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하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다이어리: '뜻밖의 용기'로 만난 일상의 변화
[2022 하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다이어리
‘뜻밖의 용기’로 만난 일상의 변화
네?, 오십견이라고요!?
코로나19 동안 실내에 갇혀 고정된 자세로 생활했던 나는 유착성 관절낭염(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팔이 어떻게 머리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심지어 원래 그런 적이 있었나 싶었다. 매달리기, 엎드리기, 옷 입기 샤워하기 등등 팔근육을 이용하는 모든 일들이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을 때의 ‘낯설음’ 을 경험했고 이는 곧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통증으로 새벽에 깨어 끙끙거리고, 어디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한참을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 찡그린 채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랬던 내가, 민우회 풋살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게 된 것은 참으로 뜻밖의 ‘용기’였다.
이대로 굳어 버릴 수는 없어! 운명 같은 만남, FC호랑이
희망도 잠시, 원데이 클래스 후 나의 일상은 다시 내 어깨와 같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민우풋살리그’ 출전을 위한 단기팀을 모집한다는 민우회 SNS 게시물을 보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제출했고 우리는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망원유수지 풋살장에서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나눴다.
회원팀의 열정적인 지원아래 우리는 ‘FC호랑이’라는 이름을 짓고 8주 동안 열심히 뛰었다. 연습 기간동안 한 번도 따로 친해지는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지만 매주 연습을 마치면서 이미 다음 연습이 기다려졌다. 일상 생활을 하다가도 FC호랑이 팀원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침내, 1위! 민우풋살리그
리그 당일. 이른 새벽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전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누군가는 떨려서 쉽게 잠이 들지 못했고, 누군가는 밤새 공 차는 꿈을 꾸는 바람에 몇 번이고 이불을 걷어찼다고 했다(필자). 그렇게 민우회 지부 5개의 팀과 응원단, 그리고 멋진 날을 준비해주신 활동가 분까지. 햇살 좋고 바람 좋은 토요일, 여성으로 가득 찬 그라운드! 그 속에 우리는 나이, 성별, 직업, 신체에 의한 배제나 차별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남학생에게만 허락되고 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소처럼 보였던 운동장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들이 마음껏 누렸던 운동장에 우리가 도달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팀원 이름을 부르며 공을 차고, 서로의 얼굴에 맺혀 흐르는 땀방울이 눈에 들어오고, 팀원이 골을 넣을 때 내가 넣은 것처럼 기뻐하며, 팀원의 실수에 진심으로 ‘괜찮다’ 말하며 격려할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강하게 연결되어 갔다. ‘내가 잘해서’보다 ‘너가 있어 줘서’라고 생각했고, ‘너 때문에’보다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하며 그라운드를 뛰고 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FC호랑이는 1위에 올라있었다! (심지어 우리팀은 ‘지소연 상’을 배출하였다는 사실...!) 리그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지기 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도 나는 FC호랑이 팀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실천하지 않는 사회에서, 종교에서, 문화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강박으로 무장하고 스스로를 괴롭혀온 나는 FC호랑이와 함께한 8주간, 16시간 동안 나는 ‘뜻밖의 자유로움’을 경험했다.
‘우리가 국대는 아니지만, 제1회 민우회풋살리그’를 마치고 우리는 또 다른 만남을 약속했다. 부디 오늘의 환호성에만 머무르지 않길, 좋은 추억으로만 머무르지 않길. 그렇게 굳어져 버리지 않기를.
▲민우풋살리그, FC호랑이에서 골키퍼로 활약한 회원 안개님
▲ FC호랑이 단체사진
안개
❚여는민우회 회원
1년전 민우회 풋살(축구) 원데이클래스로 시작된 삶의 변화를 만끽하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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