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민우칼럼 창] 우리사회의 벽에 부딪힌 학생·청소년 인권 입법운동_하승수
[민우칼럼 창]
우리사회의 벽에 부딪힌
학생·청소년 인권 입법운동
하승수 ●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중요한 성과를 꼽으라면, 여러 분야에서 입법을 통해 사회변화를 추구했다는 것도 포함될 것입니다. 반부패, 성평등, 시민참여, 경제민주화, 사회복지, 조세개혁,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입법운동이 펼쳐졌고, 상당부분 입법으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호주제 폐지운동은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것이고, 지방선거 직전인 지난 5월에는 지방자치 개혁의 중요과제인 주민소환제도가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국회를 상대로 한 입법운동 외에도 지역시민운동 차원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제정 또는 개정하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 보육조례 제정운동 등이 있습니다.
국가차원이든 지역차원이든 이런 저런 입법운동의 과정에 필자도 참여해 본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실제로 제도개선에 이른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입법운동에 참여하다보면, 일정한 벽에 부딪히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의제는 쉽게 추진되기도 하지만, 기존사회의 인식이나 통념을 깨어야 하는 내용의 법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필자가 참여해 본 입법운동의 경험 중에서 가장 완강한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경우들은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과 관련한 입법운동의 시도들입니다. 사실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은 성인들에게는 매우 인기없는 주제들입니다. 학생과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위협하는 사람들은 성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부모와 교사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이런 마당이니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이 성인들에게는 별로 인기없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은 정치인들에게도 별로 인기없는 주제들인 것 같습니다. 아마 학생이나 청소년은 선거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거권도 없는 학생, 청소년들의 인권을 옹호해 봐야 정치인으로서는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한국의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 상황은 매우 후진적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라는 국제조약에 가입한지 15년이 지났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라는 기구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여러 차례 개선권고를 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외로운 입법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는 학생 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습니다. 체벌, 강제 야간자율학습, 두발검사, 성적차별, 0교시 수업 등을 금지하고 학생회를 법제화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확대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하기야 학부모들 중 상당수가 강제로라도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두고 공부시키기를 원하는데, 이런 법안이 쉽게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국회에서는 교육계의 반발도 의식하겠지요.
지난여름에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 네크워크’에서 학생 인권법안 통과를 위한 전국순례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학생 인권법안에 대한 관심은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광주광역시에서는 학생권리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뜻있는 교사, 시민단체, 청소년단체, 학부모단체, 교육위원 등이 모여서 조례(안)을 준비하고, 광주광역시 교육위원회 주최로 조례안에 대한 공청회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벽에 부딪힌 모양입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부 교장단과 교육당국의 반발로 인해 표류 중에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시도는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경기도 부천과 군포에서 아동(청소년)인권조례 제정이 시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아동인권에 있어서는 별로 선진적이지 않다는 일본에서도 몇 군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는데, 한국은 아직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학생 인권법이나 학생권리조례가 통과된다고 해도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에 대한 인식수준은 낮다고 봅니다. 어쩌면 법제도 개선보다 더 먼저 있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문화를 밑바닥에서부터 바꾸고자 하는 노력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는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체벌사건으로 인터넷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교사와 학
부모 모두 학생, 청소년의 인권과 관련해서는 ‘침묵의 카르텔 ’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장 법이나 조례가 통과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번 제대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몇몇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법의 내용을 알고 토론이라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철저하게 어른중심의 사고에 빠져있고, 아직도 학생, 청소년을 독립된 인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어른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라도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라도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하승수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시민운동, 변호사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제주대학교 법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냥 풀뿌리운동과 아이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민우회와는 지방자치단체 예산분석활동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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