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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2월호 [여성공감I] 일과 가족을 위한 정책의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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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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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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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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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147
여성공감 I
호주제 폐지 이후…
일과 가족을 위한 정책의 모색
지난달에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상정되었다. 물론 올해 안에 민법개정안이 국회에서 무사히(?) 통과될 것이라는 낙관은 어렵지만 올해 안 되면 내년, 내년에도 안 되면 후년, 하면서 이전 보다는 다소는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사회든지 가족영역의 변화는 가장 늦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가족을 전통과 자국 문화의 뿌리라고 생각하며, 가족의 변화를 정체성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호주제 폐지의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이제는 폐지 이후를 준비할 때이다.
최근 나타난 출산율 하락, 인구의 노령화, 2인 소득 가구의 증가, 이혼․재혼의 증가, 한부모 가족의 증가, 독신․동거 가구의 증가 등 사회 인구학적 변화는 ꡐ우리 가족ꡑ에 대해 진지한 사고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담론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가족은 사적 영역이라는 기존의 정책시각은 변하고 있으며, 가족 문제를 등한시해 왔던 ꡐ남성ꡑ들도 허둥지둥 매우 서투른 모습으로 정책의 필요를 강조하고 있으니 세상은 변해가고 있는 걸까? 출산파업 시대에 여성들의 협상력은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보여지므로 이제는 몇 가지 정리된 논리를 가지고 협상테이블에 나서야 할 때다.
여성들이 협상테이블에 나서야 할 때
첫째, 산업사회의 성별분업을 구성해 온 일과 가족의 분리(공․사 분리)가 점차 ꡐ일과 가족의 경계 약화ꡑ로 변화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노동 시간의 유연화, 비정규직화를 포함한 고용 불안정,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가구 소비의 증가 등은 남성 생계 부양자․여성 가사 및 보살핌 노동자라는 전통적 성별분업을 해체시키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 중산층에서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적극 권장되며, 바람직한 아내․어머니 역할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고로 가족 정책의 토대는 ꡐ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ꡑ, ꡐ성별 분업 이데올로기ꡑ를 약화시키는 ꡐ일하는 어머니ꡑ가 되어야 한다. 2인 소득 가구에서는 보살핌을 전담하는 아내․어머니는 불가능하므로 보육정책의 강화, 공교육의 정상화․강화, 노인 복지를 현실화 하는 등 보살핌의 사회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둘째, 가족과 성별관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대안적 가치를 정립하고 이에 맞는 제도적 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ꡐ가족의 범위ꡑ 규정은 사회 변화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제도적 개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ꡐ건강가정육성법안ꡑ과 ꡐ가족지원기본법안ꡑ은 미래 가족에 대한 청사진이나 철학을 담고 있지 않다. 최근에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래의 가족정책이 이러한 임기웅변 식이나 임시방편적 대책으로 수립된다면 ꡐ평등을 토대로 민주적인 생활을 하는 가족공동체ꡑ라는 여성계의 염원은 무산되지 않을까 우려를 하게 된다.
셋째, 가족 정책의 방향은 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와 민주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것이라야 하며, 이를 위한 만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혈연을 기초로 한 ꡐ가족의 범위ꡑ보다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혼인, 동거, 혈연, 입양 등에 의한 2인 이상의 공동체는 가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성인 간의 관계적 결합을 다루는 혼인과 이와 유사한 관계를 규정하는 법(혼인․동거법)조항과 부모 자녀간의 관계를 다루는 법(친자관계법)조항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생활을 보장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렇게 법제도가 수정된다면 세대간, 남녀간 권위에 기초한 가부장적 가치에서 민주적 가족 가치로 변화되고, 전통적 규범과 현실 가족생활과의 괴리는 극복될 수 있다.
넷째, 21세기 일과 가족의 재편성은 2인 소득 가구를 보편화시킴으로써 개별 가족들이 소비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지만 이는 중산층에 한정된 현실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 경제구조의 재편은 국가간, 계층간 빈부의 차이를 확대 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구 당 소득의 차이는 커지고 있으며, 저소득층 가족의 더욱 심화되는 경제적 불안을 겪고 있다. 특히 ꡐ사교육비ꡑ를 포함한 소비의 증가는 저소득 계층의 삶의 기회를 제한하고 세대간 계급재생산이라는 고리를 끊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혼, 사별로 인한 여성 가구주 가족의 증가는 ꡐ여성의 빈곤화ꡑ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여성 가구주 가족을 포함한 저소득 계층 가족들에게는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는 생계부양자의 일자리 제공뿐만 아니라 자녀를 위한 탁아 지원, 학자금 지원 등의 정책이 보다 확대, 내실화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가족 친화적 정책을 확대하도록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제도의 내실과 확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나 정부에서 여성인력과 자녀양육을 통한 미래 노동력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족 친화적 정책을 여성인력을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의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여성을 포함한 질 높은 노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 한 경제학 연구에서 아동 수당, 보육 등 출산율을 높이기(또는 더 이상 하락하지 않도록 하는) 위한 정책에 드는 비용과 효과를 계산할 때 정책의 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노동력 확보와 여성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간과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에 근거한 연구결과로 볼 수 있다. 가족관련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성별 분업적 이념을 지양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육시설 규정을 ꡐ기혼여성 000인 이상ꡑ으로 하기보다 ꡐ기혼 남녀 000인 이상ꡑ으로 함으로써 부모 공동양육의 논리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가족관련정책은 양성평등이 핵심이 되어야
그러나 이러한 정책 대안들은 당장에 모두 실현되기 어려우며 상당한 정부 예산이 소요되므로, 가족관련 정책들의 수립, 집행을 위한 단계적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최근 가족 정책에 관한 담론들은 언론이나 학계, 행정 부서들에서 산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정경제부나 청와대 사회통합기획단에서는 인구고령화․저출산의 시각에서 가족 정책을 보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사회복지정책의 확대 측면에서 가족을 다루고 있고, 여성부에서는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보육과 가족 관련 정책의 수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언론에서는 낮은 출산율 현상에 대한 흥미위주의 진단과 대안을 내놓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앞으로 가족 관련 정책을 어느 학문 분야에서 주도권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고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여성과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우선 가족관련 정책은 양성 평등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출산 파업의 문제는 성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며, 노인인구의 문제와 저소득 가족의 문제는 여성빈곤과 직결되며, 평등한 보육은 미래 평등사회 실현의 관건이다. 따라서 21세기 가족 정책의 골격을 만들고 집행해야 하는 주무부서는 여성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명칭을 수정할 것인가는 앞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지만, 내년부터 보육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여성부의 가족정책 업무는 시작되고 있다.
다음으로 가족정책을 위한 장․단기 목표 및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ꡐ가족의 위기ꡑ 담론을 넘어서지 못하는 각종의 정책담론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ꡒ가족은 위기가 아니라 변화ꡓ하고 있는 것이다. 공사 영역의 경계약화, 호주제를 둘러싼 젠더 갈등, 출산파업으로 나타난 여성들의 전통적 성별분업에 대한 저항 등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보다 정교화된 논리를 토대로 장기적 목표와 단계적 실현에 대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예컨대 향후 20년을 목표로 가족정책 5개년 계획을 정부의 재원이나 기업의 욕구, 개별 가족의 다양한 욕구 등을 감안하여 단계적인 세부 목표와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가족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위한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가족 가치나 이념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문화운동의 필요성이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 호주제 폐지 운동이 무사히(?) 끝나게 된다면 대신에 새로운 가족문화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민우회의 가족과 성상담소 한가족 부모 프로그램과 여성노동 센터의 ꡐ평등한 일, 출산, 양육을 위한 프로젝트ꡑ는 유기적 통합을 통해 보다 강력한 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노동과 가족 지원 센타의 신설을 통해 가족문제 해결과 가족 문화운동에 앞장설 것인가? 앞으로 짧은 고민과 장기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재경 |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가족과 젠더, 여성 정책, 여성학 연구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근대 한국 가족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분석한 논문이 다수 있다.
저․역서로는 「가족 철학: 남성 철학과 여성 경험의 만남」(공저, 1997), 「여성 공합 교육 및 인력활용에 관한 연구」(공저, 1995),
「페미니즘과 과학」(공역, 2002), 「가족의 이름으로 - 한국근대가족과 페미니즘」(200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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