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12월호 [생협이야기]이윤보다 생명과 평화를-한미 FTA 반대 제주 집회 참관기_김보영
[생협이야기]
이윤보다 생명과 평화를
한미 FTA 반대 제주 집회 참관기
김보영
지난 10월 23일부터 제주에서 한미 FTA 4차 협상이 진행됐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 결합된 각 사회단체는 22일부터 제주에 내려가 거리 홍보와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협상장이 있는 제주 신라호텔 주변은 경찰의 삼엄한 경계로 출입이 제한됐고, 24일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람들이 다쳤다는 소식에 긴장감이 더해졌다.
여성민우회 생협에서는 한미 FTA 소비자대책위 차원에서 25일 생협의 김자현 상무, 이경란 남서여성민우회 생협 이사장, 김동엽 남서지부대표, 그리고 나 4명이 함께 제주로 내려가 소비자대책위 집회에 참여했다. 다른 생협 조합원들도 참여했지만, 그 넓은 거리에 모인 사람은 백여 명이 안 되어보였다.
‘우리 농촌 다 죽이는 한미 FTA 반대’, ‘식품안전 위협하는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며 신라호텔 주변까지 갔다가 바리케이트 앞에 멈춰 서서 고함만 지르고 돌아오려니 아쉬웠다. 이어 집회를 하러 오던 농민들이 경찰의 저지로 도로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린 그곳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국제컨벤션센터를 빠져나오자 오히려 제주 주민들도 볼 수 있어 규모가 작은 우리집회에 좀 더 생동감을 주었다.
‘한미 FTA 반대’ 소리에 주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내다봐주고 박수를 쳐주는 분들도 있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 아이들도 한번 씩 뒤돌아보며 같이 ‘반대’라고 외쳤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여학생들이 아예 우리 안으로 쏙 들어와 함께 소리를 지르며 걷다 “깃발 들어봐도 돼요?” 하더니 우루루 깃발을 나누어 들고 뛴다.
먼저 내려와 제주시내 곳곳에서 삼보일배 등 거리 홍보를 제대로 해서인지, 아니면 우리 시위대가 대부분 여성이고, 고함소리도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 비전문적인 분위기 때문에 좀 더 친근했는지 아이들은 쉽게 섞였다. 아이들의 참여로 집회는 좀 더 즐거워져 우리도 힘이 났다. 전경의 바리케이트로 더 나가지 못하고 앉아 정리집회를 하는데 불법집회라며 해산하라는 경찰의 선무방송에 우린 분노했다. 아이들도 초보 집회 참가자답게 전경들을 향해 ‘너희 집은 농사 안 짓느냐?’며 경찰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에 주목했다. 제주에서는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친척 중에 농업과 관련된 집이 대부분이라 한다. 주민들의 관심과 아이들의 참여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날의 기억이 아이들의 삶에 작은 씨앗으로 내려앉기를 바란다.
집회를 마치고 저녁에는 제주의 생산자분들과 함께 한미 FTA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식품안전성뿐 아니라 지적재산권과 의료, 교육, 물 문제까지 한미 FTA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있었다. 협상과정의 비민주성과 정부의 비밀주의로 인해 민주주의는 자리를 잃었고, 그 실체와 내용에 있어서 미약하게나마 있는 사회의 공공성마저 자본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해남과 진주 지역은 상반기 내내 한미 FTA가 화두가 되어 서명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농민운동이 활발해서일까? 생협운동도 지역과 잘 결합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에 비해 서울을 비롯한 도시는 그리 크게 움직이지 못한 것 같다. 11월 범민중대회가 걱정스럽다. 서명활동도 제대로 벌이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집중할 수 있을까? 정권에 대한 심판이 될까?
제주에서는 쌀처럼 취급받는 감귤협상 때문에 온 제주가 들썩였지만, 사실 제주도는 한미 FTA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고 한다. 이미 특별자치도로 지정되면서 교육, 의료 등 모든 것이 개방된 상태라고 한다. 외국투기자본이 들어오기 쉽고 일하는 사람들은 쉽게 해고될 수 있다. 주민의 자치권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구의원, 시의원이 없는 이상한 특별자치도라고 한다. 이미 한미 FTA 협상의 미래가 제주에서 특별자치도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엔 제주생산자조합 김진수 대표의 농장에서 감귤을 땄다. 대학나무라 불리던 감귤. 무농약재배로 바꾸면서 생산량이 아주 적어졌다고 한다. 몇 시간 따고 나니 트럭 가득 감귤이 실렸다. 내심 우린 뿌듯해했는데, 제주분들 이야기가 우리 80여명이 일한 양이 겨우 전문 일꾼 3명이 하는 것밖에 안된다고 한다. 아 훌륭하신 전문일꾼들!! 밭을 망친 것은 아닌지 모두 걱정했지만, 우리 초보 일꾼들은 귤 따는 재미로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딸 때는 주의사항을 잊어버려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고 파랗고 떨어뜨린 귤이 많아 결국 우리가 사오게 됐지만.
귤 따고 난후 배추밭에서 풀 제거와 벌레잡기를 했다. 회장님은 올해 제주에서 직접 배추를 길러 조합원들과 김장을 해보려고 배추 씨를 뿌렸다고 한다. 배추씨가 자리 잡기도 어려운데, 좀 자란 것은 굼벵이가 따먹어 수확이 적다고 한다. 예년처럼 뭍에서 공수를 해 와야 된다고 한다. 배추 주변에 곱게 난 쑥이 정말 이쁘다. 봄쑥처럼 연하고. 이거 떡 해 먹으면 안되나요?
소비자대책위원들은 26일 산지체험과 일손돕기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난 하루 휴가를 내고 한라산 백록담에 갔다. 평탄한 성판악쪽 길을 따라 물 한모금 마시고 쉴 새 없이 올랐더니 3시간 반 만에 백록담에 올랐다. 등산 온 초등학생들, 뭍에서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함께 바다인지, 구름인지 모를 전경을 감상했다. 주변에 빡빡머리에 검정색 옷을 입고 ‘10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달고 있는 한 무리의 청년들. 이번 협상 때문에 4.3사태 때보다 더 많은 1만명의 경찰병력이 뭍에서 배타고 왔다니 섬뜩하다. 그들도 떠나기 전에 백록담에 들렀나보다. 가방에 붙어있는 ‘식품안전 위협하는 한미 FTA 반대’ 라는 시뻘건 구호가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내려오는 길은 관음사쪽 길. 길이는 짧은데 지형이 험하고 식생도 다양했다. 4.3항쟁의 흔적도 여기저기. 6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민중의 삶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왜 이리 약한지. 역사의 진보를 묻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가?
다행인지, 한미 FTA 협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저항을 조직할 시간이 우리에게 생긴 셈이다. 농촌도, 민중도 없는 한미 FTA 이후를 알리고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거리에서 저항의 축제를 만들게 되길 꿈꿔본다. 사악한 이윤보다 생명과 평화에 대한 존중이 물결치게 되기를.
김보영 : 동북여성민우회 생협에 전화하면 듣게 되는 신선한 목소리의 주인공. 지역에 젊은 바람을 몰고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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