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아홉개의 시선_봄내 3·8 세계 여성의 날, 길 위에서 성평등을 외치다.
아홉개의 시선
봄내 3·8 세계 여성의 날, 길 위에서 성평등을 외치다.
오리건(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 ‘오리건의 여행’이라는 그림책에서 오리건을 만났고 나는 그때부터 오리건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며 길을 걷는다. 어느새 이 세 가지의 중심에 민우회가 있었다.
그날을 위한 준비는 2월부터 시작되었다. 해마다 열리는 3·8 세계 여성의 날 행사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불을 당긴 중심에는 검찰 내 성폭력 피해자의 용감한 증언과 분노를 폭발시킨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있었다.
처음은 이랬다.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민우회 사무국과 춘천여성회 대표와 여성신문 지부장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평소에는 명동에서 장미를 나눠주고 3·8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를 알리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행진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행사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서, 사람이 많아야 재미있을 텐데 하는 걱정을 하며…
그때 ‘카톡’ 하며 불을 당기는 문자 하나, ‘마음 같아서는 중앙로 로타리를 막고 걸으면 멋질 것 같은데…’
그래서 일이 커졌다. 중앙로 로타리를 활보하려면 일단 인원이 많아야 하기에 춘천의 시민단체들과 여성 관련 기관, 제정당 들에 모두 연락을 하기로 했다. (연락은 했으나 춘천에서 인원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은 터라 반신반의했지만) 아이디어가 속속 나왔다.
일단 드레스코드를 보라색으로 정했다. 포토존 액자와 피켓을 만들고 보라색 비누장미를 신청하고 경찰서에 행진, 집회신고를 하고(처음에는 30명), 발언자를 찾고 기자회견문을 작성하고 간담회 장소를 물색했다. 항상 행사 후 참가한 사람들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쉬웠기에 이번에는 마음먹고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며칠 후 신기하게도 식사비를 후원하겠다는 분이 나섰다. ‘#MeToo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WithYou’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주문하고 스피커와 마이크를 장착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민우회 사무실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춘천의 2~30대 직장인 모임인데 미투 관련해서 관심이 많다면서 3·8여성대회 홍보물을 보고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구글 신청서도 인원이 점점 늘어갔고 각 단체들에서도 참여하겠다는 연락이 속속 들어왔다. 행진 신고 30명 했는데… 하면서 즐거운 걱정이 시작되었다. 행진은 인도에서 차도로 바꿔서 신청을 했고 질서 유지인을 추가 신고 했다.(행진인원 대비 여러 명의 질서 유지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시간이 다가오고 점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시민단체에 관심이 없는 춘천시청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행사인지 궁금해했고 몇 번의 통화 후 같이 할 것을 제안하자 많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언론사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지속적으로 들어왔고 그렇게 D-데이는 다가오고 있었다.
미투 춘천 – 우리는 말하고 행동한다
집결장소에 속속들이 모여드는 사람들은 보라풍선을 불고 준비한 보라색 리본을 휘날렸다. 선언 릴레이를 위한 문구도 고심하며 적어주었다. 카메라들은 미리 와서 대기하고 우리들을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원대후문-팔호광장명동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행진하는 기분은 짜릿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100여명이 넘는 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 기운이 났다. 이제는 제발 끝내자는 분노의 힘이 길 위에서 성평등을 외치게 했다. 마음을 모으고 행동하게 했다. “이렇게 행진해 보는 게 대체 얼마만이야”하며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분들의 발걸음이 이제 다시 시작임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명동에 집결한 사람들은 성폭력OUT 등 분노를 담은 풍선을 일제히 터뜨렸고 뒤이어 시민들의 선언 릴레이는 계속되었다.
‘우리는 말한다. 여성이 안전하게 잠자고 화장실가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한다. 가해자가 당연히 처벌되는 사회를.’
‘우리는 말한다. NO가 NO가 되는 사회를.’
금세 명동 한복판은 쩌렁쩌렁한 울림과 보라풍선의 물결이었다. 준비한 보라색 장미는 금세 바닥이 났고 ‘#MeToo #WithYou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간담회 장소에 모인 단체들은 지속적인 모임을 다짐했다.(춘천에서 여성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근래에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미투 춘천(가칭)’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한걸음이 떼어졌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를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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