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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이진영]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돌연변이 -막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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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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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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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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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0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돌연변이 -막장드라마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한 여학생이 밀가루와 달걀세례를 받으며 조롱을 당하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학교가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부모의 재력과 잘생긴 외모가 절대 권력이 되는 F4의 질서에 순응하던 학생들이 만들어갈 사회의 미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한 여학생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동료 남학생들이 성폭행을 시도하고, 이 학원 성폭력이 결국 한 낫 백마 탄 왕자님의 구원을 위한 배경의 소재였음이 밝혀지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케 한다. 그래서 결국, 여자는 폭행교사죄로 고소해도 시원찮을 나쁜 남자의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고? 그나마 정상인줄 알았던 ‘잔디(극중 여주인공)’ 너도 역시... 최근 요일드라마(월/화, 또는 수/목 등 일주일에 두 편씩 저녁 10시대 방송되는 드라마)계에서 단연 시청률 1위를 달리는 KBS2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며 드는 불편한 생각들이다.
불편을 넘어서 우려가 들게 하는 드라마도 있다. 극 전체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없고 배신과 복수의 강박감만 조장하는 드라마. 30%를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을 보이는 SBS의 저녁 가족시청 시간대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다. 배신으로 쌓아 올린 부(富)로 졸부가 된 집안의 며느리가 된 주인공 은재. 술 먹고 애인에게 성폭행 당해 임신했으면서 결혼을 결정하더니, 악질임을 작정한 시어머니와 어이상실 남편에게 설득력 없는 구박을 당하면서도 옳다 그르다 말도 못하는 주인공의 자아가 상담치료를 받아야 할 수준 같다. 그러다가 임신한 자신을 익사시킨 남편에게 팜므파탈로 변신하여 철저하게 복수하겠다니, 이후 복수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야 할 주인공 은재도 불쌍하고 뿌린 만큼 고통을 받아야지만 죄를 사할 수 있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미래가 걱정된다. 절친한 친구인 은재의 인생이 샘난다고 친구 남편을 유혹해 아기를 낳아 키우다 급기야 함께 친구 살인을 도모하는 성격 파탄의 애리, 졸부의 자녀가 겪기 쉬운 목적상실의 인생을 살면서 성적집착을 보이는 남편 교민 등 주요 인물들의 설정이 병적이고 극단적이다. 지상파를 시청하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인물들의 상처뿐인 인생에 감정이입을 통한 대리만족을 경험하라고 하는 건 정신적인 폭력과 다를 게 없다. 고행과 같은 현실 속에서도 종교와 역사의 가르침을 통해 ‘사랑’과 ‘용서’의 가치를 놓지 않으려는 인간사의 지난 노력을 왜, 굳이, 지금, 이런 드라마로 뒤흔들려고 하는지...
이처럼 자극적인 줄거리와 인물설정으로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가 많다는 막장 드라마로 분류되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개인적인 결론은 시청률 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환경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광고판매 불황 속에서도 ‘아내의 유혹’만이 유독 광고완판을 기록했다고 떠들어대는 기사를 보니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 현재의 방송산업 구도에서 시청률은 방송광고 시장의 바로미터다. 시장의 경쟁원칙을 고스란히 지지하는 방송광고에서 시청률은 기업과 방송사의 존립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드라마가 가지는 예술의 영역을 경쟁의 논리로 휘저어 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시청률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드라마 작가와 제작진에게 자극적인 설정과 극단적인 플롯이 화학조미료처럼 확실하고 즉각적인 효과는 약속할 테지만, 드라마 장르의 문화적 퇴행과 같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솔직히 지금처럼 시청률이 드라마 제작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제작진에게 실험적인 작가정신과 작품성을 들이대며 몰아붙이기엔, 사실, 서로, 겸연쩍을 뿐이다.
만약 시청률 경쟁이 드라마 제작 조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작가와 제작진들이 자신의 작가적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상황에서 오직 작품성과 드라마의 완성도가 경쟁의 조건이 된다고 했을 때, 드라마의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성과 감성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말도 안 되는 복수혈극이 지금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든다. 물론 컬트나 비주류 문화의 감수성을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상파라는 하드웨어에 얹혀 진 일종의 역할과 책임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편적으로 전송되는 지상파에서는 분명히 방송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다. 개인의 욕구를 보다 세분화시켜 충족시킬 수 있는 케이블, 위성, IPTV 등 여타 매체가 있지 않은가. 실제로 ‘꽃보다 남자’의 비주얼이나 ‘아내의 유혹’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와 연기자들의 연기력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의 장점만으로 앞에서 지적한 지상파 방송 드라마로서 부적절한 내용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부분의 장점으로 결정적인 문제를 가리며 높은 시청률을 내는 그 점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현재의 세계경제위기를 촉발시킨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환영 받으며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의 문제점이나 부작용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반드시 다수가 지지한다고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경제 위기만큼이나 시청률 높은 막장 드라마가 걱정이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한 여학생이 밀가루와 달걀세례를 받으며 조롱을 당하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학교가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부모의 재력과 잘생긴 외모가 절대 권력이 되는 F4의 질서에 순응하던 학생들이 만들어갈 사회의 미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한 여학생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동료 남학생들이 성폭행을 시도하고, 이 학원 성폭력이 결국 한 낫 백마 탄 왕자님의 구원을 위한 배경의 소재였음이 밝혀지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케 한다. 그래서 결국, 여자는 폭행교사죄로 고소해도 시원찮을 나쁜 남자의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고? 그나마 정상인줄 알았던 ‘잔디(극중 여주인공)’ 너도 역시... 최근 요일드라마(월/화, 또는 수/목 등 일주일에 두 편씩 저녁 10시대 방송되는 드라마)계에서 단연 시청률 1위를 달리는 KBS2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며 드는 불편한 생각들이다.
불편을 넘어서 우려가 들게 하는 드라마도 있다. 극 전체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없고 배신과 복수의 강박감만 조장하는 드라마. 30%를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을 보이는 SBS의 저녁 가족시청 시간대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다. 배신으로 쌓아 올린 부(富)로 졸부가 된 집안의 며느리가 된 주인공 은재. 술 먹고 애인에게 성폭행 당해 임신했으면서 결혼을 결정하더니, 악질임을 작정한 시어머니와 어이상실 남편에게 설득력 없는 구박을 당하면서도 옳다 그르다 말도 못하는 주인공의 자아가 상담치료를 받아야 할 수준 같다. 그러다가 임신한 자신을 익사시킨 남편에게 팜므파탈로 변신하여 철저하게 복수하겠다니, 이후 복수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야 할 주인공 은재도 불쌍하고 뿌린 만큼 고통을 받아야지만 죄를 사할 수 있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미래가 걱정된다. 절친한 친구인 은재의 인생이 샘난다고 친구 남편을 유혹해 아기를 낳아 키우다 급기야 함께 친구 살인을 도모하는 성격 파탄의 애리, 졸부의 자녀가 겪기 쉬운 목적상실의 인생을 살면서 성적집착을 보이는 남편 교민 등 주요 인물들의 설정이 병적이고 극단적이다. 지상파를 시청하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인물들의 상처뿐인 인생에 감정이입을 통한 대리만족을 경험하라고 하는 건 정신적인 폭력과 다를 게 없다. 고행과 같은 현실 속에서도 종교와 역사의 가르침을 통해 ‘사랑’과 ‘용서’의 가치를 놓지 않으려는 인간사의 지난 노력을 왜, 굳이, 지금, 이런 드라마로 뒤흔들려고 하는지...
이처럼 자극적인 줄거리와 인물설정으로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가 많다는 막장 드라마로 분류되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개인적인 결론은 시청률 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환경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광고판매 불황 속에서도 ‘아내의 유혹’만이 유독 광고완판을 기록했다고 떠들어대는 기사를 보니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 현재의 방송산업 구도에서 시청률은 방송광고 시장의 바로미터다. 시장의 경쟁원칙을 고스란히 지지하는 방송광고에서 시청률은 기업과 방송사의 존립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드라마가 가지는 예술의 영역을 경쟁의 논리로 휘저어 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시청률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드라마 작가와 제작진에게 자극적인 설정과 극단적인 플롯이 화학조미료처럼 확실하고 즉각적인 효과는 약속할 테지만, 드라마 장르의 문화적 퇴행과 같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솔직히 지금처럼 시청률이 드라마 제작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제작진에게 실험적인 작가정신과 작품성을 들이대며 몰아붙이기엔, 사실, 서로, 겸연쩍을 뿐이다.
만약 시청률 경쟁이 드라마 제작 조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작가와 제작진들이 자신의 작가적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상황에서 오직 작품성과 드라마의 완성도가 경쟁의 조건이 된다고 했을 때, 드라마의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성과 감성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말도 안 되는 복수혈극이 지금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든다. 물론 컬트나 비주류 문화의 감수성을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상파라는 하드웨어에 얹혀 진 일종의 역할과 책임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편적으로 전송되는 지상파에서는 분명히 방송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다. 개인의 욕구를 보다 세분화시켜 충족시킬 수 있는 케이블, 위성, IPTV 등 여타 매체가 있지 않은가. 실제로 ‘꽃보다 남자’의 비주얼이나 ‘아내의 유혹’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와 연기자들의 연기력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의 장점만으로 앞에서 지적한 지상파 방송 드라마로서 부적절한 내용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부분의 장점으로 결정적인 문제를 가리며 높은 시청률을 내는 그 점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현재의 세계경제위기를 촉발시킨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환영 받으며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의 문제점이나 부작용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반드시 다수가 지지한다고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경제 위기만큼이나 시청률 높은 막장 드라마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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