길에서 ‘이럴 때 ○○(이)라면 어떻게 할까?’ 묻는 질문과 함께. 재미있게 봤다는 영화나 책을 부러 찾아보는 호기심과 함께. 우정을 알게 된 이래 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통해 나의 바깥에도 세계가 존재함을 배웠다. 내가 갖지 않은 낯선 세계를 궁금해 하고 질문하고 기꺼이 한 발 내디뎌 보면서. 

은중과 상연이 네가 나를 만들었다 말 할 때,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니/상학은 사진 한 장에 1/60초 동안의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일이라 말한다. 우정은 어쩌면 서로를 알아채고 마주보고 함께 거한 시간을 채집해가는 일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을 생각한다. 올해 초, 광화문 앞 넓은 잔디에 앉아 자기를 소개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던 수많은 밤을. 거기엔 무척 많은 사람이 있었고, 때로는 스크린에서도 너무 먼 자리에 앉는 바람에 무대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 떨어져 있어도 어쩐지 나는 그곳에서 무언가 공명하며 서로를 연결해 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서,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그 연결감 속에 단지 있고 싶어서 매번 이끌리듯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가 달랐고, 그 다름으로 때로는 싸웠고 또 어쩌면 미워했지만, 그럼에도 같은 자리, 같은 시간 속에 거하며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주었다. 이것 또한 우정이 아닐까?



 우정 - 서로가 있어도 되는 세상의 집 🏡 


1화에서 은중은 상연과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며 말한다. “나는 쓴다. 이것이 어떤 이야기가 되든 두려워하지 말자.” 삶이 그렇듯 은중이 쓴 이야기는 아마도 시작할 때는 알 수 없었던 모양으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은중이 ‘쓴다’고 했던 말을 ‘산다’로, ‘나’를 ‘우리’로 바꿔보고 싶다. 우리는 산다. 이것이 어떤 이야기가 되든 두려워하지 말자. 삶은 종종 두렵고 외로울 것이다. 잘 해내고 싶지만 늘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에서 나의 시간을 같이 겪어주는 친구와 이해를 놓지 않는 우정이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그가 아주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이름과 얼굴을 아는 친구이든 동시대 서로를 지지하는 익명의 얼굴들이든 말이다. 그러니 밤이 추울수록 새가 둥지를 짓듯이, 거미가 거미줄을 잇듯이 우리의 우정을 엮자. 마치 본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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