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민우ing_어느 날 갑자기 엄마/아빠가 쓰러졌다
민우ing
어느 날 갑자기 엄마/아빠가 쓰러졌다
눈사람(최원진)
여는 민우회 회원·성평등복지팀 | 후회는 늦고 즐거움은 빠르다. 새로운 세상은 이미 왔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엄마가 아플 때
“내가 아프면 너는 어쩔 거야?” 엄마에게 질문을 받았다. 최근 지병으로 1년에 한두 번씩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 엄마에게 ‘내가 아플 때 누가 돌봐 줄 것인가’는 현실로 다가온 문제 같았다. 여동생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남동생과 아빠는 ‘남자’라서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엄마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나를 돌봐 줄 사람은 (비혼이면서 ‘딸’인) 너’라는 무언의 메시지 같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혼자만의 고민일까?
2016년 민우회는 ‘노년’이라는 키워드로 50~60대 여성 13명을 인터뷰하고, 60여명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중 비혼 여성들에게 ‘부모돌봄’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를 남동생이 모신다고 해도 결국은 며느리겠죠. 그래서 차라리 내가 하지 싶어서 모셨어요”, “아무리 간병인이나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도 보호자는 있어야 돼요”, “요양원에 모셨지만 자주 찾아가고 이야기 나누고….이건 결국 내 몫이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이 결혼한 형제자매 대신 비혼 여성의 몫이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집에서 개호1)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맨 먼저 가족 중에서 ‘누가 보살필 것인가’를 정한다. 이때 개호자로 가장 먼저 꼽힐 사람은 돌봐야 하는 다른 가족이 없는 독신이다.
‘개호 독신’이란 초고령사회라는 흐름과 만혼화, 비혼화라는 흐름이 만난 지점에서 생긴 멈출 수 없는 소용돌이다. 그렇기에 독신자가 부모를 돌보는 것, 개호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왔다”
–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 야마무라 모토키 저
딸이라서
2017년 민우회의 성차별보고서2)에 따르면 성차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공간(관계)은 ‘가족’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빠나 남동생이 집안일을 하면 칭찬받지만 딸인 내가 하는 건 당연하다”, “엄마가 아플 때, 병간호는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된다”, “남편은 육아, 집안일을 할 때 ‘도와 준다’고 표현한다” 등 여성들이 여전히 가족관계 안에서 가사·돌봄 노동을 요구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족 내 성역할 차별’에 여성들은 비혼이라는 생활양식의 변화로 답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4인 정상가족’이 보살핌의 관계망으로 역할하기 어렵다는 것과 가족 내 여성들의 무임금 노동으로 돌봄을 해결해왔던 한국 사회가 전환의 시기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돌봄은 가족 내 여성의 몫’이라는 구도가 깨어지지 않는 이상 앞서 언급한 비혼 여성들의 사례처럼, 여성은 부모 돌봄 전담자의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돌봄은 누구나 필요하다
비혼과 고령화가 만난 사회.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10억 노후 대비’, ‘가족 돌봄’ 같은 개인의 재량에 맡겨진 방법 말고 어떤 대안이 있을까? 세인드베리(1999)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가구가 아닌 시민권을 가진 개인을 단위로 한 복지 체제를 제안한다.3) 한국사회도 1인가구와 비혼 증가,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여 가구단위에서 개인 단위로의 복지 제도 구현이 필요하다. 하지만 2007년에 도입된 유일한 노인 돌봄 공적 제도인 장기요양보험제도의 경우, 단시간 시급제로 설계되어 ‘가족이 없는’ 중증질병 노인은 가정방문이 아닌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2017년 3월부터 시행된 등급별 차등 시간 적용(3-4등급 노인의 경우 방문서비스 시간이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축소함)으로 인해 장기요양보호사들의 노동 강도는 높아진 반면, 서비스의 질은 후퇴하고 있다.
가족 사항, 결혼 유무, 경제력 여부와 상관없이 돌봄은 누구나 필요하다. 몇 가지 새로운 제도를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 보호자 없는 병원, 나이 및 신체 등급과 상관없이 이용 가능한 보편적 돌봄, 시설이 아닌 재택 중심의 의료 서비스 등 가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닌,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한 복지제도 같은 것. 그렇다면 돌봄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을 전담할 수 있는 가족이 없어도, 아프고 나이 드는 것이 지금만큼 두렵지 않을 것이다.
돌봄 정치를 시작하자
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는 2018년 한 해 동안 ‘아프고,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흩어져 있는 비혼여성들의 부모 돌봄 이야기를 모아 제도를 바꿔낼 수 있는 정치적인 힘으로 키우려고 한다.
4-6월에는 비혼여성들의 부모 돌봄 경험을 듣고 기록하는 ‘나의 부모 돌봄기 : 어느 날 갑자기 엄마/아빠가 쓰러졌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를 통해 돌봄 과정, 돌봄 전후의 변화, 복지제도에 대한 피드백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제도 개선 및 돌봄 대안을 찾아나가는 활동을 이어 갈 예정이다.
1) 간병과 수발을 포함하여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을 돌보는 일
2) 『한국여성민우회 30주년 기념 토론회_2017 성차별보고서』(2017) 2017년 6월~7월간 진행된 본 조사는 1,257명이 응답했고 4,788건의 차별 사례가 수집되었다.
3) 성평등복지로 한국사회의 다음을 기획하다, 한국여성민우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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