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저출생 위기탈출 넘버원: 난임부부지원사업?
민우ing
저출생 위기탈출 넘버원: 난임부부지원사업?
노새(홍연지) | 여는 민우회 여성건강팀
5월,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 다리 아래 서 있던 사람.
저출생1)이 ‘위기’라고? 누구의 위기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1961년 시작된 가족계획사업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을 펼쳐오던 한국 사회의 합계출산율은 연이은 하락세를 기록하며 1970년 4.53명에서 2000년 1.31명을 기록했다. 인구수에 적색 신호가 켜질 때마다 언제나 여성을 호명해오던 국가는 서둘러 방향을 틀어 ‘출산’을 장려하기 시작했지만, 주거·보육·노동·교육·안전 등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회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고,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8명을 기록했다. 사상 최저치의 출생률을 운운하며 저출생이 ‘위기’라고 하는데 그 위기는 과연 누구의 위기일까?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2006년 시작된 난임부부지원사업은 각종 보조생식기술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난임부부를 돕고 출산율에 기여하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받으며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7년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었고, 올해는 지원횟수도 더 늘어나고 지원대상의 연령제한도 사라졌다. (병원이 비급여항목을 엄청나게 늘리며 결국은 당사자 비용부담도 덜어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낳을 권리’를 지원하는 듯한 이 정책이, 정말 ‘여성을 위한’ 정책이 맞는지, 난임여성에게 적용되는 생명공학기술은 과연 안전한지, 국가의 성·재생산 정책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네 차례의 전문가 포럼과 한 차례 대중토론회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삼신할머니가 난임클리닉에 살고 계셔
난임부부들이 고비용의 시술에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해온 것은 1990년대 말이지만, 당시 정부는 ‘난임(불임)은 질병이 아니’라며 보험 적용을 거절했다. 저출생 위기에 불이 켜진 현재, ‘난임’은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여도 1년 이상(35세 이상이라면 6개월 이상) 임신이 안 되는 경우”로 정의된다.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남성의 무정자증이나 여성의 난관협착증과 같은 구체적인 증상이 발견되는 부부뿐만 아니라 다수의 ‘원인불명’의 부부들도 모두 포함해버리는 까닭에2), 정부의 사업개요에 따르면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는 부부’는 모두 “제거해야할” “의료적 장애를 지닌 난임부부”로 분류된다.
이런 난임의 질병화는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치료’를 통해 문제해결을 서두를 것을 압박한다. 결혼 후 시간이 흘러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의료적 진단에 의해 ‘비정상적 상태’로 기정사실화되고, ‘건강하지 않은/비정상적인 몸’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의학적 분석’이 더해지며 의료 전문가와 병원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아이가 없는 부부, 특히 여성을 ‘어딘가 문제가 있는’, ‘이기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 출생을 부부의 당연한 과제로 생각하는 가부장제의 압력도 난임부부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난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의 저자가 지적하듯, 부부와 자녀라는 ‘가족의 정족수’를 채워야만 인정하는 혈연가족 중심의 강력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더욱 많은 도전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의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희망의 기술일까, 희망고문 기술일까
난임부부의 임신을 돕는 보조생식기술은 크게 여성의 자궁에 미리 채취한 정자를 주입하는 인공수정과, 난자와 정자를 모두 채취해 외부에서 수정시킨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는 체외수정시술(시험관시술)이 있다. 단순해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과정이다. 특히 전반적인 시술 과정에서 남성의 역할에 비해 여성의 역할과 고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점, 난임원인의 남성요인과 여성요인의 비율이 비슷하지만 원인이 남성에게 있더라도 여성이 더 많은 시술에 노출되는 현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여성의 난자는 매달 양쪽 난소에서 1개씩 번갈아가며 배란된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과정에서는 임신성공율과 시술의 효율 등을 위해 한꺼번에 여러 개의 난자가 배란되도록 호르몬 약제인 과배란유도제를 사용하게 되는데, 과배란유도제의 부작용은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부터 지적되어 왔다. 대표적 부작용인 과배란자극증후군은 복수가 차거나 심낭(심장)에 물이 차는 증상, 신장부전, 혈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부작용으로 발생율은 20~30%에 이른다. 난소암의 발병비율이 23배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약제의 종류나 용량은 적정한 가이드라인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의사의 숙련도와 경험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면서, 의사와 병원의 ‘노하우’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과배란유도제의 ‘장기적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직 적절하게 이뤄진 연구조차 없고,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도 낮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적신호는 이 ‘첨단생명공학기술’의 지나치게 낮은 성공률이다. 보조생식기술의 성공율은 9~28%로 보고되고 있는데, 미국국립보건원에 따르면 40세 이상의 여성의 체외수정 시술 성공 가능성은 14%에 불과하다. 최근 보도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난임 시술 현황(2019)〉에 따르면 난임시술 여성 10명 중 단 2명만이, 40대 이상의 여성의 경우 10명 중 단 1명이 아이를 얻었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어머니’ 되기에 대한 사회적 압박, 의료기관의 권유, 정부의 지원정책에 둘러싸인 채, ‘혹시나 하는 희망’을 성급히 뿌리치는 걸까 하는 염려를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장·단기적 영향과 부작용, 시술 기간 동안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해야만 하는 여성의 어려움과 고통을 모두 고려했을 때, 이 기술을 과연 ‘희망의 기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국가는 과연 적절한 통제력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을까, 출생율 제고 외에 여성의 건강에는 어떤 관심이 있는지, 큰 의문이 들었다.
낙태죄와 난임지원사업의 공통점
시민들의 뜨거웠던 낙태죄 폐지 요구는 단지 ‘낙태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의 수단으로 여겨 온 국가에 대한 저항이자,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한 주체로서 여성의 동등한 위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임부부지원사업은 여전히 인구정책의 연장에서 여성을 인구 ‘위기’를 책임져야 할 출산의 도구로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큰 한계를 안고 있었다. 보조생식기술과 관련 정책에 대한 보완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단지 ‘낙태’할 수 있는 것, 단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 여성의 성·재생산건강과 권리가 확대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안전하게 임신하고,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사회,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인프라의 확대, 돌봄의 역할을 여성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모든 형태의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모든 삶의 순간 동안, 적절한 지원과 사회적 지지를 보내는 사회가 바로 낙태죄의 폐지와 함께 우리가 상상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다. 난임에 대한 ‘다른 상상’과 함께, 더 나은 성·재생산 정책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가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9년 10월 30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난임에 대한 다른 상상 - 무엇이 위기인가?〉토론회. ‘난임 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의미를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1)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인구수 감소의 원인으로 강조하여 지목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2) 2014년 〈난임부부 지원사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여성 중 체외수정 시술을 받은 여성 1,063명의 60.1%, 인공수정 시술을 받은 여성 744명의 75.8%가 ‘원인불명’의 난임이었다. (제4장 91- 95쪽 참조) 상당수의 통계는 난임인구의 10~20% 이상이 ‘원인불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