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회원이야기] After 2005.08.02 14:34 _ 김희정
[회원 이야기]
After 2005.08.02
14:34
2005.08.02.14:34 아~아~잊으랴 어찌 내가 이 날을...
9시간 쌩진통 끝에 딸내미가 태어난 2005년 8월 2일 하고도 오후 2시 34분. 여자 김희정의 인생은 급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13개월 내 딸내미가 하루가 다르게 커갔던 만큼, 내 인생도 치명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구구절절한 얘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김희정 ●
임신을 하고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예쁜 퀼트수첩을 선물로 받았다. 어린 천사들이 그득하고 손바느질로 진주떼기도 촘촘히 달아주신 수첩을 보면서 장밋빛 출산과 육아를 잠시 꿈꿨던 시간이 있었으니... 그러나 아시다시피 현실이 그렇게 녹록한가. 임신 중에 적은 일기는 초반엔 기다림과 설레임이 가득차 있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지루함이 드러나고, 출산에 가까워 올수록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는 증상이 그득한 병상일지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장밋빛이다.
육아가 본격 시작되면서, 딸내미를 재워놓고 펼쳐든 수첩엔 "오늘은 연서가 똥을 몇 번 싸고 옹알이를 하고 "로 시작하다가 슬~슬 엄마 김희정이 아니라 여자 김희정의 자의식이 고개를 들면 신세 한탄을 꾹꾹 눌러쓰다, 급기야 저주받은 육아지옥인 이노무 나라에 여자로 태어난 한풀이를... 마음 놓고 아이 낳으라며, 아이는 나라가 키워주겠다는 거짓뿌렁을 간 크게 대선공약으로 내 세운 현정권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로 끝맺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그래서 내 육아일기는 내 딸이 여자로 사는 쓴맛을 알기 전까지 '절대금서'다.) 그렇게 밤마다 좌시하지 않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던 나는, 그 다음 날도 다음 주도... 그리고 다음 달도 늘 방구석에 아이와 함께 웬만한 모든 걸 좌시하며 목소리를 잃어갔다.
아이를 키우는 나는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느끼지 못했었던, 사회적 마이너리티가 바로 '나 '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당장 먹을게 떨어져도 우유 사러 코 앞의 슈퍼도 가기 힘들어진 나. 5분이면 가던 길을, 아이와 함께 가려면 1시간은 준비를 해야 나갈 수 있는 나는 사회적 장애인 이었다. 딸내미가 백일이 되기 전에는 바람이 너무 차가운 날, 비가 오는 날은 그나마 어딜 나가겠다는 엄두조차 못 내고, 일주일 내내 문밖을 나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날도 많았다. 누구는 첫째라서 그럴 거라 하고, 내가 너무 벌벌 떤다고도 하지만 이게 과연 개인적인 육아스타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육아의 기쁨과, 육아의 지루함, 분통터짐을 동시에 경험하며 모성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었다. 누구는 모유수유 기간이 너무나 행복했다는데, 누구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는데, 나는 왜 행복과 기쁨을 육아의 첫 번째 기억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걸까? 아직도 이런 죄책감은 나를 부대끼게 한다.
그러던 중 아이가 6개월 되던 무렵. 새로운 곳에서 일할 기회가 왔다. 아...그 때의 고민이란! 그러다가 이렇게 고민이 많은 걸 보니 아직 일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그래 접자'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뭐가 그리 서러운지 계속 눈물... 눈물.... 눈물.'나'라는 존재를 놓아버린 기분이랄까? 내가 '나 '를 저 알 수 없는 우물에 던져버리고 나서, 내 몸이 내 영혼을 찾는 눈물이랄까? 나는 아직도 그 일주일의 눈물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입사지원서를 내게 됐다. 꼭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그 알 수 없는 눈물이 입사원서를 준비하면서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출퇴근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모유수유로 고무줄 옷에 익숙해 있다가 단추와 지퍼로 이뤄진 옷을 입는 것도 생소하고, 무엇보다 브래지어를 다시 하는 것이 참 답답했다. 집에만 있다보니 양말 신을 일도 거의 없었는데, 일주일에 다섯개씩 내 양말, 남편 양말 걸려있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딸내미랑 거의 의성어에 가까운 "아~어버~대대~"같은 말만하다가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한 문장 언어로 말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참으로 놀랍게도 일을 대하는 감정과 태도가 '복직된 해고노동자'와 똑같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저~많은 사람들 틈에 내가 있고, 저~사회에 내가 일할 책상이 있다는 것 "이 기쁨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말하면서도 깜짝 놀란다. 이거 절대! 외운 거 아닌데 말이다. 그럼 나도 육아로 인한 해고노동자였나?
취업시장에 재진입하였다고 해서 노동시장에서 내 위치가 안정된 것도 아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아이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가 과연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오전에는 일하고 있지만 오후에도 일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일하지만 내일도 일할 수 있을까? 일이 너무나 하고 싶은데 못할까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적당한 일과 양육이 조화로운 생활을 바랄 뿐이다. 하루종일 아이와 있는 것도 족쇄 같지만,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와 매일 교감할 수 없는 것도 지옥이니까.
오늘도 밤늦게 회의가 끝났다. 남편도 회의가 있는 오늘같은 날. 친정엄마가 아이를 맡아주지 않았다면 비극적인 하루가 되었을 거다. 아마 내 성질에 청와대에 기저귀 폭탄이라도 던졌을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바로 철장 신세를 지고, 일간지를 장식하고, 여성단체를 비롯한 여성계 일각에서는 김희정 구명 운동하느라 바빠졌겠지? 아마 100분토론이다 어디다... 해서 찬반양론에 한동안 시끄러웠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적 파장을 막아주시는 우리 엄마에게 하늘만큼 감사하다. 노무현 대통령(청와대)은 우리 엄마에게 감사의 꽃다발이라도 보내도록 하라. 그 정도 예의도 모르는 정부는 이미 돌봄의 사회화 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결단코 좌시하지 않겠다. 음하하하!!
김희정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을 경험하면서 이전의 삶과 많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양육에 대한 현실적인 법,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정말로 기저귀 똥폭탄을 던질 수도 있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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