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약직 노동(?)만 벌써 6년째 하고 있다. 분식집 알바(아르바이트), 백화점 판매직원, 화장품 조립공장 등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다. 보통 단기간에 하는 육체노동이 대부분이었지만, 휴학하고 회사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일해본 적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저런 일들을 해왔지만 막상 졸업을 앞두고 보니 새삼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알바를 하면서도 나는 노동권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4대보험이라든가 고용보장 등 어떤 것도 알지 못했고, 불이익한 조치에 합의를 하면서 ‘그냥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어떤 것을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몸이 힘든 걸 이겨내면서 일을 배우고 세상을 배운다고 생각했었다.
가장 힘들었던 알바 중 하나가 경마장 알바였다. 우연히 친구와 함께 한국마사회 알바 공고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운이 좋아 그 이름도 유명한 한국마사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페이가 세다는 이유로 입직 희망자가 많아 경쟁이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경마장에 들어가면 일단 수습사원식의 보조기간인 3개월을 거쳐야 한다. 그 기간이 지나면 정식이 되어 월급도 오르게 된다. 처음엔 알바치곤 돈을 많이 주는 곳이어서 그저 마냥 좋기만 했다. 그러다 3개월이 좀 지나자 그곳의 생리를 차츰 알게 되었다.
‘도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주고객은 나이든 아저씨들이 대부분이고 표를 파는 발매원들은 어린 여대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여대생들에게 폭언과 폭행이 행해지고 있었다.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육체노동도 힘들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감정과 생각을 무조건 통제해야하는 감정노동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그리고 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것. 활동하기에도 불편한 치마를 입고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하는 것의 불편함이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20년, 30년씩 이런 알바만 해온 여성들이 그곳에는 정말 많았다. 그 분들은 계약직이 아닌 계약직의 형태로 그 일을 해온 것이다.
지금은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여성개발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덕분에 경마장을 그만둘 수 있었는데 그때 느낀 해방감이란 내가 여성주의를 만나고 느낀 해방감과 맞먹는 것 같다(^^). 여성개발원에서 일한 지는 이제 2개월 남짓 되었다. 이것도 역시 계약직이라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뒤는 또 불안한 상황이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이곳 생활에 점차 적응해 가고 있다.
계약직 노동자로 평생 일한다는 것. 그것은 한 여름의 더위를 오싹하게 만들만큼 끔찍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온갖 알바 생활 6년간의 경험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계약직 노동자이고 그 계약기간 동안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한 인간이기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이 계약직 노동이 나에게 마지막 계약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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