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민우ing] 형법개정안 논의에 부쳐-쟁점을 중심으로 _ 반디
[민우ing]
형법개정안 논의에 부쳐
-쟁점을 중심으로1)
민우in반디 ●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 끊임없이 문제제기 되었던 성폭력 개념에 대한 정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논란은 피해자 지원의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실제 남성 중심적법 집행의 현장에서, 운동의 현장에서 이 개념의 불분명함은 피해자에게 그 피해로 고스란히 전가되었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990년대 초 이후 여성주의 운동진영에서 본격적으로 형법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으며,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권력관계의 불균형과 성차별주의를 반영하는 정치적인 문제로 설정하였다. 성폭력특별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개념정의가 명확하게 공유되지 못하고, 1995년 형법 개정 시에도 “정조에 관한 죄” 규정을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에 대한 범죄”로 정의하지 못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적인 성문화 속에서 특별법에 의한 법 적용과 해석이 남성 편향적이라는 문제의식, 가해자 중심적 판례 등은 형법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였다.
여성인권법연대2)에서는 2005년부터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검토와 함께 형법개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통한 개정안 발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논의과정에서 성폭력범죄를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의 죄”로 규정한다면 사회문화적인 변화에 맞춰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의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제기되었다. 형법 중 ‘강간과 추행의 죄’ 내용과 관련한 개정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여 그간의 논쟁을 거쳐 ‘최협의 폭행 협박설’과 ‘비동의 간음’, ‘친고죄 조항’, 부녀로 한정한 ‘객체의 문제’와 ‘행위 양태’에 대한 문제 등 이 개정안에 반드시 반영해야 할 중요한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다음은 논의 과정에서의 쟁점사항이다.
최협의 폭행협박설
‘저항하면 강간은 어렵다’거나 ‘강력한 거부와 항거가 있어야만 진정한 거부임을 알 수 있다’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협박을 요구한다. 안전에 대한 위협과 공포로 인해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죽을 만큼 저항할 폭행협박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동의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최협의 폭행협박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성폭력을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에 대한 죄”로 규정하고자 하며, 따라서 강간의 기본개념을 ‘동의하지 않은 성적행동’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친고죄의 문제
밀양집단성폭력 사건의 예를 통해서 보듯이 가해자가족에 의한 협박 등 피해자 인권침해가 심각하다. 피해자 본인이 고소를 한 경우에만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친고죄 조항은 처벌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피해자는 죄책감으로 고소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는 점, 합의하면 형사처벌이 면제됨으로 인해 가해자 측의 합의 요구나 협박으로 2차 피해에 시달리게 된다는 점, 사회적 범죄인 성폭력범죄에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수 없게 되어 법적 억제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진정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수사 절차상에서 피해자 보호 장치를 좀 더 세심하게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회적 범죄에 적극적으로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수 있도록 친고죄 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객체의 문제
현행 형법은 강간을 성기삽입 중심으로 규정하여 객체를 부녀로 한정하고 있다. 남성은 객체가 될 수 없어 강간이 인정되지 않으며 직접적인 성기 삽입이 아닌 경우 강간으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군대내 성폭력 등 동성 간의 성폭력, 유아 성폭력의 경우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성폭력을 “성적자기결정권의침해의 죄”로 규정하게 된다면 객체의 문제 역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우리사회의 성문화와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되는 사법체계 하에서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에의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6% 미만의 낮은 신고율로 이어지며, 94%의 드러나지 않는 성폭력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번 형법개정안 발의, 공청회 과정이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장이 되어 남성편향적인 법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회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반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
1)여성폭력관련 법(개정 포함)논의 단위인 여성인권법연대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의 범죄”와 관련된 형법조항 개정논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여성민우회도 함께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형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의 논쟁의 지점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형사법의 성편향(조국, 2003), 폭력 처벌규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및 재구성(이호중, 2006), 대법원판례바꾸기운동 자료집(한국성폭력상담소, 2006)등을 참고하였다.
2)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의전화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서울여성의전화연합,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면여성위원회(이유정변호사), 형법학자(이호중교수), 법여성학자(양현아교수), 소라미 변호사 등이 참여하여 여성인권법 개선을 목적으로 2005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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