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성영화제 개막작이자 제인 캠피언 감독의 신작 <인더컷>은 ‘여성 욕망의 드러내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 주체의 욕망이란 지극히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의 몸은 언제나 남성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대상화되어야 하며 여성의 욕망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때 그들은 여지없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더컷>의 여성들 또한 그러하다.
영화 초반부, 술집 화장실에서 오럴 섹스를 하던 여성은 며칠 후 목이 잘려진 채 시체로 발견된다. 유부남 의사와 사랑에 빠진 폴린(주인공의 이복동생)도 목이 잘려나간다. 주인공 프레니(맥 라이언 분) 또한 연쇄 살인범일지 모르는 형사 말로이와의 격정적인 섹스에 탐닉하면서 살인의 대상이 된다.
남자를 기억하는 방식이 자신이 그를 얼마나 원했던가가 아닌, 그가 자신을 얼마나 원했던가에 있다는 폴린의 고백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타자화된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폴린의 아버지와 결혼하지 못한 채 폴린을 낳게 된 어머니를 보며 폴린은 한 번만이라도 결혼을 해봤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폴린은 가부장제적 질서에 함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결혼할 수 없는 대상, 사실은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인 유부남을 사랑함으로써 가부장제적 질서에 대한 저항의 틈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프레니가 연쇄 살인범을 응징하고 살아남는 방식이다. 기존의 영화에서 여성이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에 의해 구원을 받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면 프레니는 남성 권력자의 힘이 아닌 스스로의 능동적인 힘에 의해 살아남는다. 프레니가 연쇄 살인마에 의해 등대로 끌려가 있는 동안 그녀의 구원자여야 할 말로이는 프레니에 의해 손이 묶인 채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임으로써 가부장적 권력을 상실한다. 프레니는 말로이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그 욕망’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말로이를 언제든지 묶어놓을 수 있고 또 풀어줄 수 있으며 자신이 연쇄 살인마를 단죄한 후에 가부장성이 거세된 말로이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성적인 주체이자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자연적이거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리비도 경계 안에 존재하는 한정적이고 불안정적인 것이다. '머리'와‘몸'을 분리시키는 엽기적 연쇄살인사건이 상징하듯 <인더컷>은 의식과 도덕이 일치하지 않는 가운데 서로 모호하게 충돌하는 여성의 욕망을 긍정한다. 프레니는 말로이가 엽기적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한 대상과의 관계에 점점 빠져들며 불일치하는 욕망의 주체가 된다.
여성의 욕망은 남성 중심적 사회가 원하는 균질하고 대상화된, 남성의 손에 잡힐 수 있는 것으로 위치지어지기를 강요당한다. <인더컷>의 의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억압적인 남성적 시각에서의 여성의 욕망이 아닌, 여성의 경험에 기반한 여성의 욕망을 언어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프레니는 자신의 불완전하고 이중적인 욕망을 긍정하고 그 욕망의 주체가 된다.
여성의 욕망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의식과 도덕이 일치하지 않는 공간, 남성 중심적 욕망의 패러다임을 해체시키는, 바로 그 균열과 틈 안에 (in the cut)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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