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문화산책] 거북이는 의회로 빨리헤엄친다_나디아
[문화산책]_나디아의 영화이야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龜は意外と速く泳ぐ,2005,감독-미키 사토시)
나디아 ●
매일 반복되는 가사일과 타인과의 소통이 부재한 일상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져가는 것에 불안해하는 주인공 스즈메. 오로지 이웃집 개만이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고 왈왈 짖는다. 당연히 해야 하는 듯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한 스즈메는 하루 일과를 거북이 밥 주기,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기, 그리고 산책만으로 채워진 자신의 일생일기에 땅이 꺼져라 한숨짓는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스즈메는 자신의 존재와 삶에 큰 변화를 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날 스즈메는 동네에 있는 100개의 계단 앞에 선다. 30초안에 계단 끝까지 오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주문을 걸고 숨가쁘게 계단을 오르다가 사과수레에서 떨어진 사과더미 때문에 계단에 바짝 엎드리게 된다. 그 순간 계단 난간에 붙어있는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스파이’ 모집광고를 보게 되면서 스즈메의 일상도 활력을 되찾게 된다.
두려움과 기대감에 부푼 스즈메가 찾아간 스파이 사무실은 일상생활에 잠복하고 있는 부부 스파이가 사는 집이다. 그들은 상부로부터 연락을 기다린 지 12년이 다 되어가지만 마냥 즐겁기만하다. 신입 스파이인 스즈메에게 스파이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가르쳐주는데, 그것이 ‘평범하게 장보기,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동네 축제에 참여하기, 평범하게 음식주문하기’ 등 전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다. 스즈메가 맡은 첫 임무는 일상생활에 잠복하면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제껏 살아왔던 삶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스파이로서의 임무라는 생각에 이전과 같은 일들이 마냥 즐겁고 신난다. 단지 스즈메가 ‘스파이 ’가 되었다는 것 하나만 변했을 뿐, 다른 모든 것들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도, 스즈메의 일상은 이전보다 더 활력이 넘친다. 결국 스즈메는 ‘스파이’란 임무를 통해서 자신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고, 두부가게 아저씨, 라면가게 사장, 공원 할머니 등 다양한 주변 인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 작은 임무는 스즈메에게 자신과 주변 이웃의 일상에 숨겨진 이면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매개가 된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스파이의 눈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재조명한 영화로 얼마전 열린 ‘일본 인디필름페스티발’에서 호응이 좋았던 작품 중에 하나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숨겨진 이면, 즉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범함 ’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딱히 특별하거나 못나지도 않고, 그저 어디선가 본듯 만듯 눈에 띄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것에는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개인들의 노력과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사람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이 갖고 있는 역사는 ‘평범하다’라는 한 단어로 설명되어질 수 없다. 자신의 삶과 관계 맺는 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스즈메는 마지막 장면에서 단짝친구 쿠자쿠를 구출하기 위해 가방을 싸고 길을 떠난다. 그녀의 뒷모습이 당당한 건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았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도 생활에 활력을 느낄 때마다 비밀스런 스즈메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휏휏휏휏휏~~’
나디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딱 한달만 영화보면 뒹굴 뒹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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