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ing💬]우리, 여기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당신에게

🪽구구/성평등미디어·반차별팀

친구를 따라 비둘기를 좋아하게 됐다. 비둘기 사진이 사진첩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안 반대 국민 동의 청원서’를 작성한 30세 여성을 비롯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쓴 서간문입니다.



비둘기를 좋아한다고요? 🕊️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려요. 저는 민우회 반차별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구입니다. 비둘기를 좋아해서 구구예요.

 

조금 뜬금없지만, 제가 비둘기를 좋아하게 된 경위를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발단은 친구가 비둘기를 좋아하게 됐다는 고백(?)을 한 그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친구와는 취업 준비로 등록했던 영어학원에서 처음 만났어요. 친구는 인간에게 시니컬한 대신, 동물과 나무에게는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비둘기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하더라고요. 왜냐고 묻자 친구는 비둘기가 불쌍하다고 했어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존재만으로 사람들이 더러워하며 발길질하고, 무서워하며 소리 지른다고요. 비둘기의 날갯짓 한 번에 사람들이 혐오를 숨길 생각조차 없이 표출한다고요. 그리고 친구는 구구구구… 비둘기가 속삭이듯 덧붙였습니다. 꼭 나 같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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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회색 보도블럭 위로 비둘기 한 마리가 걷고 있는 모습)

 

그 이후 우리 사이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친구가 제게 자신이 논바이너리1라고 말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벙쪘습니다. 저는 그때 ‘논바이너리’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어요. 무슨 뜻인지 찾아본 뒤에야 친구의 말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친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 속에서 내게 이런 고백을 털어 놓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희한하게도 친구의 고백 이후,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제게 무지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됐어요. 그건 제가 잘 모르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지금 와 솔직히 털어놓자면, 부끄럽게도 정상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취준생 시기를 보내고 있던 제게 친구의 존재가 조금 낯설고 껄끄러웠던 것도 같습니다.

 

제게 취준생 시절이 그랬듯, ‘표준’이나 '규칙'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표준에 속한다는 건 곧 안전함을 의미하기에, 사람들은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 칩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두려움에 대해 ✒️


당신이 쓰신 '포괄적 차별금지법안 반대 청원' 글을 읽었어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여러 영역의 '자유'가 침해·억압당할 것이 우려되어, 슬프고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쓰셨더군요. 그 글을 읽으며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당신이 진짜로 두려워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당신이 이 사회의 좁은 표준에 딱 맞는 사람이라서, 그동안 누려온 자유를 뺏길까 봐 반대하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비슷하게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회는 타인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지 않는, '표준적인' 존재들에게만 자유를 허락하니까요. 혹시 당신 역시 그 좁은 표준의 바깥으로 밀려나 자유를 잃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을 안고 계신 건 아닐까요.


한국 사회에서 표준의 기준은 까다롭습니다. 성별, 나이, 인종, 학력, 지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아주 좁은 범위의 표준을 정하거든요. 당신의 두려움은 일견 타당합니다. 당신도 언젠가는 표준에서 벗어나게 될 테니까요.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아프게 되면, 표준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면 당신도 비둘기와 같은 곳에 서게 되겠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차별금지법은 당신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법이 아닙니다. 자유는 자원이 아니에요. 나눌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나눌수록 커지는 가치입니다. 마치 빛처럼요. 차별금지법은 표준의 몸들이 당연하게 누려온 자유를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제안이자 누군가를 배제해 온 표준 그 자체를 없애보자는 다정한 손내밂입니다.

 

비둘기는 오늘도 도시 곳곳에서 태연자약하게 땅을 쪼고, 햇빛 아래 낮잠을 자며 살아갑니다. 당신이 발길질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아도, 비둘기와 당신은 이미 같은 풍경 속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저는 제 논바이너리 친구와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당신과도 자유롭게 공존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쓰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그 자유는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우리, 여기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p.s. 이 글을 읽고 대화를 시작해 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셨다면, 반차별 팀의 활동에서 만나면 좋겠어요!

- 〈선 넘는 페미니즘〉의 라운드 테이블, 페미니즘 x 젠더 페스티벌에서 자유와 공존에 대한 확장된 상상력을 나눠요. (지금 진행 중인 활동 살펴보기) 바로가기

-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활동에서 차별금지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요. (앞서 진행한 〈차별금지법 밑줄긋기〉 활동 살펴보기) 바로가기


논바이너리: 여성/남성과 같은 이분법적이지 않은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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