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을 마주하다
민우ing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을 마주하다
이편(이지원) | 여는 민우회 액션회원팀
요새 자꾸 깜박깜박합니다. 건전지 좀 갈아주세요.
어릴 적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기억하시는지? 2019년이 된 지금 우리는 기대했던 것처럼은 아니더라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컴퓨터 수준의 스마트폰은 기본이 되었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된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른 세상.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의 불평등과 만나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문제들을 촉발하고 있다. ‘리얼돌’ 이야기다.
리얼돌은 사람, 특히 여성의 신체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인형이다. 올해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그중에서도 성인용품, 즉 자위기구로서의 리얼돌이었다. 올해 6월 성인용품 수입업체가 리얼돌의 수입통관보류처분에 반발하며 인천세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리얼돌의 수입을 허용한다는 2심판결을 확정한 것이다.1) 여성인격권의 침해가 논의조차 되지 못한 이 판결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리얼돌 수입 및 판매금지를 청원한 글은 단시간 내 26만여 명의 동의를 얻으며 공론화됐다. 좀체 근절되지 않는 불법촬영, 단톡방 내 성폭력처럼 여성의 몸과 일상이 포르노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채 ‘리얼돌 산업’에도 무책임하게 일관하는 국가에 대한 통렬한 규탄이었다.
이러한 목소리를 모아내고자 지난 8월 〈말해보자, 리얼돌: 강간을 진짜처럼 괜찮습니까?〉 집담회를 열었다. 섹스토이샵 ‘피우다’ 강혜영 대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도미 활동가를 비롯해 약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강당을 뜨겁게 달궜다. 패널토크 중 일부를 글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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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영(섹스토이샵 ‘피우다’ 대표, 이하 강): 딜도가 실용성을 중심으로 하되 추가적으로 인체 특성을 재현한 도구라면 리얼돌은 사람과 닮은 것을 핵심으로 구현되었다. 과거에는 여성의 성적만족에 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여성용 자위기구조차 남성중심 섹스 기반으로 상상되어 음경 형태의 자위기구가 많았던 것이기도 하다. 여성용 자위기구가 점차 실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반면 남성용은 여성의 형태나 어떤 상황을 더 진짜같이 재현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Q2. ‘리얼돌 사용이 성폭력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도미(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이하 도): 강간욕구와 성욕을 등치시키는 문제적 관점이다. 성폭력의 근본적 원인은 성폭력을 용인하는 문화와 성차별, 여성에 대한 멸시이다. 리얼돌의 형태와 리얼돌이 제작, 판매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들을 보면 이 산업을 추동하는 욕망이 사회의 강간문화와 분명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진심으로 성폭력을 없애고 싶다면 반성폭력 운동을 하라.
Q3. 현 상황에서 법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강: 많은 국가에서 아동 형태 리얼돌을 금지하고 있다. 아동, 특정인의 얼굴을 본뜬 제품에 관해서는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마케팅에 대한 규제도 했으면 한다. 전문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제도가 생겨야 하지 않을까.
도: 법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니 이 사회에서 정답처럼 여겨지는 것들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성의 신체를 매개하지 않는 성적쾌락은 불가능한지, 그런 사고방식이 강간문화와 상호작용하는 게 아닌지 말이다. 리얼돌 이슈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욕망과 그 욕망이 어디에서 왔는지 들여다보게끔 했고 이는 개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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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기구의 목적이 성적 만족이라면 온도나 강도, 다양한 자극 등 기능 면에서 발달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럼에도 굳이 여성형태의 몸이2)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얼마나 성적으로 물화(物化)하고 있는가를 의미한다.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분류에서 선정성을 의미하는 픽토그램이 굴곡 있는 여성의 몸이라는 점은 주목한 만하다. 우리 사회가 남성의 성욕을 본능적이며 해소해야 하는 것으로 용인해줄 때 여성은 그 도구로 소환된다. 실제 여성이 아니면 여성 형태의 성기구로라도 말이다.
국내에서는 리얼돌 논의가 다시금 불붙었을 뿐이지만3) 사실상 우리가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은 더욱 ‘인간다운’ 섹스로봇의 시대다. 최근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딥페이크(Deepfake) 포르노의 피해자 25%가 한국의 여성 연예인이라고 한다. 당장 트위터만 접속해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지인능욕’ 계정들을 보라. 다크웹에서 유아·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유통한 사이트의 운영자는 한국남성이었다. 그뿐인가? 해당 사이트의 가장 악질적인 이용자로 검거된 310명 중 한국인은 그 절반이 넘는 223명이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닮은 리얼돌의 주문제작, 아동·청소년 형태의 리얼돌 등 당장 예상되는 문제 지점에 대해서 짚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우리는 ‘리얼돌 사태’를 마주하며 그 어떤 과학이나 기술도 그것이 만들어지고 기능하는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그 불평등을 답습하고 재현하는 방식으로 뻗어나갈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가 상상할 세상은 놀랍게 발전한 사회이기에 앞서 누구도 내몰리거나 소외되지 않는 사회이기를, 누구든 그 진보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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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얼돌 사태‘ 경과(2019년 10월 말 기준)
2017년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받은 성인용품수입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
2019년 06월
대법원 수입통관보류처분취소청구 원고 승소 확정판결
07월 08일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 청원 264,000여명 동의
08월 08일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 등 의원 11명, ‘리얼돌’의 제도적 제한 및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
09월 06일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
09월 28일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
10월 18일
전남 여수시 갑 이용주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리얼돌 전시, 산업 진흥 측면에서 정부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이 됨
2019년 8월 8일, 〈말해보자, 리얼돌: 강간을 진짜처럼 괜찮습니까〉
집담회에서 참여자들이 모둠 토론을 하며 적은 메모들.
1) “…그 모습이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이를 넘어서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없다.” - 2018누65134 수입통관보류처분취소청구 고등법원 판결문 중
2) 이때 ‘여성형태의 몸’이란 젊고 날씬하며 장애 없는 몸에 한정되는데, 리얼돌이 사회적 규범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2000년대 중반 리얼돌과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유사성행위 업소가 ‘인형체험방’이라는 이름으로 성행하여 사회적 논란이 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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