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다이어리📧]페미니즘을 만난 나의 세계는 무한대가 된다

🌬️새벽바람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 콘텐츠 추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편.
좋아하는 걸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너를 만나 내 삶은 무한대가 되었어.”📖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The Fault in Our Stars)』에서, 헤이즐은 어거스터스의 추도사로 이런 말을 남겼다. 벌써 십 년도 더 전에 본 작품이지만 여전히 이 문장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마주한다는 건 정말로 내 삶이 확장되는 일이니까.

 

첫 번째 만남, 무대를 횡단하는 은빛 물고기🍀


또문((사)또하나의문화. 1984년 창립된 여성주의 대안문화 동인그룹으로 현재는 비영리단체로 운영 중.)에서 진행한 여성 청소년 대상 프로젝트, ‘무대를 횡단하는 은빛 물고기’는 내 10대의 가장 큰 분기점이지 싶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여성주의를 알게 됐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나는 프로젝트에서 일반 중고등학교 학생뿐 아니라 대안 학교에 다니거나 홈스쿨링을 하던 친구, 학교 밖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로드스쿨러(길에서 배움을 얻는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말)까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연극을 만들었다. 기획팀을 포함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자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평어를 쓰고, 이름 대신 내가 정한 별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문화를 경험하면서 나의 세상은 좀 더 다채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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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연극 ‘빈 밤 설치다’의 무대 위 장면들.


두 번째 만남, “성차별에 강경히 반대하는 것이 ‘메갈’이라면 우리는 ‘메갈’이다.”✒️


10대에 은빛 물고기들을 만나고 페미니즘에 굉장히 긍정적인 감정만 가득했음에도, 20대의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페미니즘 책을 보고,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인데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조심스러움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앞으로 나서서 외치고 행동하는 활동가라는 인식이 강했다.

생각이 바뀐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어느 날 벼락같이 깨달았다기보다는 천천히 확립되었으니까. 그럼에도 계기를 꼽아본다면 자유인문캠프(중앙대학교를 기반으로 한 청년, 대학(원)생이 직접 기획하는 인문학 플랫폼. 공개강연, 연속강좌, 책읽기 모임 등을 진행.)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페미니즘 세미나, 그리고 2018년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민우회의 성명은 한동안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이었다. 성차별을 반대하는 게 메갈이라면 우리는 메갈이라는, 가부장적 사회를 파괴하는 게 반사회적이라면 우리는 반사회적인 사람들이라는 말이 얼마나 통쾌하고 후련하던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민우회는 나의 마음을 명확한 언어로 대변해 주는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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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8년 3월, 게임업계 노동권 침해 및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 민우회 성명 이미지.  


페미니즘 세미나는 2016년 여름에 시작해 코로나가 횡행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로즈마리 통의 『21세기 페미니즘 사상』과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시작으로 페미니즘은 물론 비건, 노동, 장애, 퀴어 등 여러 주제를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고민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사람들, 떠난 사람들, 새롭게 만난 이들의 얼굴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들은 내가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 이후 더는 모이지 않게 되며 잠정적으로 끝나버린 바람에 가끔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또 괜찮은 이유는, 우리의 방향이 같다면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느슨한 연결감을 믿어서이지 않을까.

(실제로 2025년 서울퀴어퍼레이드의 민우회 부스 앞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친 적 있었다. 나에게 작년 퀴퍼는 완전히 만남의 장이었다.)

 

세 번째 만남,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남긴 편지를 볼 때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단순히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 겪는 일이라고 느낀다.

민우회에서는 그런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러 활동과 소모임 속에서, 함께 읽고 몸을 움직이며 속엣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활동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내 일상에 남아 있다.

특히 FC호랑이로 시작해 FC호걸이 된 풋살팀은 지금도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일이 바빠 자주 참여하진 못해 아쉽지만, 필드를 뛰다 보면 남자애들 틈에서 홀로 공을 차던 어린 내가 떠오르곤 한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a31899db45b8d.png(사진설명) 친선 경기를 끝내고, 풋살팀 FC호걸 멤버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돌아보면 내가 만난 페미니스트들은 꾸준히 내가 서 있는 세계를 조금씩 넓혀주었다. 여럿이 연극을 만들어 보자고, 함께 책을 읽자고, 같이 공을 차자고. 하나의 만남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한 발짝을 내딛게 했다.

그래서 나에게 ‘페미 파워’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한 사람의 세계를 무한대로 만들어주는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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