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상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이야기-일단 모여서 그 때 그 때 해야 할 말을 하는 모임(김리나/감자깡)
★회원이야기
일단 모여서 그 때 그 때 해야 할 말을 하는 모임
김리나(감자깡) | 여는 민우회 회원
이 많은 물음표를 다 전할 수 있을까?
집 문앞에 이상한 광고지가 붙었다. "살찐 돼지들을 찾습니다"? 읽어보니 어떤 체육관에서 운동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것에 지쳤냐고? 얼굴은 만들어 줄 수 없지만 몸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한다. 이건 여성에게만 하는 말이다.
"남친 얼굴이 바뀝니다!"
"줄넘기만 시키지 않을 테니 어서 오세요. 여성분들!"
세상에...이 한 장의 광고지 안에 얼마나 많은 차별과 혐오가 들어있는 건가! 대체 이 광고를 보고 저 체육관을 찾아 갈 사람이 누가 있다는 말인가?
다음날, 전화를 걸었다. 내가 잘못한건 없는데도 이럴 땐 항상 떨린다. 해야 할 말은 너무나 많다. '나는 왜 살이 찌면 안 됩니까?' '대체 어떤 얼굴이 못생긴 얼굴인거예요?' '지치는 건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이에요' '열심히 운동해서 얻는 게 고작 남친의 얼굴? 그것이 나의 가치를 정하는 거라고요? 누가 남친을 원하기나 한대요?' '그냥 내가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해지길 바라면 안 되는 건가요?' '내 몸매가 면접성공을 결정한다고? 그런 회사는 다니기 싫어요.' '대체 돼지는 무슨 잘못 인데요?' 그런데 전화 한통으로 그 말들을 다 할 수 있을까? 휴… '살찐 사람의 히스테리'라고 생각할까 조바심 내며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이 동네 주민입니다. 그 쪽 광고지를 보게 되었는데요. 그냥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라고 하면 되는 걸 저런 식으로 광고하면 반감을 살 것 같아요. 실제로 저와 제 주변 지인들 반응도 그렇고요. 집집마다 살찐 돼지를 찾는다고 붙여두면 누가 기분 좋게 거길 찾아갈까요? 이 걸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 드렸어요."
생각보다 빨리 잘못을 인정하는 목소리다. 하지만 마음이 썩 좋지 않다. 내가 해야 했던 말은 저것 하나뿐이었던 게 아니니까.
우리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기다려왔던 여성의 날. 친구들과 함께 장미를 150송이를 가지고 동네 번화가로 나갔다.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드리며 서로를 축복하고 웃었지만,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면서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는 늙었다고 주지 않는 줄 알았어요." 같은 말을 들을 땐 슬픈 감정이 들었다.
우리가 장미와 함께 들고 나갔던 것은 인공임신중절합법화를 요구하는 소책자였다.
민우회에서 만든 슬로건을 맨 앞장에 인쇄했다.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눈살 찌푸리는 사람 없이 모든 분들이 흔쾌히 받아갔다. 속으로 '우와 공감대가 꽤 크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이구 낙태는 죄라구~ 아이구 기특하지~"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중년남성이 여성의 날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알고 있는 대로 설명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아 그럼 별 의미는 없는 것이네요." 이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났다.
연대, 쉼, 그리고 이어지는 고민들
이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영화 위로공단의 공동체상영을 위해 준비하던 도중, 이것이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심문당해야 했던 일, 동네 아파트의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토요일마다 무급으로 일하게 된 일, 우리 지역 중고교의 인권탄압 특히 여학생들에게 가해진 언어폭력 등의 사건… 그 때마다 해당 기관에 민원을 넣거나 전화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는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았다.
너무나 많은 일들, 싸움들… 모든 걸 잠시라도 잊고 훌훌 떠나고 싶었던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 범죄의 표적이 되었었다. 요즘 해가 늦게 지는 이 곳 스페인의 마드리드. 깨어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방심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알아챘다. 내 뒤에 붙어서 졸졸 따라오던 그들이 거의 바짝 다가왔을 때 앞에 나타난 어떤 가족에게 뛰어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그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돈 몇푼 훔쳐가려는 좀도둑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표적이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당당히, 두려움 없이 어떻게 싸워나가면 좋을까? 함께했던 활동들의 기억을 딛고 걸으며, 이 고민을 놓지 않고 싶다.
❚감자깡
비정기적이고 느슨한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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