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영지/회원·성평등네트워크팀 요즘 매일 아침 라이트 테라피를 하고 있어요. 계절성 우울에 도움이 됩니다!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
엄마가 말하길 유년시절부터 나는 크게 울거나 화내거나 기뻐하지 않는 무던한 아이었다고 한다. 기질적으로 무던해서인지 어릴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우울하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하지 않았다기보다 우울한지 몰랐던 것 같다. 마음에 무거운 추가 매달려있듯 먹먹할때도 남들도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5년 전부터 여러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힘든 기억을 반추시켜 예전의 말과 행동을 자책하고 후회하며 늦게 잤다. 그리고 2년 전 정신적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심각한 불안과 무기력, 우울이 찾아왔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정신건강에, 더 심각해진 정신은 나를 침대로 몰아넣고, 감자칩 하나로 끼니를 때우게 했다. 하루에도 분노, 우울, 불안, 자책이 왔다 갔다 했던 나는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삼순이의 대사처럼 마음이 딱딱해지기를 바랐다. 감정이 사라진 로봇처럼 이런 슬픔을 느끼지 못했으면 했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딱해진 마음에는 대가가 있었다. 기쁨과 즐거움도 앗아간다는 대가가. 안 그래도 평소에 잘 기뻐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데 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불가능했다. 인간이 무슨 로봇? 말도 안 되잖아.
흘려보내기 연습 〰️ 〰️
나는 딱딱한 심장을 가지기보다 힘든 감정이 밀려와도 삼키고 소화해서 나중에 하나의 경험과 추억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불안과 우울이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가는 병원의 의사가 명상을 권유했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했다. 내가 자주 한 명상은 떠오르는 내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챙김 명상,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것을 떠올리는 감사 명상이었다. 명상 가이드에선 떠오른 생각을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라는 멘트가 자주 나왔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듯 잡지 말라고 하니 더 흘려보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에 잡을 지푸라기가 명상밖에 없었다. 그냥 1년간 주 6회 정도 꾸준히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생각과 그로 인한 감정을 직면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멀리서 열심히 지켜본 덕택이다. 직면하면 더 힘들고 상처 받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슬프고 화는 나되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렇게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이를 흘려보내면서 서서히 내면이 아닌 나의 몸, 나를 둘러싼 풍경, 소리들을 감각하기 시작했다.

(▲ 이미지. 넷플릭스 '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 썸네일 ⓒ넷플릭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
주위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단단한 오해였다) 우울을 잊는 것인지, 삼켜 소화해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러다 보니 운동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생겼다. 그래서 야구를 정말(!) 열심히 했다. 주에 2~3일은 했다. 광대에 공을 맞아 멍이 들어도, 설거지를 못 할 정도로 손목이 아파도 계속했다. 대회에도 나갔다. 이때 세상은 참 넓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세미 크로스핏과 농구, 풋살도 했다. 몸을 움직이니 생각이 사라졌다. 반추하기도 전에 지쳐 잠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버티기 힘들 때는 신체가 나를 받쳐준다는 걸 알게 됐다. 감정을 잘 다루고 싶다는 목표와는 다르게 생각을 마비시키는 운동을 하면서 ‘회피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주변에 사람이 보이고 신체감각이 깨어났다. 가끔 난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외로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더 불안해하고 우울해지곤 했다. 그런데 팀 스포츠는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줬다.

(▲ 이미지. 야구 글러브가 풀밭 위에 놓인 사진 ⓒ영지)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감동을 준다
명상과 운동은 내가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이를 흘려보내주고, 내면이 아닌 주변 풍경과 사람에게 주의를 쏟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감정을 잘 삼키고 소화하는 사람이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다만 생각과 감정을 내안에 가둬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힘들거나 슬픈 일에 더 잘 울고, 기쁜 일엔 더 웃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땐 더욱 큰마음을 담아 고마워하는, 온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에 나는 힘들어도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 했다. 나의 감정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고, 무언가를 감당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맘껏 표현해보면서 알았다.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불안과 우울을, 기쁨과 슬픔을 같이 삼키고 소화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단 걸.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과 감정을 가둬두지 말자.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감동을 준다.

(▲ 이미지. 군산 여행에서 찍은 사진. 건물 지붕 위에 꽃이 활짝 핀 목련 한 그루가 보인다.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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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회원·성평등네트워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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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
엄마가 말하길 유년시절부터 나는 크게 울거나 화내거나 기뻐하지 않는 무던한 아이었다고 한다. 기질적으로 무던해서인지 어릴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우울하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하지 않았다기보다 우울한지 몰랐던 것 같다. 마음에 무거운 추가 매달려있듯 먹먹할때도 남들도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5년 전부터 여러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힘든 기억을 반추시켜 예전의 말과 행동을 자책하고 후회하며 늦게 잤다. 그리고 2년 전 정신적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심각한 불안과 무기력, 우울이 찾아왔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정신건강에, 더 심각해진 정신은 나를 침대로 몰아넣고, 감자칩 하나로 끼니를 때우게 했다.
하루에도 분노, 우울, 불안, 자책이 왔다 갔다 했던 나는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삼순이의 대사처럼 마음이 딱딱해지기를 바랐다. 감정이 사라진 로봇처럼 이런 슬픔을 느끼지 못했으면 했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딱해진 마음에는 대가가 있었다. 기쁨과 즐거움도 앗아간다는 대가가. 안 그래도 평소에 잘 기뻐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데 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불가능했다. 인간이 무슨 로봇? 말도 안 되잖아.
흘려보내기 연습 〰️ 〰️
나는 딱딱한 심장을 가지기보다 힘든 감정이 밀려와도 삼키고 소화해서 나중에 하나의 경험과 추억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불안과 우울이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가는 병원의 의사가 명상을 권유했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했다. 내가 자주 한 명상은 떠오르는 내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챙김 명상,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것을 떠올리는 감사 명상이었다. 명상 가이드에선 떠오른 생각을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라는 멘트가 자주 나왔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듯 잡지 말라고 하니 더 흘려보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에 잡을 지푸라기가 명상밖에 없었다. 그냥 1년간 주 6회 정도 꾸준히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생각과 그로 인한 감정을 직면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멀리서 열심히 지켜본 덕택이다. 직면하면 더 힘들고 상처 받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슬프고 화는 나되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렇게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이를 흘려보내면서 서서히 내면이 아닌 나의 몸, 나를 둘러싼 풍경, 소리들을 감각하기 시작했다.
(▲ 이미지. 넷플릭스 '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 썸네일 ⓒ넷플릭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
주위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단단한 오해였다) 우울을 잊는 것인지, 삼켜 소화해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러다 보니 운동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생겼다. 그래서 야구를 정말(!) 열심히 했다. 주에 2~3일은 했다. 광대에 공을 맞아 멍이 들어도, 설거지를 못 할 정도로 손목이 아파도 계속했다. 대회에도 나갔다. 이때 세상은 참 넓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세미 크로스핏과 농구, 풋살도 했다. 몸을 움직이니 생각이 사라졌다. 반추하기도 전에 지쳐 잠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버티기 힘들 때는 신체가 나를 받쳐준다는 걸 알게 됐다. 감정을 잘 다루고 싶다는 목표와는 다르게 생각을 마비시키는 운동을 하면서 ‘회피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주변에 사람이 보이고 신체감각이 깨어났다. 가끔 난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외로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더 불안해하고 우울해지곤 했다. 그런데 팀 스포츠는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줬다.
(▲ 이미지. 야구 글러브가 풀밭 위에 놓인 사진 ⓒ영지)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감동을 준다
명상과 운동은 내가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이를 흘려보내주고, 내면이 아닌 주변 풍경과 사람에게 주의를 쏟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감정을 잘 삼키고 소화하는 사람이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다만 생각과 감정을 내안에 가둬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힘들거나 슬픈 일에 더 잘 울고, 기쁜 일엔 더 웃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땐 더욱 큰마음을 담아 고마워하는, 온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에 나는 힘들어도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 했다. 나의 감정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고, 무언가를 감당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맘껏 표현해보면서 알았다.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불안과 우울을, 기쁨과 슬픔을 같이 삼키고 소화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단 걸.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과 감정을 가둬두지 말자.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감동을 준다.
(▲ 이미지. 군산 여행에서 찍은 사진. 건물 지붕 위에 꽃이 활짝 핀 목련 한 그루가 보인다.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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