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0월호 [특집]_생명과학기술과 여성 생명과학기술에 여성주의적으로 개입하기 _ 은날
[특집]_생명과학기술과 여성
생명과학기술에 여성주의적으로 개입하기
은날 ●
지난 해 우리 사회는 소위 '황우석 사태 '로 온 국가가 들끓었고 그 파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황교수의 연구의 성공에 대해, 그리고 이후 논문 조작과 관련하여 많은 논의들이 오고갔지만, 정작 그 연구과정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논의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못했다. [생명과학기술시대, 여성인권확보를 위한 국제포럼] (9월 20~21일)은 이처럼 생명과학기술 관련 논의에서 여성의 인권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이 자리를 통해 '생명과학기술과 여성의 몸'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의 활동과 고민을 나누고 국제적인 연대를 모색하고자 했다. 특히 <생명과학기술에 대응하는 각 국 여성운동의 실천사례 워크샵>(20일, 이하 워크샵)에서는 주로 각 발표자1)가 속한 단체에 대한 소개, 관련 활동, 각국의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발표자들의 발표내용을 중심으로 '생명과학기술과 여성의 몸'이라는 이슈를 둘러싼 각국의 흐름,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각 국의 다양한 상황, 다양한 활동
많은 국가들이 그렇듯이 영국의 경우, 한국의 황우석 사태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관련 연구의 속도를 늦추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규제 기관인 HFEA는 연구용 난자 기증 여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만약 이 과정을 거쳐 영국에서 난자 기증과 관련한 어떤 결정이 나온다면 이는 다른 국가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영국의 결정에
여러 국가의 의견 개진과 압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 난자 확보를 위해서 인공수정 시술 시 연구용 난자기증에 동의하면 시술 비용을 할인해주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The Corner House는 영국 내에서 인공수정 시술을 하는 여성 외에 일반 여성들의 난자 기증에 대해서는 완전 금지를 주장하지만, 인공수정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라도 난자 채취 과정의 위험성, 건강 문제에 대한 이슈와 관련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정부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에 반대하여 주정부 차원에서 관련 연구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Diane Beeson과 Emily Galpern이 활동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최근에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공적 재정 지원이 가능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법안 통과를 계기로 결성된 Hands Off Our Ovaries(HOOO)는 여성 건강 관련 활동가들과 인권 활동가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국제적인 연대체이다. ‘줄기세포 연구 좋습니다. 인간복제는 안 됩니다’라는 핸드북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들을 전개해왔다. 그리고 여성 건강과 사회 정의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여성들에게 안전하다고 판단이 될 때까지 복제 연구 목적의 난자채취에 대한 국제적인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Center for Genetics and Society(CGS)의 경우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을 생산심화시키고 재생산권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야기하는 신기술에 대해서 비판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줄기세포 연구 및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고 있다. 생명과학기술 관련 논의가 낙태 논의와 연결되어 이분법적으로만 흐르는 경향에 문제를 제기하면서2), 줄기세포연구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위험성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을 주 활동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더 많은 단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훈련 프로그램, 토론회 등을 진행하고, 특히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잡지, 일간지 등에 기사를 게재하는 활동을 통해 관련 논의가 단순히 찬반 흑백논리로 흐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인도의 사례는 체세포 연구, 보조생식기술이 그 사회의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구폭발을 막기 위한 산아제한정책, 그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문제는 간과된 채 ‘여성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되는 유해한 피임약,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산전 성감별의 만연 등의 사회적 맥락은 인도의 생명과학기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도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의료 부분의 민영화가 발전한 국가여서 많은 기술 발전이 민간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인공수정기술, 보조생식기술은 산전성감별의 도구, 새로운 경제발전을 위한 상품화, 상업화라는 맥락에서 발전되고 장려되고 있다. 따라서 인도에서 생명과학기술 관련 논의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 상품화하는 기술 발전과 함께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부의 제도, 사회문화적인 인식 등 보다 광범위한 수준에서의 문제제기를 통해 가능하다.
이처럼 각국의 사례를 통해 공통적인 부분은 줄기세포 연구가 각 나라마다 이슈가 되고 있지만 여성인권문제로 접근되는 것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연구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 연구의 효과가 과장되고, 상업성, 경제성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생명과학기술과 여성의 몸 ’이라는 이슈는 생명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여성의 지위, 경제적인 상황 등 그 사회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여성운동의 개입을 위하여
이러한 문제제기의 어려움과 관련하여 잔여난자를 연구용으로 제공할 것인가, 난자 기증의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 등과 같은 구체적인 논점을 두고 여성운동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라는 점이 논의되었다. 즉 생명과학기술과 여성을 둘러싼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성운동이 개입하는 방식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한 발표자는 한 사안에 대해 각기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단위에서 다양한 입장과 전략들이 제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각 전략이 다르다고 해서 적대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풍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인권 침해에 대한 이슈가 거의 제기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 단체만이 입장을 제시하고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이 이슈가 여론화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 이슈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이 제시되고 이 입장들이 논의되고 토론되는 과정을 통해 이 이슈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다양한 단위들을 조직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단체들이나 시민단체들과 함께 이 이슈를 제기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사회에서,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이 이슈 자체가 토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가이드라인과 같은 규제 마련을 위한 노력들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즉 우리의 목표가 규제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적절한 규제나 기준이 생기면 이를 통해 규제기구와 연구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규제 마련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실제로 무엇이 진행되도록 하는 구조적인 변화는 가져오는 노력보다는 용어 사용에 대한 좁은 논쟁에 빠질 수 있다. 규제 마련이 요구되는 지점, 맥락에 대한 접근을 통해 생명과학기술, 그것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대중적인 전략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는 문제들 - 국제 연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 참가한 발표자들은 10년 이상 여성건강, 생명과학기술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다. 이들이 그동안 제기했던 문제들, 활동방식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점들은 참으로 많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에 맞게 우리 나름의 이슈와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또한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또 하나,국제포럼을 기획한 민우회처럼 이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모인 이유는 국제적인 연대를 위함이었다. 자본과 인적 자원 등이 국경을 무시하고 넘나드는 상황에서 한 국가에서의 활동은 다른 국가에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치 인공수정 시술이 비싸고 어려운 영국을 피해 루마니아나 인도로 몰려드는 것처럼. 따라서 한 국가에서의 관련활동은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그 힘도 강력해질 수 있다. 워크샵에서 각 국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이러한 필요성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실제로 어떤 연대가 모색되어 왔으며 그런 사례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못한 듯하다. 모두들 공감했듯이 이 이슈를 둘러싸고 국내, 국제적인 조직화가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실천과 전략과 내용은 다시 우리 손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자, 생명과학기술과 여성의 몸이라는 이슈를 둘러싸고 국내적, 국제적인 조직화와 연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은날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여행이 주는 에너지를 우려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녀,
세계에 은날의 발도장을 찍다 !
1)이번 워크샵의 발표자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의 상황과 관련해서는 최경석(이화여대 생명윤리법정책연구소), 손봉희(한국여성민우회)가 발표했고, 다음으로 영국 The Corner House의 Sarah Sexton,미국 HandsOffOurOvaries의 Diane Beeson,인도 Sama의 N.B.Sarojini,미국 Our Bodies Ourselves의 Elana Hayasaka,Center for Genetics and Society의 Emily Galpern 순으로 발표했다.
2)미국에서 배아복제연구, 난자 제공 문제는 종종 낙태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즉,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줄기세포 연구가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모든 논의를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 외 다른 진보적인 입장은 모든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매도되고 있다. 이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논의의 흐름 속에서 줄기세포 연구와 여성의 인권과 관련한 논의를 전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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