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활동가 다이어리_‘효쟁이’의 네 번째 효도여행 후기
활동가 다이어리
‘효쟁이’의 네 번째 효도여행 후기
달래(이가희) |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올해 잘 살았다. 기억해두자.
어쩌다 가게 되었나?
올해 7월, 민우회 팟캐스트 〈거침없는 해장상담소〉 효도여행 편에 게스트로 초대 받았다. 서로의 효도여행 경험을 나누었는데 내가 효도여행을 세 차례 다녀왔고, 모두 자유여행이었으며 심지어 나의 제안으로 성사되었었다는 말을 듣고 출연진들은 나에게 ‘효쟁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효녀’로 불릴 때마다 수치스러웠던 나는 그 이름이 썩 맘에 들었다.) 많은 썰을 풀어놓지 못해 아쉬웠던 팟캐스트 녹음 이후, 지난 추석에 유럽으로 또 효도여행을 다녀왔다. 이 글은 효쟁이의 네 번째 효도여행 후기이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제안했다. 명절마다 여성이 노동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지긋지긋했던 나는 다년 간 ‘명절에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가족들도 많더라~’라며 엄빠1)에게 꾸준히 말을 건넸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는 반응이었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가족 모두가 즐겁게 명절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은 명절마다 힘에 부쳐하는 엄마에게서 나온 소리였고, ‘오랜만에 다 같이 얼굴보는 자린데 어떻게 쏙 빠지냐’는 말은 한 달에 한 번은 친척모임을 주최하는 아빠에게서 나온 소리였다. 이러한 반응을 예상 못했던 바가 아니었던 나는 지치지 않고, 때로는 싸워가며 계속 말을 꺼냈다. 거기에 더해 평소 지인들에게 추천을 즐겨하는 성향인 탓에 작년에 홀로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엄빠 앞에서 수도없이 유럽에 대해 감탄했다. 그래서 종합해보면 네 번째 효도여행은 내 안의 페미니스트와 ‘투 머치 토커’의 합작품이다.
왜 네 번씩이나?
세 번의 효도여행을 하는 동안 별별 일이 다 있었다. 같은 비행기를 두 번 놓쳐 엄빠를 데리고 외국 공항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새로 배정된 비행기에 자리가 없어 엄빠만 먼저 보내기도 하고, 현지 음식을 1도 못 먹는 엄마와 현지 음식을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효도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그 후유증으로 엄빠와 세 달 정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효도여행이 힘들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전제하면 부모님은 내 말에 잘 따라주는 편이었고,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겪었지만 실수가 잦은 나에게 화를 낸 적도 없었다. 이러한 여행을 세 번 하고나자 나는 이제 효도여행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녹록한 효도여행이란 결코 있을 수가 없나보다.
효도여행 중인 효쟁이
네 번째 여행은?
명절이라 비행기표며 숙소며 자리도 없고 비싼 와중에 최소한의 예산 짜기, 치열했던 비행기 티케팅, 위치와 가격과 조식과 청결과 만족도를 고려한 숙소 예약하기, 여행후기 읽고 또 읽기, 교통편 검색 및 예약하기, 박물관 투어 예약하기, 이것들을 모두 고려한 동선 짜기 등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홀로 진행해 나갔다. 부모님은 딱히 의견이 없었고, 그래서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평일에는 거의 짬을 내지 못해 주말에 몰아서 여행을 준비했는데, 이리 정신없는 와중에 놓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여행이 효도여행이라는 것! ‘명절날 가족을 데리고 튀는(?) 유럽여행’이라는 나의 성취에 취해 그 당연하게 예정된 고난의 길을 잊고 있었던 거다.
네 번째 여행을 하며 겪은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순 없지만, 활동가 다이어리의 지면의 한계 상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엄마의 새로운 모습으로, 아빠의 평소의 모습으로 고통 받았다. 아빠는 여행을 와서도 집에서처럼 공동의 일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했고, 다들 일할 때엔 자기가 하고 싶은 걸(사진 찍기, 사진 정리) 했으며, 그걸 마치면 홀로 편안히 잠들었다. 한편 집의 모든 일을 리드하던 엄마는 여행을 가자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친화력 갑’인 엄마는 간혹 언어를 뛰어넘는 소통을 시도하긴 했지만 나의 실무가 덜어지는 소통은 아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한 것들을 외국인에게 물어보라며 팔꿈치로 찌르는 바람에 낯가림과 영어울렁증으로 나는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모두가 어떻게 ‘부모’와 ‘10일 동안 유럽’을 그것도 ‘자유여행’으로 하냐며 놀라워한 만큼, 딱 그만큼 놀라울 정도로 힘든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또 효도여행을 갈 거냐고 묻는다면 바로 아니라는 답이 나오진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효쟁이여서인가 보다.(씁쓸) 나조차도 신기해서 여행의 좋았던 점을 한 번 뽑아봤는데 삶의 쉼표가 없는 엄마에게 꽤 긴 쉼표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것과 엄빠도 막상 닥치니 명절 해방을 즐거워했다는 것 그리고 엄빠 챙기고 일정 챙기느라 계속 핸드폰만 보고 다니던 나에게도 스위스는 정말 좋았다는 것 정도가 있겠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 인내심이 바닥나고, 체력이 바닥나고, 다녀와서는 통장의 잔액이 바닥났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다.
1) ‘부모님’라는 말 대신 엄마, 아빠의 줄임말인 ‘엄빠’를 사용했다. 부모(父母)의 병렬 순서를 바꾸고, 호칭에서 '님'을 사용하지 않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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