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상반기*함께가는여성] 아홉개의 시선-‘나중에’가 아닌 ‘오늘부터 우리는’(최양희)
★아홉개의 시선
‘나중에’가 아닌 ‘오늘부터 우리는’
최양희 | 남서여성민우회 활동가
#춘천행
‘춘천’은 ‘청춘’과 초성이 같아서인가. 유독 가는 길이 설레고 뭔가 봄과 어울리는 그런 느낌이다. 1박 2일 워크숍. 그것도 춘천. 차(남편) 떼고 포(아이들) 떼고 가는 곳은 어디든 천국이라지만 설레는 춘천에서, 오랜만에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민우회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하다. 달리는 청춘열차 차창 밖으로 잠시 스무 살 적 연인의 얼굴도 스쳐가고 들뜬 목소리의 여행객들 웃음소리에 피곤한 눈꺼풀이 감기지 않는다.
#강원숲체험장
굽이굽이 많이도 들어간다. 춘천역서부터도 느꼈지만 공기가 서울과 다르다. 숨쉬기 좋은 곳에서 오랜만에 깊은 숨을 쉬며 반가운 얼굴들을 맞는다. 몇 달 만에 보는 얼굴, 또는 1년 만에 보는 얼굴, 또 처음 뵙지만 낯설지 않은 얼굴들. 덥석 손잡아 인사하고 싶지만 아직은 예열되지 않은 손이 부끄러워서 얼른 이른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간다.
내가 차리지 않은 밥상은 늘 맛있는 것이 진리이지만 따듯한 밥과 국, 정성스런 찬에 감사하며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좀 느긋해도 좋으련만 숟가락만 들면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마냥 찬만 보고 달리게 된다.
#LCSI 성격유형 워크샵
워크샵에 가기 전 미리 각자 참여했던 LCSI 성격유형 검사의 결과지를 가지고, 오랜만에 뵙는 생기쌤과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목소리와 리액션이 큰 표출형 집단 옆 우호형, 분석형 테이블 쌤들은 소란스럽고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도 애를 쓰시며 워크숍의 내용을 진행하셨다. 각자의 유형별 언어와 표현 방식, 특징을 이해하며 한 공간 안에서 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곡해하고 의도를 왜곡하는지에 대해 잠시(아주 잠시) 고민하였다. 고민은 잠시였고 표출형인 나로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나 유쾌했다. “특히 분석형의 두 분 쌤께서 의논하신 바를 발표하실 때 진지한 표정은 잊혀지지 않네요. 용어정리부터 시작하셨다는 부분부터 빵 터졌어요.”
#나의 민우 페미니스트 모먼트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라온 이야기, 민우회를 만난 이야기,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떨리는 목소리로 긴장한 손짓으로 자신의 삶을,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들려주는 그 시간은 내게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숨죽인 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탄식하고 함께 손뼉 치며 웃었다.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꼼꼼쌤, 김성희쌤, 쌈닭쌤, 이서쌤 모두 안아드리고 싶었어요. 고맙습니다.”
#‘나중에’가 아닌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
십 여 년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민우회의 가장 큰 자랑꺼리나 특징을 말해 달라 하면 나는 늘 자신 있게 우리의 조직문화를 이야기해왔다. 수직적이지 않으며 중앙 중심적이지 않으려 하는 문화, 서로의 역할은 다르되 결정권을 함께 가져가는 문화, 소수가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 개인의 성장과 꿈을 응원하는 문화.
그것을 다시금 돌아보며, 자신의 역할 속에서 또는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상대방을 이해해볼 수 있는 ‘지금, 여기, 우리’ 퀴즈쇼와 ‘함께 만드는 여성주의 조직문화’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이 바쁜 시기(우리는 늘 바빴다)에, 이 엄한 시기(따지고 보면 하루하루 엄하지 않은 날이 없다)에, 서로 긴 시간 얼굴 마주하기도 어려운 각 지부 대표, 사무국장 활동가들이 이렇게 첩첩산속에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모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중에’로 미뤄왔던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들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왜곡된다.
벌써 워크숍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되었고 조금씩 나의 기억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편집되어 가고 있다. 고로 이제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이 글을 다 써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워크숍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새 입꼬리가 올라가고 그리운 이름들이 떠오른다. 술과 노래를 강권하지 않았으나 술이 부족하고 노래가 끊이지 않았던 그 밤의 뒷풀이를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천차만별 노래와 춤을 보여준 그녀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또 곧 우리 만나지기를.
❚최양희
10여년 민우회 활동하며 아직 딱히 별칭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워크숍 뒤풀이에서 같은 표출형 쌤들이 별칭을 지어주시겠다며 ‘사과’가 연상되신다 하여 각종 사과 이름이 다 나왔습니다. 초록사과, 부사, 국광, 홍옥...그 어떤 것도 똑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그 싱그러움은 계속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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