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사무처장
최근 구례에 다녀왔다. 구례의 모든 계절을 겪어보고 싶다.
삶은 절대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함께가는 여성〉 활동가 다이어리 꼭지에 글을 쓴다. 여성단체 활동가 근속 20년 경험과 고민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쓸 때 맑은 시간에 정갈하게 입고, 반듯하게 앉아서 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퇴근해서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술 한잔 걸치고, 낡은 잠옷을 입고 쓴다.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지난 20년이 그랬다.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졸업을 유예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운동권 대학생의 삶은 막막했다. 그래서 2년 정도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딸깍거리는 볼펜 소리에도, 독서실 문이 여닫히는 소리에도 모두가 예민했던 그 시절 ‘난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 걸까?’ 끊임없이 질문이 들었다. ‘내 몫을 하면서 나는 살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매일 자랐다. 그러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마음먹고 노량진 생활을 정리했다. 사실 영화 제작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지면을 빌어 그때의 바람을 처음 말해 본다. 오마이갓!) 그래서 영화 제작사에 채용 지원 서류를 열심히 들이밀었다. 하지만 학점이 변변치 않았기에 흔한 토익·토플 점수도 없었기에 취업은 쉽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학점과 토익·토플 점수는 둘째 치더라도 나는 영화업계 경력이 전무했다.) 그러던 와중 대학 시절 내내 나만 보면 “우리 소희는 여성운동 해야 하는데!” 이 말을 늘 하던 친구가 여성단체 활동가 채용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곳이 민우회였다. 민우회는 나의 첫 번째 직장(?)이자, 20년 차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운동권 대학생 시절을 마무리할 때, ‘다시는 운동권으로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20년 차 여성단체 활동가로 살고 있다.


(▲이미지: 2018년 안희정 성폭력사건 무죄 판결이 났던 날 사진. 판결에 대한 분노와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외치며 포기하지 않는 우리를 보면서 감동이 뒤섞였던 인상깊었던 순간.)
부러움과 질투 속에서도 매일 출근한다.🌿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이 부러웠다. 급기야는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쓰고 부르는 아이유를 질투하기도 했다. 안식년 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되돌아보면 그때 많이 힘들었나 싶기도 하고, 매우 어이없기도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꾸준하고 성실하게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민우회에 출퇴근하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한해를 결산할 때마다 ‘올해도 결국 계획한 것을 못 했군.’ ‘역시 하다 말았군.’ 씁쓸해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한해를 민우회에서 동료·회원·내담자들과 함께 채우고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매해 큰 뿌듯함이었다. 사무처에서 9년, 성폭력상담소에서 10년, 그리고 2026년 사무처장을 새롭게 결심하면서 지난 시간을 틈틈이 되돌아보았다. 장기근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일기장에 적어보기도 했다. 민우회에서 활동하면서 드라마틱한 성장은 아니지만 한해 한해 조금씩 성장했다. 민우회는 늘 새로운 도전을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활동가 오이의 조직 생활 체크리스트’를 활동 나침반으로 삼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슬프고 괴롭고 꺾이기도 했다.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동료들은 나의 모자람을 기다려주고, 나의 못남을 직면하게 하고, 또 부딪히고 깨지면서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지난 20년 동안 민우회에서 많이 배우고 조금씩 성장했다.


(▲이미지: 전 민우회 활동가 오이의 조직생활 체크리스트 이미지)
알 수 없는 미래, 도전장, 다짐. 그리고 출근🪻
그리고 지금 나는 2026년 새로운 도전장을 받은 것 같다. “내가 민우회에서 배운 것을,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동료들과 회원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총회 날 사무처장 임명 소감을 준비했지만 다음 순서인 사업계획 발표에 마음이 쫓겨 제대로 소감을 말하지 못했다. 그때 다 말하지 못한 소감을 다시 적어 본다. “사무처장이라는 역할을 앞으로 차차 익혀가겠지만 지부활동가, 본부활동가, 연대단체 활동가, 회원들, 각종 기관과 연결되는 자리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연결되는 사람으로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염려되지만, 사랑하는 동료들을 믿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탐색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상상하며, 두려움 없이 실천해나가겠습니다. 적절한 관계 거리 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동료들과 회원들에게도 나대보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도전장을 꼭 쥐고, 다짐을 기억하고 곱씹으며, 관계의 한복판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내일도 출근해보려고 한다.


(▲이미지: 책상에 앉아있는 바람의 뒷모습. 사진 촬영_혜영)
💫바람/사무처장
최근 구례에 다녀왔다. 구례의 모든 계절을 겪어보고 싶다.
삶은 절대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함께가는 여성〉 활동가 다이어리 꼭지에 글을 쓴다. 여성단체 활동가 근속 20년 경험과 고민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쓸 때 맑은 시간에 정갈하게 입고, 반듯하게 앉아서 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퇴근해서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술 한잔 걸치고, 낡은 잠옷을 입고 쓴다.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지난 20년이 그랬다.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졸업을 유예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운동권 대학생의 삶은 막막했다. 그래서 2년 정도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딸깍거리는 볼펜 소리에도, 독서실 문이 여닫히는 소리에도 모두가 예민했던 그 시절 ‘난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 걸까?’ 끊임없이 질문이 들었다. ‘내 몫을 하면서 나는 살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매일 자랐다. 그러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마음먹고 노량진 생활을 정리했다. 사실 영화 제작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지면을 빌어 그때의 바람을 처음 말해 본다. 오마이갓!) 그래서 영화 제작사에 채용 지원 서류를 열심히 들이밀었다. 하지만 학점이 변변치 않았기에 흔한 토익·토플 점수도 없었기에 취업은 쉽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학점과 토익·토플 점수는 둘째 치더라도 나는 영화업계 경력이 전무했다.) 그러던 와중 대학 시절 내내 나만 보면 “우리 소희는 여성운동 해야 하는데!” 이 말을 늘 하던 친구가 여성단체 활동가 채용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곳이 민우회였다. 민우회는 나의 첫 번째 직장(?)이자, 20년 차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운동권 대학생 시절을 마무리할 때, ‘다시는 운동권으로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20년 차 여성단체 활동가로 살고 있다.
(▲이미지: 2018년 안희정 성폭력사건 무죄 판결이 났던 날 사진. 판결에 대한 분노와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외치며 포기하지 않는 우리를 보면서 감동이 뒤섞였던 인상깊었던 순간.)
부러움과 질투 속에서도 매일 출근한다.🌿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이 부러웠다. 급기야는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쓰고 부르는 아이유를 질투하기도 했다. 안식년 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되돌아보면 그때 많이 힘들었나 싶기도 하고, 매우 어이없기도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꾸준하고 성실하게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민우회에 출퇴근하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한해를 결산할 때마다 ‘올해도 결국 계획한 것을 못 했군.’ ‘역시 하다 말았군.’ 씁쓸해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한해를 민우회에서 동료·회원·내담자들과 함께 채우고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매해 큰 뿌듯함이었다. 사무처에서 9년, 성폭력상담소에서 10년, 그리고 2026년 사무처장을 새롭게 결심하면서 지난 시간을 틈틈이 되돌아보았다. 장기근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일기장에 적어보기도 했다. 민우회에서 활동하면서 드라마틱한 성장은 아니지만 한해 한해 조금씩 성장했다. 민우회는 늘 새로운 도전을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활동가 오이의 조직 생활 체크리스트’를 활동 나침반으로 삼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슬프고 괴롭고 꺾이기도 했다.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동료들은 나의 모자람을 기다려주고, 나의 못남을 직면하게 하고, 또 부딪히고 깨지면서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지난 20년 동안 민우회에서 많이 배우고 조금씩 성장했다.
(▲이미지: 전 민우회 활동가 오이의 조직생활 체크리스트 이미지)
알 수 없는 미래, 도전장, 다짐. 그리고 출근🪻
그리고 지금 나는 2026년 새로운 도전장을 받은 것 같다. “내가 민우회에서 배운 것을,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동료들과 회원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총회 날 사무처장 임명 소감을 준비했지만 다음 순서인 사업계획 발표에 마음이 쫓겨 제대로 소감을 말하지 못했다. 그때 다 말하지 못한 소감을 다시 적어 본다. “사무처장이라는 역할을 앞으로 차차 익혀가겠지만 지부활동가, 본부활동가, 연대단체 활동가, 회원들, 각종 기관과 연결되는 자리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연결되는 사람으로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염려되지만, 사랑하는 동료들을 믿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탐색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상상하며, 두려움 없이 실천해나가겠습니다. 적절한 관계 거리 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동료들과 회원들에게도 나대보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도전장을 꼭 쥐고, 다짐을 기억하고 곱씹으며, 관계의 한복판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내일도 출근해보려고 한다.
(▲이미지: 책상에 앉아있는 바람의 뒷모습. 사진 촬영_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