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쟁점과 현안] 차별금지법에 대한 7문 7답_박봉정숙
[쟁점과 현안]
차별금지법에 대한
7문 7답
박봉정숙 ●
지난 7월 국가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추진할 것을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성안을 추진해 3여년에 걸쳐 작업을 한 결과, 현 권고법안(이하 차별금지법)을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공은 정부, 여당으로 넘어갔다. 이 사회에 만연해있는 차별에 대한 시정의지가 현 정권에 있는지 여부를 지켜볼 일이다.
물론 팔짱 끼고 볼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차별금지법이 나올 수 있는 바탕에는 그동안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념을 구성하고 사회적 맥락화하고 의제화해왔던 여성운동단체들의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활동이 밑밥이 된 이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보다 다양하게 요리하여 차별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만들어 가는데 활용해야 한다.
자, 그렇다면 경영계, 보수언론은 일제히 반대의견을 밝히고 인권단체, 여성단체 등은 대체로 환영성명을 밝힌 차별금지법을 문답을 통해 살펴보자.
①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국가인권위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차별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권문제로서 특정 사유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차별 관련 법률은 차별금지의 선언적인 표명, 특정분야에의 한정, 미흡한 구제 등의 문제제기가 있어 이를 보완할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은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핵심원리인 평등이념의 실현을 도모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법안은 제1장(총칙), 제2장(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차별시정 의무), 제3장(차별금지 및 예방조치), 제4장(차별의 구제)의 총 4개의 장, 43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② 차별금지법 이외에 차별을 규제하는 법안은 없는가?
현재 차별금지 관련 법안은 노동부의 ‘남녀고용평등법’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다. 여성가족부의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이 있었으나 차별판단 및 구제에 대한 기능이 국가인권위로 통합되면서 법안은 폐지되었다.
③ 차별금지법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다루던 차별사유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인권위법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출생지, 원적지, 본적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역 등을 말한다),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하여 고용, 재화, 용역, 교통수단, 상업시설, 토지, 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나 그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이처럼 국가인권위법은 19가지 사유에 걸쳐 차별을 금지하였는데 권고법안은 ‘고용형태’를 더하여 차별사유를 20개로 확장하였다.
이 차별사유에 ‘고용형태’가 더해진 것은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갖는데, 누구나 알듯이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과 마치 신분화되는 듯한 차별형태들이다. 특히 여성의 비정규직화, 즉 고용에 있어서 성차별은 비정규직의 문제와 연동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성별화된 노동시장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차별문제에 대한 접근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또한 차별금지법에서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하여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 인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④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희롱금지조항이 있었는데 차별금지법에도 있나?
가장 눈에 띄는 부분 중에 하나다. 권고된 차별금지법은 성희롱의 범위를 확대하여 ‘괴롭힘’조항을 신설하여 ‘성별, 장애, 인종, 출신국가, 출신민족, 피부색,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차별’로 규정하였다.
‘사지 멀쩡한 놈이 왜 그래? 병신같이...’이라는 말이 평범하게 통용되고, ‘유색’의 외국인은 범죄자이거나 불법체류자로 코드화되어 있으며, 식당에서 ‘조선족’에게 반말은 예사고, ‘동성애자’는 변태(!)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이 법안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일상 속에서 우리 몸에 이미 새겨진 차별을 지워나가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무엇이 법적인 범위내에서 차별로 규정받을 만한 괴롭힘인지는 각 사유에 해당하는 현장활동의 경험과 상담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⑤ 경영계는 왜 반대하나?
경영계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우리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뒤집으면 지금까지 차별을 해서 경제가 먹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너무 솔직하시다.
성차별로, 비정규직차별로, 이주노동자차별로 지금까지 경제가 성장해왔다면 이제 그럴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한국이 경제규모상 선진국에 들어선지 오래며, 이미 국제적으로 합리적인 경영구조와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학력차별, 연령차별, 성차별 등을 제거하고 개인의 능력과 개성에 기반한 경영으로 리모델링한 기업들이 더 잘 성장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구시대적 경영방식을 아직 던져버리지 못한 일부 경영계의 목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⑥ 기존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시정권고에 그쳐 실효성담보가 어려웠다던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위’혹은 ‘실효성’은 그 법률적 권한수준에 의해서가 아닌 ‘인권침해’ 혹은 ‘차별’판단을 내릴 때 인권위설립의 배경과 의의, 그리고 인권법제정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잊지 않고 대체로 사회적약자의 입장을 고려한 속에서 결정을 내림으로 인해 확보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위의 판단범위가 점차 ‘차별’영역으로 넓어짐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구제의 실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시정명령 조치와 이행강제금제도,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법의 실효성을 높혔다. 특히 악의적으로 차별을 자행하거나 반복적으로 차별행위를 하는 경우 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결 할 수 있도록 하여 차별에 대한 예방적 효과를 갖도록 하고 시정조치에 대한 강제성을 일정정도 확보하였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되려면 성희롱사건의 미쓰비시 사례처럼 그 배상액이 수천억에 이르러 한 기업이 휘청할 정도는 되어야 예방적 효과를 갖는 징벌적 손배가 될 텐데 과연 한국의 기업풍토, 판결풍토 속에서 가능한 일일지... 한번 기대해 본다.
⑦ 더 소개할 만한 법의 흥미로운 점은?
차별금지법 2조 4항에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나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행위는 이 법에서 금지한 차별로 본다’라고 되어 있다. 즉 광고에 한정하여 미디어상의 차별금지를 규정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 특히 광고가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 것이다. 예를 들면 스튜어디스나 텔러를 모집하는 광고에 여성만을 출연시켜 마치 여성의 업무인양 이미지를 주어 남성의 배제를 조장하거나 육아는 여성만의 몫인 듯 엄마가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주장하는 학습지 광고, ‘눈으로 확인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습니다’라는 선전문구는 이 법에 의해 차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이제 ‘비장애남성이성애혈통주의’가 아닌 인권감수성에 기반한 광고행위만이 차별로 낙인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구에 의해? 우리에 의해... 음하하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 법임에도 불구하고 물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이며 그것의 실현은 사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법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존재해야 한다. 법만능주의는 위험하다. 법은 결국 위정자의 손에 있는 것이고, 그 집행 또한 사회지배집단에 의해 행해진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더 구체적이고 더 강력한 법이 필요한 법(!)이다. 우리가 종종 이런 말을 듣지 않는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즉 법이 없어도 우리 사회의 원칙과 정의와 평등과 자유는 자치적 윤리와 규범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켜져야 한다.
우리의 삶 안에 평등과 자유가 녹아들기 위해서는 법보다는 법을 만들었던 의미와 정신이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그것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맞게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문화적으로 형성되고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현재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고민해본다.
엄혹하고 불편부당한 현실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 일방적 피해를 구조적으로 집단적으로 해결할 법제개정 운동을 열심히 해왔지만 현실은 그다지 썩 좋아지지 않았다.
법이 멋있고 찬란한데, 우리의 현실은 지난하고 가난하다. 우리에게 현재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답은 가까이에 있다.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코에 찬바람이 슁 들어오면 어디론가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요즘 하늘 색깔은 왜 이리 이쁜거야. 아~일하기 시러.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