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4-페미니즘의 도전과 젠더 정책, 그리고 여성부(강혜란/미몽)
●기획4
페미니즘의 도전과 젠더 정책, 그리고 여성부
강혜란(미몽) | 여는 민우회 공동대표
전통적으로 진보적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국가 밖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맑스주의 페미니즘은 국가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며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성 역할 분담론을 옹호할 뿐 아니라 이를 확산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급진주의 페미니즘도 국가가 가부장제와 남성의 이익을 위해 작동된다고 인식해왔다. 때문에 페미니즘과 국가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늘 국가 밖에 존재해야 한다는 인식은 일종의 딜레마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젠더정책이 늘 주변부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또 다른 모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Kantola 2006, 13; 황영주, 2011 재인용). 이에 국가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획일적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나아가 각 사회의 배경과 맥락, 주체역량에 따라 다른 선택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치적 견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젠더 관점의 주류화’를 핵심전략으로 내세웠던 UN 북경여성대회는 이러한 접근을 훨씬 더 가속화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 젠더 관점의 주류화라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던 국가페미니즘의 도구로서 국내 여성부의 성과와 한계, 여성부와 여성운동의 관계를 돌아보고자 한다. 이는 그간의 페미니즘이 도전해온 정치를 다시 한 번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페미니즘이 국가를 변화시키거나 이용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한 페미니즘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취지가 있다.
국가를 통한 페미니즘이라는 도전
국가페미니즘은 여성운동과 국가의 상호 개입과정을 의미하며, UN에서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국가기구’를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정치영역과 정책영역의 여성들이 친여성적 정체(또는 정책)의 창출을 위해서 노력하거나, 남성정치인들이 대내외적인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꾀하면서 여성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거나, 젠더주류화 및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국가기관내부에서의 페미니즘 그룹들의 활동 등으로 파악 가능하다(Krook 2005, 6-7; 황영주, 2011)”.
국가페미니즘은 대체로 진보적인 정당, 복지국가로서의 비전,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강한 여성운동, 국제기구를 통한 젠더 거버넌스, 책임자의 성별, 고유의 젠더문화 등에 영향을 받아왔다고 평가된다(이수연 외, 2016). 한국, 호주, 스웨덴의 국가페미니즘을 비교분석한 결과에서도 젠더정책은 국가 권력의 성격과, UN 등 초국가적 거버넌스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되었다(황영주, 2011). 실제로 보수정부 10년 동안 젠더정책을 집행한 여성(가족)부의 역할은 거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존재 의미에 반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페미니즘은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다른 모양을 띠기도 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여성부의 출현과 젠더정책의 제도화
여성부가 만들어진 것은 1984년 UN 여성차별철폐협약 비준, 1995년 UN 북경여성대회, 1998년 김대중정부의 출범, 1987년 이후 확장된 여성운동과 떼어서 논의하기 어렵다. UN 여성차별철폐협약은 세계 각국, 그중에서도 특히 비서구권의 여성 인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협약의 비준국들은 매 4년 마다 이행보고를 함으로써 협약 이행의 정도를 평가받고 여성인권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권고 받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국가페미니즘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95년 북경여성대회는 각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성 주류화’라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국가기구나 법, 제도 등의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기능을 하였다. 이는 여성운동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한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정권의 출현도 여성특별위원회, 여성부로 이어지는 젠더정책 기구의 출현을 도와주게 된다.
초기 여성부의 활동은 여성계의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가 이루어지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여성부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정부입법을 주도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국회와 유림을 설득하는 데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다양한 젠더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초를 잡아가는 정지작업도 이루어졌다. 여성발전기본법을 바탕으로 성평등 추진체계가 마련되었으며, 성희롱 예방, 성폭력 및 가정폭력 예방, 교육에서의 차별 금지, 비례대표 공천 할당 등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제도들이 마련되었다.
*호주제폐지는 1998년에 제4차 가족법개정안이 국회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된 이후 여성・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호주제폐지 운동이 이루어진 2005년에 가서야 이루어지게 됨. 이와 관련해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의 여성부가 여성단체와 협력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음.
이는 여성들의 경험과 요구가 여성단체를 통해 표출되고, 국가는 이러한 요구를 젠더정책에 반영하는 상호협력적 거버넌스의 실현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국회와 관료조직에 참여해 젠더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페미니스트, 즉 페모크라트의 출현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늘 취약한 위상이었던 여성(가족)부와 제도화 비판
여성(가족)부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계속 개편되었다. 김대중정부는 성평등 관련 고유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특별위원회 그리고 여성부, 노무현정부는 여성부에 보육과 청소년정책이 결합된 여성가족부로 달라졌다. 젠더정책과 보육업무 등이 통합된 여성가족부 개편 당시 페미니스트들 간의 논쟁은 매우 뜨거웠다. 가족업무가 성평등 정책과 통합되는 것은 가부장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 분담에 기초하는 것으로 여성부보다 퇴행적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반면 통합에 따른 예산 확대가 부처의 위상을 높여 심의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하였다. 내부 논의는 격렬했지만 외형적인 충돌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여성부와 가족업무가 통합되었으며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청소년 미디어정책 등이 여성가족부의 존재 의미를 흔드는 후유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젠더정책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국가 정책과 여성운동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성장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평가가 많다. 초기 페모크라트들의 활동이 남성 중심의 주류문화를 개선하고 젠더 관점을 확산하는데 기여하였는가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평가가 존재한다. 오히려 가부장주의적 질서에 순응하거나 흡수된 측면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김은경, 2006).
제도화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다각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만큼 그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러한 입법과 제도화, 개인의 한계에 대한 평가가 그동안의 국가페미니즘의 성과나 긍정적 영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동시에 고려될 필요가 있다.
김대중정부 |
노무현정부 |
이명박정부 |
박근혜정부 |
여성정책특별위원회 ->여성부 |
여성부->여성가족부 여성부+가족/보육/청소년 |
여성부 폐지 추진->축소 |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국무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 |
보수정부 하에서 여성(가족)부의 존재감 상실
커다란 전환점이 된 이명박정부는 여성부를 아예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는 거대한 반대 여론에 부딪혀 좌초되었지만, 결국 있으나마나 한 미니부처 여성부로 남게 되었다. 이는 겨우 간판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여성부는 폐지 직전까지 몰리면서 자기 역할에 대한 고민이나 재정비가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진보적 여성주의에 기반한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퇴출되거나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대자동차 성희롱 피해 노동자의 여성부 앞 1인 시위 외면(2011),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 취소(2011)등과 관련해 자기 소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비판 앞에 놓이기도 하였다.
박근혜정부는 이를 여성가족부로 다시 개편하여 양적 확장을 시도한 바 있다. 2015년에는 양성평등기본법이 발효되면서 국무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도 설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가족부 업무에서 젠더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았으며 양성평등위원회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장관을 포함해 운용인력의 젠더 마인드 부재는 성평등정책을 추진하기는커녕 논란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윤창중 대변인의 성희롱 사건(2013), 시대착오적인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2015), 굴욕적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2015)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과정에서 여성부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하였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장관이 위안부 합의을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진전된 결과라고 평가해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양성평등기본법 제정과정에서 촉발된 젠더담론의 보수성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러한 보수정부 하에서의 젠더정책은 관점의 보수화, 성평등 정책 예산의 축소 등으로 집약된다고 하겠다. 주로 저출산대책의 연장선에서 ‘일 가정 양립정책’, 보수적 성담론을 확대하는 교육과 정책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보수정부 집권 이후 현저히 약화된 국가페미니즘을 보여주는 호주의 경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주의 보수정부는 시골 및 가족 정향의 여성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젠더정책기구가 가부장주의적 문화를 강화시키는 정책을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황영주, 2011). 이처럼 정치권력의 성격 변화는 국가페미니즘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혁신적인 밑그림이 필요한 젠더정책
민우회 등 여성단체연합은 이번 대선에서 ‘낙태죄 폐지’ ‘성별임금격차 해소’ ‘여성 대표성 강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젠더 관점 성평등 추진체계 마련’를 핵심 의제로 선언하였다. 문재인 당선자는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선거운동과정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하기도 하였지만, 낙태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는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내 실망을 주었다. 그러나 출범 이후 페미니스트 인사수석 선임 등의 행보는 여성운동단체에 기대를 가지게 하는 점이 적지 않다. 향후 대통령의 마인드가 젠더정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도록 견인하는 여성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변화가 또 다른 도전의 시험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젠더마인드를 가진 여성(가족)부 장관의 선임, 남녀 동수 내각 구성 등 국정 전반을 관할하는 국무회의의 성평등성을 높이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나아가 여성(가족)부 젠더정책 담당자의 상당수를 개방형으로 공모할 수 있도록 하여 여성학자, 여성운동가의 참여를 촉진하는 실행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른 국무총리실 산하의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산하 위원회로 격상시키고 범정부 차원에서 젠더 의제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부처 간 심의 및 조정기능 확대를 도모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를 통해 복지, 노동, 교육, 인권, 건강, 미디어 정책 전반을 조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혐오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젠더 감수성 교육의 재정비, 미디어의 참여를 촉진하는 문화정책 등도 향후 주력해야 할 미션이다.
새정부의 젠더정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의 중장기 비전 속에 성평등 복지의 밑그림을 반영하는 것이다. 급속히 늘어나는 1인 가족을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삼을 뿐 아니라 가족 내에서 여성의 권리를 독립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이 설계되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를 보편적 돌봄노동자로 규정하는 성평등 복지 모델이 적극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는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복지와 노동, 돌봄의 주체이자 수혜대상이 되어야한다는 성평등 미래사회의 비전이다. 기본소득 논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기본 소득이 제도화되기 이전에 빈곤의 여성화와 기존 성역할 구조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가를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양극화, 1인 가족의 확대 등은 페미니즘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페모크라트의 출현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은경(2010). 한국 진보 여성운동의 국가참여 형태에 관한 연구 : 페모크라트의 등장과 여성운동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이수연, 김경희, 신정민(2016). 양성평등정책 수용성과 실효성 제고 방안에 대한 연구 토리(2011). 여성가족부를 위한 불편한 변명. 한국성폭력상담소 황영주(2011). 국가페미니즘 비교 연구: 스웨덴, 호주 및 한국 사례를 중심으로 |
❚ 강혜란(미몽)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페미니즘 사이에서 갈등하는 페미니스트. 미디어가 주도하는 여론의 왜곡과 성차별주의 확산을 비판하는 것이 취미이자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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