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미디어칼럼 이진영] 가해자 중심의 성범죄보도가 던지는 문제
|
날짜:
09.07.28
|
글쓴이:
민우회
|
조회수:
1408
|
좋아요:
0
가해자 중심의 성범죄보도가 던지는 문제
어느 날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식당에 들렀다. 옆 자리에 노부모를 모시고온 중년의 딸 자녀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즐기고 계셨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자식인지라 노부모를 챙기며 어리광부리듯 대화를 나누는 아줌마들의 대화에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듣기 좋을 만큼 높은 음정의 왁자한 수다에 쏟아지는 웃음소리들. 그러다가 대화의 주제가 그 즈음 뉴스에 오르내리던 사건들로 옮아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여자가 새벽 3시에 왜 돌아다녀?!! 그러니까 죽어도 싸지!”
여태 조용하시던 할아버지의 쐐기를 박는 듯한 목소리의 한마디.
“아버지,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죽어도 된다고? 허허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굳이 노부모의 생각은 뒤집지 않겠다는 아줌마 딸이 허허로운 웃음으로 답을 마쳤다.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사건의 요지는 이랬다. 돈이 궁했던 젊은 남자 둘이 새벽 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을 지하주차장에서 성폭행하고 강도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젊은 남자들의 비뚤어진 성의식과 사회질서를 거스르는 폭력행위보다, 가부장적 신화 속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타부(taboo, 금기(禁忌)된 것)를 거스른 채 밤늦게 돌아다닌 여성 피해자의 행동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인데.....그 사건을 보도한 방송뉴스가 기억났다. 몇 분 안 되는 사건보도내용 중에서 범인이 ‘상대적으로 여성이 약하니 범행하기 쉬울 것 같아 새벽의 여성을 노렸다’고 진술한 녹취부분을 여과 없이 보도한 부분이 유독 기억에 선명하다. 그 한마디 진술 안에 범인의 성(性)과 사회(社會)에 대한 인식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로만 바라본 세상에서 여성은 약자가 되었고, 약자는 보호와 배려가 아닌 폭력의 대상이며, 특히 여성의 새벽이란 힘의 강자가 약자를 상대하기에 가장 치사스럽게 적시이며,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타부의 시간이라는 의미의 파도가 넘실대는 듯했다. 뉴스는 또 범인의 행적과 같이 가해자가 중심이 된 사건정보를 전달하기에 바빴다.
대부분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보도뉴스는 이처럼 범죄를 저지른 남성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청자들은 머리가 쭈뼛 설만큼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범죄 사실은 지나치게 자세히 알게 되지만, 반대로 사건을 통해 피해자나 그 가족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짐작 하거나 실제로 이를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정보 등 여성 피해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뉴스는 거의 접할 수 없다. 특히 왜곡된 성의식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직접화법이 여과 없이 보도될 때, 이런 남성 가해자 중심의 뉴스보도 방식이 낳는 부작용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해자의 왜곡된 성의식이 일반화된 사실처럼 보여져 여성 피해자가 거꾸로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누명을 쓰거나, 가해자에게 범행에 대한 심정적인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성폭행한 범인의 극악한 행동보다 새벽에 돌아다닌 여성의 죄를 더 크게 물었던, 식당에서 만났다는 그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초 발생한 경기도 수원 어린이 납치살해사건과 올해 초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여성연쇄살인사건(강호순 사건)은 우리사회의 안전이 염려될 만큼 위협적인 강력성범죄 사건이었다. 뉴스는 이 두 사건을 보도하면서 역시 가해자 중심의 보도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지나치게 자세한 범행 묘사나 보도내용, 화면구성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단순 정보전달을 넘어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강력성범죄에 관한 다각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뉴스는 정확한 정보 전달자이자 사회적 의식을 형성하는 매개체이며 여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가 궁극적으로 범죄의 재발을 막고 범죄를 예방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면, 매번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바와 같이 과도하게 범죄정보를 전달하여 범죄의 흉악성을 널리 알리고 공포감으로 형성된 방어적인 예방책을 설파하는 대신, 피해자와 가족, 그 주변이 성범죄로 인해 겪는 아픔과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또 상처의 치유에 관한 방법적인 여론을 형성하면서 얻게 되는 예방책도 분명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식당에 들렀다. 옆 자리에 노부모를 모시고온 중년의 딸 자녀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즐기고 계셨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자식인지라 노부모를 챙기며 어리광부리듯 대화를 나누는 아줌마들의 대화에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듣기 좋을 만큼 높은 음정의 왁자한 수다에 쏟아지는 웃음소리들. 그러다가 대화의 주제가 그 즈음 뉴스에 오르내리던 사건들로 옮아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여자가 새벽 3시에 왜 돌아다녀?!! 그러니까 죽어도 싸지!”
여태 조용하시던 할아버지의 쐐기를 박는 듯한 목소리의 한마디.
“아버지,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죽어도 된다고? 허허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굳이 노부모의 생각은 뒤집지 않겠다는 아줌마 딸이 허허로운 웃음으로 답을 마쳤다.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사건의 요지는 이랬다. 돈이 궁했던 젊은 남자 둘이 새벽 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을 지하주차장에서 성폭행하고 강도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젊은 남자들의 비뚤어진 성의식과 사회질서를 거스르는 폭력행위보다, 가부장적 신화 속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타부(taboo, 금기(禁忌)된 것)를 거스른 채 밤늦게 돌아다닌 여성 피해자의 행동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인데.....그 사건을 보도한 방송뉴스가 기억났다. 몇 분 안 되는 사건보도내용 중에서 범인이 ‘상대적으로 여성이 약하니 범행하기 쉬울 것 같아 새벽의 여성을 노렸다’고 진술한 녹취부분을 여과 없이 보도한 부분이 유독 기억에 선명하다. 그 한마디 진술 안에 범인의 성(性)과 사회(社會)에 대한 인식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로만 바라본 세상에서 여성은 약자가 되었고, 약자는 보호와 배려가 아닌 폭력의 대상이며, 특히 여성의 새벽이란 힘의 강자가 약자를 상대하기에 가장 치사스럽게 적시이며,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타부의 시간이라는 의미의 파도가 넘실대는 듯했다. 뉴스는 또 범인의 행적과 같이 가해자가 중심이 된 사건정보를 전달하기에 바빴다.
대부분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보도뉴스는 이처럼 범죄를 저지른 남성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청자들은 머리가 쭈뼛 설만큼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범죄 사실은 지나치게 자세히 알게 되지만, 반대로 사건을 통해 피해자나 그 가족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짐작 하거나 실제로 이를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정보 등 여성 피해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뉴스는 거의 접할 수 없다. 특히 왜곡된 성의식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직접화법이 여과 없이 보도될 때, 이런 남성 가해자 중심의 뉴스보도 방식이 낳는 부작용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해자의 왜곡된 성의식이 일반화된 사실처럼 보여져 여성 피해자가 거꾸로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누명을 쓰거나, 가해자에게 범행에 대한 심정적인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성폭행한 범인의 극악한 행동보다 새벽에 돌아다닌 여성의 죄를 더 크게 물었던, 식당에서 만났다는 그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초 발생한 경기도 수원 어린이 납치살해사건과 올해 초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여성연쇄살인사건(강호순 사건)은 우리사회의 안전이 염려될 만큼 위협적인 강력성범죄 사건이었다. 뉴스는 이 두 사건을 보도하면서 역시 가해자 중심의 보도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지나치게 자세한 범행 묘사나 보도내용, 화면구성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단순 정보전달을 넘어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강력성범죄에 관한 다각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뉴스는 정확한 정보 전달자이자 사회적 의식을 형성하는 매개체이며 여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가 궁극적으로 범죄의 재발을 막고 범죄를 예방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면, 매번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바와 같이 과도하게 범죄정보를 전달하여 범죄의 흉악성을 널리 알리고 공포감으로 형성된 방어적인 예방책을 설파하는 대신, 피해자와 가족, 그 주변이 성범죄로 인해 겪는 아픔과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또 상처의 치유에 관한 방법적인 여론을 형성하면서 얻게 되는 예방책도 분명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