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민우ing] 우리 왜 결혼 안 하지? _ 구자진
[민우ing]
우리 왜 결혼 안 하지?
구자진 ●
영상 제작에 초보인 내가 처음 시도한 작품이 바로 ‘우리 왜 결혼 안하지?’라는 다큐이다. 제목을 “우리 왜 결혼 안하지?”라고 정했을 때 결혼을 꼭 해야 하는데 왜 안하냐는 질문으로 들릴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제목 선정에 논란이 있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넘겨 “왜 결혼 안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우리들이 직접 “우리가 왜 결혼을 안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여러 번의 기획회의 끝에 선택한 주제는 결혼하지 않는 비혼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남자친구와 함께 논의해서 비혼을 선택한 신나,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베테랑 학원강사 성민, 여성 공동체를 꿈꾸는 투잡스를 가진 에너지 넘치는 은경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과 이루고 싶은 꿈 사이에서 비혼의 삶을 살아가는 나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다큐는 다양한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한 이유와 결혼에 대한 생각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혼자 사는 여성들에 대한 주제는 새로운 소재도 아니고 방송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그렇기에 나의 영상물이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가 첫 고민의 시작이었다.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혼자 사는 여성들은 이른바 ‘싱글족’이라 불리는 능력있고 화려한 여성들이다. 그래서 그 조건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들은 혼자 살 능력이 없을 바에야 ‘차라리 결혼이라도 해라’는 강요를 받는다.
‘능력이 많아서도, 미래가 안정적’이어서도 아닌데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 비혼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그들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와 결혼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더불어 비혼 여성들의 행복한 홀로서기를 솔직담백하게 영상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다.
비혼으로 살아가는 것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꼭 결혼제도를 반대하고 거부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 비혼인 경우도 있고, 나의 의지로 비혼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은 그것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결국 우리사회 가부장제도의 핵심적 기제인 결혼제도의 정상성에 대한 균열을 가져온다.
결혼하는 삶을 정상으로, 결혼하지 않는 삶을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비혼들을 위한 사회제도적 장치가 거의 전무한 현실에서 혼자의 힘으로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비혼 여성들의 삶은 녹녹치 않다.
비혼 여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통적인 대답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지속적인 경제활동에 관한 문제였다. 그래서 때로는 비혼 여성들이 ‘대책없는 여자들’로 보여지곤 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설계는 없지만 우리는 비혼인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며 살 것이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지금 현재도 그러하듯이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가꾸어 나갈 의지가 있고 그것이 우리의 ‘대책 ’이라고.
이 다큐를 통해 비혼 여성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사회 안에서 함께 풀어가야 할 제도적인 문제들을 같이 마련하며 더불어 살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해보는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저출산이 사회적 위기로 부각되고 있는 이 시점에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사람들이라 불리는 비혼 여성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만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인정할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비혼 여성들인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결혼한 사람과 결혼 안 한 사람이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되지 않고 그에 따른 어떤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이 없는 사회, 단순한 차이가 차별을 낳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그런 세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있고 함께 할 친구가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기꺼이 서로에게 등을 내어줄 것이고 언제든 함께할 것이다. 결혼 밖의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앞으로의 행복도 그 누구의 도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구자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
소심한 그녀, 카메라를 들고 더 큰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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