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ing💬]“왜 그렇게 행동했나요?” 질문이 잘못됐습니다, 판사님.: 연극계 원로배우 오OO 성폭력 사건을 조력하며

☃️눈사람/성폭력상담소
닉네임을 바꾸려 했으나 사주와 잘 맞는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쓰고 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상담소에서 일하다 보면 한 사람을 설명하는 말이 자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20년 나는 민우회 사무처에서 상담소로 자리를 옮겼다. 상담소에서는 사건의 단계와 역할, 상황에 따라 상담원, 조력자, 신뢰관계동석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상담소를 찾는 여성들도 비슷하다. 흔히 피해자로 불리지만, 어떤 순간에는 내담자이고 생존자이며 당사자다. 재판이 시작되면 주요증인이나 참고인이 되기도 한다. 피해를 고발한 이후의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을 설명하는 말은 계속 달라지고 겹쳐 쌓인다.

 

연극계 원로배우 오○○ 성폭력 사건은 내가 상담소에 온 뒤 가장 오래 함께한 사건이다. 2021년 10월 첫 상담을 시작했고, 2026년 현재까지 조력을 이어오고 있다. 상담, 고소, 수사, 기소, 재판 1, 2심까지 햇수로는 어느덧 6년이 흘렀고, 현재는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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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연극계 성폭력 사건 기자회견 사진)


첫 상담에서 피해자는 사건과 그 이후의 시간을 함께 이야기했다. 존경하던 선배 배우와 함께 일하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당시 피해자의 일기에는 사건의 구체적인 묘사보다 존경하던 선생님에게 겪은 불쾌한 경험을 쉽게 정의하기 어려웠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사건이 형사 절차로 넘어가면서 사건을 지원하는 변호사와 함께 피해자의 기억과 기록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담실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은 법정에서 설명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듣는 경험을 하곤 했다. 상담실에서 한 번, 변호사 사무실에서 다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또 한 번. 상담에서는 당시의 상황과 피해자의 위치,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감정적 어려움이 먼저 이야기되었고, 법률 문서와 재판에서는 일시와 장소, 기록과 증거, 사건의 순서와 행위가 중심이 되었다.

나는 그 사건의 많은 시간을 법정 방청석에서 보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를 앞두고 변론을 다시 열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냈던 날이다. 이미 1심에서 충분히 진술했던 피해자는 다시 법정에 서야 했다. 재판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연극계 내 다른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까지 질문했다. 이에 검사와 피해자 측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하자 재판부는 “왜 부적절한가요?”라고 되물으며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보다 사건 이후의 행동을 문제 삼는 질문들이 반복되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피고인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나요.” “일기장에 가식적인 내용을 적기도 하나요.” 나는 잠시 메모하던 펜을 멈췄다. 이 질문이 무엇을 심판하려는 것인지 생각했다. 범죄 사실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감정과 태도인지.

법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말은 “(피해자인데) 왜 그랬어요?”였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가 사건 이후 가해자에게 이모티콘이 섞인 문자를 보냈고, 선물을 주고받았으며, 가해자가 출연한 연극을 보러 갔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공격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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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연극배우 오00 성폭력 사건 공판 대응 기자회견 사진)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도 연극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무대에 서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가해자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그 경험을 스스로 이해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것 역시 즉각 문제제기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가해자는 연출가가 초빙한 원로 연극배우였고 피해자는 첫 연극 경력을 시작한 인턴 배우였기 때문이다. 당시 피·가해자의 관계, 위치의 차이, 속한 공간의 환경 등에 따라 피해 이후의 감정과 행동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법의 경계를 넘어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애초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은 가해자임에도, 재판에서는 종종 그 비합리적인 상황에 놓인 피해자에게 합리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민우회 상담소는 판례 평석회 ‘심판의 대상은 피해자다움인가?’를 열었다. 월요일 저녁이었지만 4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 우리가 확인한 것은 단지 한 판결의 문제가 아니었다. 법정에서 들었던 질문들이 다시 꺼내졌다. 그 질문이 왜 문제인지, 예술계의 위계적 관계가 판단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상담기록이 법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었는지, 그리고 ‘피해자다움’이라는 오래된 기준이 여전히 재판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항소심 판결을 비판하는 자리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왜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지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한숨을 쉬었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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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연극계 성폭력 사건 판례 평석회 사진)

 

2026년 민우회 상담소는 기존 판례를 모니터링하고, 수사 사법 과정에서 정형화된 ‘피해자다움’에 관한 편견이 얼마나 피해 사실을 지우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에 이를 돌파해 낸 당사자와 조력·연대의 경험, 그리고 ‘피해자다움’을 분명히 배척한 판례와 같은 대항적 언어와 사례들을 모아 가시화하고 이를 수사사법기관에 전달하는 활동을 이어간다.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다움’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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