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우리의 망한 우정을 추억하며, K에게✉️


우리의 망한 우정을 추억하며, K에게✉️ 




김해솔(@kimhaepary)

소설 ‘노간주나무’와 동화 ‘고양이가 되고 싶은 강아지’를 출간했습니다.

1인 출판사 ‘해파리’의 대표이자 밴드 ‘새소년’의 팬입니다.







K에게


이 편지를 쓰는 내 오른손 중지에는 아직도 네가 남긴 흉터가 남아 있다. 일곱 바늘쯤 꿰맸던가. 이상하게도, 그때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대신 시간이 지나 이 흉터를 볼 때마다 뒤늦게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우린 여느 성숙한 사람들처럼 서서히 멀어진 게 아니라 단번에 서로를 끊어냈기 때문에, 상처가 더 컸던 것 같다. 뭐가 잘못됐던 걸까. 어디서부터 틀어졌던 걸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잘 모르겠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아서, 이제는 계산을 멈춘다. 아마 이 흉터를 볼 때마다 평생 널 떠올리겠지. 망한 우정의 흔적으로서. 


넌 내가 살면서 만난 첫 번째 페미니스트였다. 동시에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뻔뻔했다. 너는 내가 그어놓은 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 뛰어넘어 내게 왔다. 내가 너에게 뻔뻔하다고 하면, 넌 내게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다고 했다. 겉으론 서로를 구박했지만, 사실 우린 서로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 서로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래서 서로가 필요했던 걸지도. 우리는 너무 달랐기에, 사람들은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걸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나는 속으로 그 사람들을 비웃었다. 



나는 네가 읽는 책을 읽고, 너는 내가 보는 영화를 봤다. 너와 나 사이엔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았다. 진지한 이야기부터 시시껄렁한 이야기까지. 신기하게도 너와는 못 할 이야기가 없었다. 우린 각자가 자신이어서 싫은 점들을 솔직히 털어놨고, 바로 그 구석을 서로 기꺼이 좋아해 줬다. 나는 널 통해 내가 조금은 빛나는 구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너도 그랬겠지. 그렇게 너라는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내 우주는 조금씩 더 넓어졌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너무 달랐던 걸까, 아니면 너무 가까웠던 걸까. 널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도망쳤다. 그때 나는 네 말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의 뻔뻔함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실은 너도 날 받아주고 있었겠지만, 나는 내가 널 일방적으로 받아주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처음엔 흉터를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나서 짜증이 났다. 사실은 너에게 마음을 열었던 나에 대한 자책이었다. 하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일을 하니 손가락을 볼 일이 많았다. 글이 막히면 습관처럼 흉터를 만져본다. 레이저로 없애버릴까.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게도 그날은 흉터를 보고 다른 게 떠올랐다. 그리고 뜬금없이 웃음이 터졌다. 어떤 노래가 떠올라서였다. 네가 자주 부르던 노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오~ 피가로~’


엉망진창인 음정으로 매번 그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던 널 떠올릴 때마다 이상하게 웃음이 터졌다. 난 아직도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완곡하는 사람을 너 말고는 본 적이 없다. 듣기엔 좋을지 몰라도, 부르기엔 어렵고 까다로운 노래니까. 하지만 너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 뒤로 흉터를 볼 때마다 네가 불렀던 이상한 노래들이 플레이리스트처럼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너의 뻔뻔함은 가끔 날 열 받게 했지만, 대체로 날 웃게 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넌, 정말 반짝였다. 아직도 노래방에서 퀸을 부르던 네 모습이 떠오르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넌 언제나 너 자신이었다. 누가 대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네가 좋았다.


언젠가 나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내 흥에 취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단 한순간만이라도 너처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밴드를 만드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네가 남긴 게 흉터뿐만이 아니라는 걸 안다.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 어쩌면 지금 같은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을 지도.


K,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이건 ‘망한 우정’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고백하건대 두 단어의 정의를 모르겠다. 망한 건 뭐고, 우정이라는 건 또 뭘까. 지금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관계가 망한 걸까. 다른 그 어떤 친구와도 너처럼 지내본 적이 없다면, 넌 나에게 우정이 아니었던 걸까. 넌 나에게 대체 뭐였을까.


시간이 흘러서야 그런 정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관계에는 정해진 이름이 있는 게 아니라,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다면 우리는 망한 우정이 아니라, 그저 유일했던 어떤 관계였던 것 같다. 흉터와 플레이리스트를 동시에 남긴.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지금처럼 그 둘 다 갖고 싶을 거야.


어디선가 여전히 그 노래를 부르는 널 상상하며.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길.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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