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12월호 [회원이야기]내 인생의 스페셜_타기
[회원이야기]
내 인생의 스페셜
타기
‘그래 이건 내 인생의 스페셜이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웃을지도 모른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작년에 미우나 고우나 ‘나의 일터’에서 해고된 이후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구제신청이 모두 기각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마지막 중노위 결과를 받고서는 다음 법적 절차를 밟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선택해야하는 처지가 원망스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방노동위원회의 판결에 동의한다는 중노위의 ‘부실한’ 판정문을 보면서 지난 5년의 근무기간이 한 순간에 부질없이 느껴졌다. 나 자신이 그렇게 처연할 수 없어서 몰래 옥상에서 많이도 울었고, 서럽게 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맛보았다. 이건 스페셜이 아니라 혼자서 최악으로 밀려난 것만 같았다. 온종일 우느라 진이 빠진 상태지만 그래도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송사엔 휘말리지 말라는 시쳇말도 있는데, 하지만 기각을 인정할 수는 없는데’ 하루에 수백 번 머릿속을 맴도는 양 갈래 생각은 나를 옥죄기만 하고 어떤 선택도 내릴 수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조언을 구하고 다녔지만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고 자꾸 회피하려고만 하는 자신을 봐야하는 몇 주간은 지옥 같았다.
처음엔 “네가 자랑스럽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너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의 격려가 대답을 회피하게 위한 말일 뿐이라며 원망도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대성통곡을 한 날로부터 나는 서서히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비록 분명한 목표와 전망을 갖지는 못했지만 지금 앞에 놓인 일부터 치러내자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내가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응원이 나에게 부여해준 힘이라고 느껴진다.
지금 나는 몇 달 전만해도 내가 여기까지 오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작년까지 출근을 하던 학교 앞으로 등교(?)를, 비정규적인 출근을 하고 있다. 민우회와 연대하여 일주일에 3번씩 점심시간에 학교 정문을 향해서 1인 피켓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비록 점심시간에 한해서 하루에 30분으로 한정한 시위지만 내가 첫날에 느낀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생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나선 나는 한 번에 쏟아지는 수십 개 눈동자에 표현할 길 없는 당혹감에 휩싸였지만 짧은 시간동안 의연해지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눈을 피하는 교직원들에게 목례도 하면서 말이다.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던 상근자들의 눈짓 응원, 지나가는 몇몇 학생들의 호의적 관심이 큰 의지가 되었다. 1인 시위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상근자 진협이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구나.”라고 하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시위에서 나는 첫날 당당하게 임했다는 자부에도 불구하고 다시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아는 얼굴을 피하여 골목에 서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인물 속 내용을 한마디로라도 전하며 건넸을 때 그제서야 유심히 쳐다보고 안내문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읽어준다. 사람들이 공감해줄지도 모른다.’ 라는 첫날의 작은 감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했다.
이렇게 느리지만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을 주는 사람들은 민우회 사람들이다. 1인 시위 사실이 알려지자 회원들은 한사람, 한사람 '돕겠다, 피켓을 들겠다'고 연락을 했다. 지금까지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피켓을 들었고 나는 주로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내가 나가지 못한 날에는 비가 와도 민우회가, 아니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러 학교로 갔다. 상근활동가들은 바쁜 업무를 쪼개서 순번을 정해 나오고 있다. 회원들 중에는 아기를 맡겨두고 나온 친구도 있었다. 피켓시위를 계획하지 않은 날, 모임에서 스스로 시위팀을 조직한 친구는 월차를 내고 참여했다. 근처에 직장이 위치한 한 회원은 시위가 없을지도 모르는 날인데도 나왔다가 우리를 만나서 회사에 외출신청 전화를 하고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1인 피켓 시위 외에도 우리는 근 2주간 학교 측에 동문이름으로 보낼 의견서에 이름을 올려줄 동문들을 조직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주변 선후배들을 통해서 “계약직이기에 기간이 만료하면 나갈 수밖에 없는”것이란 일반적인 여론을 전해 듣고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내안의 목소리이자, “신청인이 계약기간이 정함이 있음을 몰랐다고 볼 수 없다”는 노동위의 논리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반적이고 만연한 사례라고 현실의 두꺼운 벽을 인정하고 말 것인가. 사측이 계속된 재계약을 한 것에 나 개인의 특수사정을 봐준 것이란 변명을 근거로 삼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법적 과정에서 ‘순진하던 나’를 수없이 탓하고, 내 업무 자체를 두고 비정규직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규정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는 많은 판례들을 접하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비정규직을 악용하는 일들을 없어야한다고 믿는다. 갑자기 불려가서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통보당하는 수많은 사태를 사람들이 계속 모르는 척하게 둘 것인가. 우리가 조직하고 있는 동문들은 이 소식을 들으며 주변에서 소리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비일비재한 비정규직 해고사건에 놀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를 계기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작은 싸움은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다. 나는 매일 자조적으로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하고 되뇌인다. 하지만 나는 나의 5년과 지금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작은 투쟁이 이대로 끝날지, 또 다른 지난한 과정을 시작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나에겐 지금이 가장 특별하며, 이 힘든 과정에서 사람들과 나눈 교감이 내 인생의 스페셜이다. 내 곁에는 정말 ‘스페셜’한 민우회가 있고, 아니, 사람들이, 아니, 민우회가 있다. 헷갈린다. 나에겐 민우회가 사람들이고 사람들이 민우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타기 - 타기는 "S여대 사건" 당사자로 사람들의 관심에 매일매일 자라고 있고, 지금은
민우회에서 임시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 수 없어
벌벌 떨기도하고, 한편 '즐겁기'도 합니다. 연말은 즐겁게 보내세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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