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시계는 똑딱똑딱, #낙태죄는_위헌이다
민우ing
시계는 똑딱똑딱, #낙태죄는_위헌이다
노새(홍연지) | 여는 민우회 여성건강팀
올해 낙태죄가 폐지되면 기념타투를 하려던 사람. 활자중독의 생을 살다 몸에 활자(타투)를 새기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임신이란)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
- 2018년 법무부 의견서 중
5월. 역사적인 낙태죄 2차 위헌소송의 공개변론을 앞두고 법무부가 작성한 의견서 내용이 보도되며 많은 이들의 심금에 분노의 불을 질렀다. 임신중절을 마약에 비유하는 등 전반적인 몰이해뿐만 아니라 스스로 ‘우리는 구시대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고 고백하는 듯 참담한 수준이었다. 마치 법무부에서 이 한 건의 의견서를 통해 관심 없던 국민들까지 낙태죄 이슈에 뜨거운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 결국은 역사적인 낙태죄 전면 폐지에 기여하려는 큰 그림이 있는 것은 아닌가(아니다) 의심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5월 24일, 형법 제269조 낙태죄의 위헌여부에 관한 공개변론이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2011년 1차 위헌소송 이후 6년 만에 다시 이뤄진 2차 위헌 심사. 공개변론일 오전에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헌재 정문 앞의 좁은 인도를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득 메웠다. 헌재의 변론에 앞서 시민들이 먼저, 낙태죄의 위헌을 선언했다.
이번 변론에서는 2011년 1차 위헌소송 공개변론 당시 질문과 대동소이한 질문이 법무부에 던져졌다. ‘낙태죄가 여성만 처벌하고 남성은 처벌대상에서 빠져 있어 성차별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무부의 답변은 의견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남성들이 병역문제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남녀의 신체 차이로 인한 것이므로 문제없다’ …2018년에, 대한민국 법무부의 시계는 당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바로 그 다음 날, 바다 건너 아일랜드에서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최대 14년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되어 있던 아일랜드의 낙태죄(수정헌법 제8조)의 폐지를 두고 국민투표가 열린 것이다. 이 투표를 위해 해외에 나가 있던 아일랜드 국민들이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로 돌아와 YES(낙태죄 폐지 찬성)에 투표하자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바다 건너 우리에게도 뜨거운 투지를 불태워주었으니… 감격스럽게도, 아일랜드는 투표 결과 66.8%의 찬성으로 낙태죄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SNS에서 공유되던 #폐지하라(#repealthe8th) 해시태그가 #폐지했다(#repealed)로 바뀌는 모습을 온라인으로 지켜보며 어찌나 감격스럽던지.(기다려요, 아일랜드!)
2011년 위헌소송 당시 법무부는 ‘국민들의 법 감정과 맞지 않기 때문에 낙태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법무부가 귀 기울이고 있는 ‘국민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 국민들에 이 수많은 여성들은 없는 걸까? 형법 상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국제사회의 권고를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매번 미루고 저버리는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법 감정’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여성들의 목소리와 현실을 국가가 외면하는 사태를 되풀이할 수 없었다.
7월. 그야말로, ‘국민들의 법 감정은 낙태죄의 폐지’라는 사실을 더 널리 천명하기 위해 대규모 집회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를 열었다. #낙태죄폐지하러갑니다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온라인에서 먼저 연대의 목소리가 뜨거웠고, 7월 7일 광장은 천 명이 훨씬 넘는 많은 이들로 가득 찼다. ‘성모와 성녀와 페미의 이름으로’ 낙태죄를 폐지하러 온 천주교 신자들(내가 포함된다), 여아낙태가 기승부리던 시절에 살아남은 88용띠·90백말띠의 여성들(여기도 내가 포함된다) 등등 이 싸움에 기꺼이 함께 하고자 거리로 나온 이들로 가득했던 이 날, ‘낙태죄폐지뽕’을 잔뜩 맞고 페미니즘에 감염되어(?) 믿음이 자라났다. 이 싸움의 승리는 우리 것이며, 머지않았을 거라고.
이제나 저제나 헌재의 판결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도착한 8월의 비보, ‘낙태죄 판결을 차기 재판부로 미룬다’. 급히 대형현수막을 제작했다, ‘낙태죄 위헌 미루지 마라’. 헌재 앞으로 가 긴급 퍼포먼스를 펼쳤다. 멀리 아르헨티나의 임신중지권 확보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는 날이기도 했다.(아르헨티나는 아쉬운 표차로 관련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을 시행한다고 발표해버렸다. 모자보건법을 담당하고 있어 임신중절 문제에 관한 주요주관부처이면서도, 낙태죄 위헌 심리 때는 ‘의견 없음’으로 일관한 다음 행보라 더욱 기가 막혔다. 게다가 의료규칙 개정안은 바로 2016년 첫 번째 ‘검은 시위’가 있게 했던 바로 그 시행안이 아니던가! 그러한 법안을, 그것도 낙태죄 위헌심사 중에, 헌재가 판결을 미룬다고 하자마자 날치기로 넘겨버린 보건복지부의 행태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에 반발하며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을 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소식 또한 황망하긴 마찬가지였다. 수술이 필요한 이들이 병원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또 다시 이 모든 위험 부담은 여성들의 몫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9월. 질 수 없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권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매년 28일)’을 맞이한 토요일, 청계천 한빛광장에 모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9.6미터 상공 유압식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고, 내 발아래는 269명의 시민들이 형법 제 269조 낙태죄의 삭제를 기원하며 2·6·9 대형숫자를 만들며 펼치는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빨간 천이 대형 숫자를 가르며, 낙태죄의 ‘삭제’와 폐지를 촉구했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폴란드, 에콰도르, 칠레… 임신중지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이 많은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우리 또한,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낙태죄 폐지를 위해 지치지 않고 연대하겠다는 다짐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올해는 진짜 낙태죄 폐지되겠지?!’ 두근두근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심정으로 올 한 해를 지내왔다.(사실 지금쯤 평행우주 속에서 낙태죄 폐지의 기쁜 소식에 환호하고 있는 우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형법은 어제와 같고, 역사의 시계(?)는 흐르고 있고, 우리는 알고 있지! 이 시계는 결국 낙태죄의 폐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임신중지권의 확보라는 전 지구적(?) 흐름 속에서 전 세계 자매님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 마음은 바로, 끝까지 함께 싸우며 절대 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8월 8일, 헌재 앞 긴급 퍼포먼스 ‘낙태죄 위헌 미루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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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고민하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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