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여자’가 아니라 환자입니다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
‘여자’가 아니라 환자입니다
올해 여성건강팀은 성차별적인 의료환경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의료경험을 모으고 가시화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3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 간, 총 330개의 사례가 들어왔다.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불쾌했던 의료경험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무려 96.7%나 ‘있다’고 답했다. 불쾌했던 이유(복수선택)는 무례한 언행(166명), 진지하지 않은 태도(120명), 위압적 태도·불필요한 질문 (87명), 수술 치료 진료 전후 부족한 설명(86명), 불쾌한 신체접촉(82명), 과잉진료(43명), 의료기구·기술(27명), 미용수술 권유(20명) 순이다
#반말 #고압적태도 #부족한설명
[사례1] 진료실로 부를때 ‘ㅇㅇ야~’ 하고 부르더라고요. 살짝 기분 안 좋았지만 나이 든 분이라 그냥 넘어갔는데 저와 동년배인 다른 남자환자는 정중하게 부르더라고요.
[사례2] 고3 때 질염인 것 같아 산부인과에 갔는데 남자 의사가 대뜸 “처녀막이 이~쁘게 자리잡고 있다”라고 손으로 동작을 둥글게 그리면서 알려주더라고요. 매우 불쾌했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질염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소리였으니까요. 남성이 ‘처녀막’을 어떻게 간주하는지,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의 몸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남자가 좋아할’ 몸인지 아닌지 판단해 전달하는 게 어이없었습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무례하거나 고압적인 의료진의 태도에 관한 사례였다. 반말이나 반존대로 진료를 보는 의사들이 많았고, 교복을 입었거나 나이가 어린 여성일수록 무례한 태도는 심해졌다. “(의사에게) 질문은 하지 말고 듣기만 하라”는 경고를 듣는 등 진료에 필요한 설명은 충분히 못 들으면서 “결혼은 했냐, 살 좀 빼라”는 등 진료와 무관한 대화에는 자주 노출되었다.
#성형권유 #성추행
[사례3] 질염 때문에 산부인과에 갔는데, 관련된 설명은 없이 진료를 보면서 “소음순이 짝짝이인데 수술해라. 요즘은 왁싱도 많이 한다.”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기분이 너무 나빴지만 진료 중이라 별 말 안 하고 상담실로 나왔는데, (…) 여자 질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의사 때문에 산부인과가 방문이 더 불쾌해지고 싫어졌어요.
[사례4] 갑상선 잘 본다는 의사를 만나려고 몇 개월을 기다려 겨우 갔어요. 근데 검사 중에 팔뚝으로 지나치게 가슴을 압박하더라구요. 기분 나빴지만 의료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넘어갔습니다. 이후 다른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데 그 의사는 팔뚝을 들고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순간 전에 했던 검사는 의료를 가장한 성추행임을 깨달았어요.
환자가 미용목적으로 가지 않았음에도 의사는 소음순/대음순 성형, 교정, 라식, 쌍꺼풀, 레이저 제모 수술 등을 권유한다. 치료와 관계없는 미용수술권유는 환자가 ‘의사는 지금 내가 겪는 고통에 관심이 없나?’라고 느끼게 만든다. 병원을 환자보다 돈이 중요한 곳으로 보이게 만든다. 또, 의료행위 중에 범죄도 일어난다. 성추행이다. 의사의 무릎 사이로 여성을 끌어들여 의사 자신의 성기를 여성의 무릎에 닿도록 한다. 초음파 검사 중 필요 없는 각도로 팔꿈치로 가슴을 누른다. 여성은 그 행위가 진료를 위한 접촉인지 성추행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자’가 아니라 환자입니다.
어쩌다 한 번 겪는 일이 아니다. 특별히 이상한 의료진을 만나서도 아니다.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일을 겪는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성들이 병원을 멀리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진단과 치료가 늦어진다. 당연한 권리인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개선방향은 정해져 있다. 우선 의사가 환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권위적 태도, 고압적 태도를 버릴 것. 무례한 언행과 불필요한 접촉은 삼가 할 것. 환자의 고통을 존중할 것. 원하지 않는 환자에게 미용시술, 과잉검진을 권하지 말 것. 무엇보다 환자 개인을 여성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치환해 원인과 증상을 추측하지 말 것. 이를 의사 개개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와 의사 집단 차원에서도 노력해야 한다. 의료진과 예비 의료진을 길러 낼 때부터 젠더감수성을 필수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성별과 연령, 가족 구성, 성적지향 등에 따라 차별적 의료행위가 나타나지 않도록 공통의 매뉴얼을 개발하고 배포해야 한다. 또, 여성 의사 비율을 확대하고 여성 의사들이 특정 과에 편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성건강팀에서는 이번 설문조사에서 모인 여성의 의료 경험과 의료진에게 바라는 점, 정책 방안 등을 담은 자료집과 리플렛을 11월 중 배포해 이런 고민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여성들이 병원에서 경험한 순간들〉 리플렛 이미지
영지(박영지)
❚여는 민우회 여성건강팀
버섯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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