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2020년의 일고민 상담사례를 돌아보며
[2021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
2020년의 일고민 상담사례를 돌아보며
여성노동팀은 올해 초에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일고민상담실에 들어온 총 197건의 노동상담사례 경향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성희롱 신고했더니 “괜히 일 키우지 마라”’, ‘콘돔 사러 가냐?’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언론에 기사화되었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단순히 ‘경악하고 분노했다’로 그쳐서는 안 될 현실이 존재한다. 지금도 많은 일터에서 성희롱이 일어나고 있고, 그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그러하듯 전체 상담에서 직장 내 성희롱 사례가 가장 많았다(113건, 57%). 그리고 2019년에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그동안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회사 내의 폭언·차별·따돌림 등의 문제가 괴롭힘 상담으로 이어진 사례도 증가하였다(58건, 29%).
회사에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
성희롱·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회사에 알리려면, 회사로부터 자신이 보호받을 거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당사자는 사내 분위기와 조직문화, 과거 성희롱 사건에 대한 처리방식을 떠올리며 해결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그런데 “회사 쪽에서 ‘고작 손잡는 거 가지고’ 이러면서 시간을 끌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한 사례처럼, 회사 측 해결 조치를 기대하지 못하고 문제제기를 망설이는 내담자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내어 문제를 회사에 알렸을 때 상사가 “노동부 소송까지 각오해야 할 거다”라며 엄포를 놓거나 “상부에 알리면 우리 부서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내가 가해자를 잘 타이르겠다”며 사건을 축소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가해자와 말이 다르니 우리는 판단 못 한다”, “잘 모르겠으니 경찰에 신고하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들이 참 많았다. “왜 바로 신고 안 했어? 다른 의도가 있는 거 아니야?”라면서 피해자를 불신하고, 가해자가 휴직하겠다는데도 사장이 “(가해자) 너 없으면 안 된다”며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회사가 제대로 사건 조사와 해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는 황당하고 억울할 텐데, 인사상 불이익까지 가하는 회사들도 있다. “줄곧 맡았던 업무가 있었는데, 내 경력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부서로 가라더라”, “회사가 내 업무에 트집을 잡아서 시말서를 몇 번이나 썼다”, “동기들은 다 승진했는데 나만 미뤄지고 있다”, “관리자가 ‘네가 부족한 거’라면서 점수를 낮게 주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피해자에게 부당전보∙부당징계∙승진배제∙저평가 등의 온갖 불이익을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을 계속 할 건지 자꾸 묻는다”고 말한 사례에서처럼 회사를 그만두라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아예 대놓고 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단 성희롱은 멈췄는데 나한테 업무협조를 안 해주고 험담을 한다”는 사례처럼 가해자의 보복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회사가 이를 방치하는 것은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에 해당하는 잘못이다.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은 노동권의 문제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많은 내담자들은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곤란함을 호소한다. “가해자와 마주칠까 봐 회사에 못 들어간다”, “그 분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무서워서 회사에 못 가겠다”고 말하는 사례처럼 출근마저 어려워하고, “그냥 그만두고 나가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퇴사까지 이어지는 경우들도 있다. 이렇듯 성희롱과 괴롭힘은 일하는 사람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심각한 노동권 침해의 문제이다.
성희롱과 괴롭힘은 모두 직장 내 위계에 기반한 힘의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더 낮은 지위에 있을수록 발생 가능성이 높다. 상담 분석 결과에서도 신입·수습·인턴 직원에 대한 성희롱, 원하청 및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약자인 노동자를 향한 성희롱 등의 사례가 다수 포착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직장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많은 회사에서 여성이 낮은 지위에 있는 불평등한 노동·산업구조에서 기인하는 노동권의 문제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성희롱·괴롭힘은 노동권의 문제이므로 국가는 이를 노동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그래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는 형법과 성폭력처벌법 등에 의거하여 가해자 개인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회사 혹은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여 회사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고 잘 해결하도록 관련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적인 회사와 고용노동부, 과연 언제 바뀔까
성희롱과 괴롭힘이 일어났을 때 사업주는 사건을 정당하게 해결하여 노동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앞의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 많은 회사들이 역할을 방기하며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하거나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
회사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피해자가 기댈 곳은 법과 제도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실효성 있는 도움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사례에서 드러난다.
“사건에 대한 녹음이 없으면 해결이 어렵다더라”, “‘피해상황이 한 번밖에 안 일어나서 성희롱으로 판단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성희롱예방교육을 직원들이 제대로 안 들었다고 감독관한테 말했더니, ‘교육받았다고 회사가 문서를 위조하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사례들처럼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으려면 노동청의 진입장벽은 낮아야 하며, 담당자인 근로감독관은 성인지적 관점을 갖고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해야 한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가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치고 있지만, 내담자들을 만나보면 아직 그 변화는 요원한 것만 같아 참 답답하다. “노동부에서 성희롱이라고 인정받더라도 회사가 바뀔까요? 그냥 벌금 내고 버티면 끝인 거 아닌가요? 개선되는 게 있어야지 힘든 과정을 참고 신고할 텐데”, “지금 법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거 같아요”라는 내담자들의 문제의식처럼 말이다. 정당한 문제제기에 공감받고 해결코자 하는 단순한 바람을 실현하는 이 길은 왜 이리 험난한 걸까?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지 설명: 2020년 일고민 상담사례 분석 전문 보기 QR코드
글을 쓰는 동안, 문제제기 이후 해결은커녕 오히려 불이익을 겪는 사례들이 많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혹여나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차별적인 현실 속에서 꿋꿋이 싸우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멋진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분노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지만,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절박한 문제이기에, 나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 당당히 대응하는 내담자들을 만날 때 나는 힘을 많이 받았다. 이런 마음과 의지가 모여서 더디지만 조금씩 사회가 성평등하게 바뀌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 본 글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 후 인용되었습니다.
리오(김이오)
❚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글을 쓰는 지금은 4월 하순, 날씨가 참 좋네요. 사랑하고픈 계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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