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낳게 하는 사회'를 바꿀 페미니스트의 질문들
[2021 하반기-함께가는여성] ing
‘낳게 하는 사회’를 바꿀 페미니스트의 질문들
보조생식술을 통한 임신∙출산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헐리웃 배우들이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았다는 뉴스는 이제 놀랍지 않다. 간혹 국내 '대리모1)' 실태에 대한 르포도 보도된다. 초국적 기업들이 ‘난자 냉동 비용 지원’을 직원 복지혜택에 포함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체 출생아 중 시험관아기나 인공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로 출생한 경우가 10%를 넘었다고 한다. 작년 말엔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임신이 이슈화되며 ‘남성 없는 임신∙출산’,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상상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보조생식술은 우리 가까이에 와 있고, 아마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혼란하고 심란한 보조생식술의 현실,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재생산 기술을 둘러싼 이슈는 여성들에게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이 주시해 온 주제다.
2000년대 초 ‘황우석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을 때 민우회는 무분별한 난자 채취로 인한 건강권 침해를 비롯해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는 생명공학 연구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이 사안으로 불거진 사회적 논의와 관련법 제정은 ‘생명 경시’, ‘논문 조작’ 문제에만 치우쳤고, 이런 상황은 여성건강권 차원에서의 발언과 개입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더욱 절감케 했다.
2019년에는 확대일로에 있는 난임시술 지원 정책을 분석했다. 이러한 정책이 아이를 낳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저출산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정책이 추진됨으로써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문제시하는 세태를 강화한다는 점, 불완전한 난임 관련 의료기술이 여성 신체에 가할 수 있는 위해에 대한 보호 조치는 부족하다는 점을 짚었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낡은 사회구조 및 문화와 접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굴절된다. 재생산 기술 관련 이슈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개입은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둘러싼 제반 상황이 어떤 구조 속에서 누구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가’, ‘우리는 ‘무엇을’, ‘왜’ 문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꼼꼼한 고민을 요구한다.
특히 ‘대리모’ 이슈는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빠르게 입장을 간추려 말하기 어려운 주제다. 현재의 ‘대리모’는 ‘씨받이’라는 여성혐오적 명명으로 표상되는 오랜 가부장주의적 관행의 역사와 연속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출현, 글로벌 자본주의의 영향, 아이를 포함해 가족을 꾸리고자 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움직임, 여성이 재생산 및 자신의 몸과 맺는 관계의 변화 등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른 의미들이 논의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대리모’에 대한 사회적 터부시와 관련법의 부재 속에서 당사자들의 절실한 요구에 의해 암암리에 ‘대리모’ 거래가 행해지고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운동단체로서 현장의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 어렵다는 데에서 오는 막막함이 있고, 일련의 경험을 서로 다르게 의미화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인가도 고민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마냥 막막해 하고 있을 순 없다. 공공의 시야 바깥에 방치된 영역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은 침해되기 마련이며, 이윤 창출을 주 목표로 삼는 의료 자본과 ‘대리모’ 산업은 수요공급 시장을 찾아 국제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도 머지않아 관련 법제 정비를 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곧바로 입장을 갖고 발을 내딛기보다는 좀더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여성건강팀은 두 차례의 전문가 간담회와 네 차례의 팀 세미나를 거치면서 우리 안의 질문과 답들을 구체화하고 정리해 왔고, 지금도 민우회 내부의 의견을 모아가는 중이다.
이미지 설명: 보조생식술과 재생산권에 대한 민우회 전체 활동가 토론회 모습
질문과 토론을 이어가며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
여성건강팀 활동가들은 우선 최근 몇 년간 여러 여성주의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대리모’에 관해 다양한 관점을 담아 집필한 단행본과 논문들을 읽고 토론했다. 세미나에서는 인권운동가, 역사학자, 생명윤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활동가가 재생산 기술에 대해 논의한 책 『재생산에 관하여: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머브 엠리, 도서출판 마티, 2019), 실제 현황을 바탕으로 ‘대리모’에 대한 반대 주장을 펼치는 『대리모 같은 소리』(레나트 클라인, 봄알람, 2019)을 읽었다. 또한 각국의 주요 쟁점을 살피기 위한 연구논문2)들도 함께 읽었다.
이어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문한나 연구원님을 초청해 온라인상 생식세포 거래 모니터링의 배경과 현황, 국내 보조생식술 관련 법제도 및 이용 현황에 대해 들었다. 그 다음엔 이화여자대학교 김선혜 교수님을 모시고 각국의 규제법의 변화가 추동하는 ‘대리모’ 시장의 이동, ‘대리모’ 현장 연구 경험에 대해 청해 들었다. 두 간담회 모두 ‘대리모’ 관련 페미니즘의 쟁점들에 대한 토론을 포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우회는 여러 질문들을 마주했다.
‘자연스러운 출산’, ‘아이와 생모의 본질적 애착관계’라는 신화를 당연시하지 않으면서, 성소수자 인권과 여성인권이 경합하는 것처럼 구도화하지 않으면서 ‘대리모’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입장을 정밀화해 나가면 어떨까? ‘대리모’ 수행이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 균열을 낼 ‘전복적 가능성’을 언급하는 논의들이 있는데, 이는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여성의 자리를 ‘낳는 자’에 못박아 온 기존 권력구조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건 아닐까? 또 ‘대리모’가 기존 가족질서를 강화하고 관련 산업의 이윤창출을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현실적 문제를 등한시하는 건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제3자에게 임신∙출산을 의뢰하는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나 자신의 재생산 능력을 자원화하며 ‘대리모’ 경험을 다르게 의미화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나친 대상화를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운동이 금지주의적 선언으로만 남아 결국 현실 속 여성들의 존엄과 안전이 침해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생산 관련 기술을 정말 급진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길 주창해 나가는 운동은 실현 가능할까?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듭하면서 곧 하나의 입장으로 모아질 거란 예상은 당연히도 빗나갔다. 논의하면 할수록 또다른 의견과 추가 질문들이 제기되었고, 주제와 연동되는 별개의 이슈로 이야기가 확장되기도 했다. 갈 길은 멀고, 참 쉬운 게 없다. 하지만 막연하고 아리송했던 생각들은 구체적인 질문들로 바뀌는 순간 디뎌볼 만한 발판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민우회는 ‘대리모’ 이슈를 주제로 한 전체 활동가 토론을 앞두고 있다. 더 날카로운 방향 감각과 더 풍성한 근거들을 가지고 ‘대리모’ 포함 보조생식술 관련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예열 단계다. 뜨끈뜨끈한 고민들을 잘 담아서, 앞으로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논의하고 또 행동하는 장을 열어갈 날을 기대해본다.
제이(김제이)
❚ 여는 민우회 여성건강팀
혼자 있어도 같이 있는 사람
1) ‘대리모’라는 단어는 그것의 수행이 초래하는 ‘한시적인 대여/대리 행위’ 이상의 영향을 잘 보지 못하게 하며, 임신∙출산을 의뢰하거나 수행하는 여성들만을 상기시킬 뿐 그에 연루된 남성이나 중개업체의 존재, 금전거래라는 주요한 맥락을 누락시킨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이 용어의 문제를 지적하며 ‘임신출산 거래’라는 용어가 제안되기도 했다(하정옥, 2015). 하지만 잠정적으로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용어를 사용하되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자 이 글에서는 작은따옴표를 붙여 ‘대리모’로 표기한다.
2) 「인도의 상업적 대리모 연구」(허라금∙조소연, 2015), 「보조생식기술과 재생산권: 난임여성과 대리모의 관계성을 중심으로」(김선혜, 2016), 「'제3자 생식' 규제를 둘러싼 한국의 재생산 정치」(김선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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