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손편지로 만드는 변화: 아포칼립스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손편지로 만드는 변화: 아포칼립스1 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이후, 여성들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취업률, 고용률, 비경제활동 인구수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경제활동에서 가장 먼저 타격받았다. 학교와 보육, 돌봄 시설이 문을 닫았고, 돌봄 노동은 당연하게 여성에게 전가되었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우울증 진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2%, 여성 자살률은 7.1% 상승했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코로나19가 지나간 후 되돌아보면 여성운동의 상황과 맥락은 그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종종 기후위기가 불러올 아포칼립스를 상상한다. 아포칼립스는 천천히 올 것이다. 더는 성장을 동력으로 하는 시스템이 유효하지 않을 때, 경제가 먼저 무너질 것이고 의료가, 행정이, 사법이, 문명이 천천히 무너질 것이다. 여성이라 먼저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안전한 임신 중단이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전가된 돌봄 노동에 집을 지켜야 할 것이고, 폭력과 야만을 제지할 사법 시스템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과도한 불안일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맞이할 현실일 수도 있다. 기후위기로 식량과 자원이 부족해질 때, 기후 난민이 되어 나를 보호할 집도 국가도 없을 때, 세상이 염치를 내려놓고 나를, 여성을 어떻게 대접할지 두렵다.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후퇴를 목격하고 싶지 않다.
투쟁하는 페미니스트로서 기후위기는 명백하게 내가 막아야 하는 외부적 변수다. 기후위기가 나에게 위기로 작용하기 전 최대한 많은 진보를 이루어내야 한다. 기후위기는 소수자인 나를 위협하며 다가오고 있고, 나는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여성운동은 내 환경운동의 근거이자 원동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하는 마음은 다치기가 쉽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서 계속해서 변화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지친다. 오늘 내가 이용하지 않은 플라스틱 컵 하나, 내가 먹지 않은 1인분의 고기, 확인하자마자 삭제한 이메일은 일회용 컵이 수북이 쌓인 쓰레기통, 고깃집으로 줄줄이 이어진 골목, 포기하지 못한 넷플릭스 영화 한 편에 비하자면 무용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2
그렇기에 같은 실천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는 일은 소중하다. 별것이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을 지속하는 원동력으로 내 신념만을 믿기엔 주변 환경이 너무나도 비협조적이다. 고금숙 저자의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를 읽고 소개된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실천하는 사람들을 계속 확인하고 더 나은 실천 방법을 배우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빨대 프로젝트’에 매일유업이 보내온 답장.
채팅방에서는 더 확실한 분리배출 방법이나 작은 실생활의 팁을 공유하며 중간중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내가 참여한 ‘빨대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였다. 빨대가 기본으로 제공되는 팩 음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불필요한 빨대를 모아 본사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많은 음료가 빨대 없이 유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제품들은 빨대가 필요한 구조로, 비닐봉지에 쌓인 빨대와 함께 제공된다. 특히 비건으로서 유제품의 대체재인 두유, 특히 유당이 들어가지 않은 매일유업의 두유를 자주 찾게 되는데, 그와 함께 제공되는 빨대는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프로젝트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이후 두유를 먹을 때마다 빨대를 모았고, 취지를 설명하는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프로젝트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우편함에는 매일유업으로부터 답장이 돌아와 있었다. 나의 불편함에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변화를 약속하는 답장이었다. 아,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렇게나 명확하고 필요했던 답변을 받았던 게 얼마만의 일일까.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가에 20만 명을 모아 청원해도 변화에의 약속은커녕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걸까’ 고민하게 만드는 답변만을 받아왔는데 속이 뻥 뚫렸다.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소비자의 위치일까? 그렇다면 소비자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평소에 주어진 옵션에서의 선택에 만족하던 나는 종종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됐다. 두유 옵션이 없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나는 혹시 두유 옵션은 없는지, 없다면 추가할 생각이 없으신지 여쭙곤 한다. 가끔은 정확하고 명쾌한 답변이 올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 변화를 요구하는 일도 조금은 쉬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 예전처럼 지치기만 하지는 않다. 세상을 바꾸려면 건조하고 완벽한 입장문을 써야 할 것만 같지만, 변화는 사기업에 손편지를 쓰며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임을 기억하려고 한다.
코로나19를 지나가며 전 세계적 위기 앞에 세계가 어떻게 약자를 착취하고 포기하는지 명명백백하게 목격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막고자 하고 두려워하는 아포칼립스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하나라도 더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많은 진보를 지금이라도 이뤄내야 하고, 그 진보를 지키기 위해 아포칼립스를 최대한 미뤄야 한다. 그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텀블러를 챙기고 채식을 실천하고 청원에 동의하고 기업에 편지를 쓴다. 이러한 일상이 주변에 조금씩 전염된다면, 이미 시작된 아포칼립스일지라도 우리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더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 apocalypse 1. (세계의) 파멸 2. (성서에 묘사된) 세상의 종말 3. 대재앙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2) 데이터 사용량의 폭발적인 증가로 데이터센터는 환경 오염의 주요한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예지
❚페미당당
복잡한 이곳을 복잡한 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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