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12월호 [쟁점과 현황]반환 미군기지의 문제점과 진행 상황 - 미군기지, 환경정의를 훼손하다_고이지선
[쟁점과 현황]
반환 미군기지의 문제점과 진행 상황
- 미군기지, 환경정의를 훼손하다
고이지선
많은 환경오염사고의 피해자들은 나쁜 환경에 노출되기 쉬운 빈민, 유색 인종이거나 오염물질에 취약한 아이들과 임산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적 발언력이 약한 이들에 대한 환경보건 정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불평등한 환경문제를 사회적 정의와 결합한 개념이 바로 환경정의이다.
"매향리 사격장을 여의도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매향리 사격장은 50년 넘게 미 공군의 폭격 훈련장이었다. 지난 2005년에 폐쇄되었지만 심각한 중금속 오염이 밝혀진 이 곳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 이런 구절이 쓰여 있다. "매향리 사격장을 여의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군 폭격장이 여의도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그 많은 사람들과 빌딩들이 있는데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매향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하지 않은가?
2000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조사 결과, 이 지역 주민들의 35%가 난청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일반인에 비해 청력이 20데시벨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유산율도 20%나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역시 지역 어민들에 불과하고 서울과 멀리 떨어진 이곳의 문제는 큰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어떨까.
미국 중심 사고에서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반도는 매향리처럼 변방에 불과하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은 북핵 문제, 주한미군 재배치 등 미국 정책과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니고서는 주요 이슈가 되기 힘들다. 그것은 곧 차별정책이 실시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환경의 사각지대, 이중기준
한국에는 100여개의 미군기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 국방부는 101개, 한국 국방부는 92개로 발표함) 그런데 이들 미군기지에는 환경에 관해서는 한국법도 미국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자체 환경관리기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법과 같이 강력한 규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흔히 미군기지를 환경의 사각지대(Untouchable)라고 표현한다.
미군기지의 88%가 미국 내에 있고 700여개가 해외에 위치해 있다. 미국 내에서도 군 기지 환경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적용하는 법률이 있다. 해외 주둔 미군에는 각 국의 상황에 따른 다른 법률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미국과의 외교/안보 관계에 밀려 환경문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2003년 한국과 미국은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라는 긴 이름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미군기지를 반환할 때 공동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 오염이 발견되면 미군이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명확한 오염과 정화 기준은 마련하지 않았다. 2005년부터 환경정화 기준을 둔 한미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오염자 부담원칙만을 내세운 환경부는 주한미군 이전 사업과 한미 동맹을 양손에 쥔 국방부와 주한미군에 힘없이 밀려 버렸다.
결국 지난 7월, 미군이 모든 반환 조치를 마쳤다는 15개 미군기지를 반환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미군이 취한 조치라는 것은 지하의 유류시설제거, 유해한 냉매제가 사용된 에어컨 제거 등 시설 철수와 청소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미 공동 오염조사에 따르면, 29개 조사 미군기지 중 26개 기지에서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른 기준을 초과할 만큼 심각하게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었다. 전문가들은 법에 명시된 기준치는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기준치 이하일지라도 유해 물질이 발견된 것만으로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심각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을 덮어 두고 미군은 그대로 반환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성의'를 받아들였다.
미국의 차별 정책은 여기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 KISE)에 대해서만 치유하겠다고 하지만, 국내법 기준을 초과한 오염이 KISE 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다. 미국 내에서는 오염유해성 평가 등을 실시하고 있다.
각국 국민들에게 전가된 피해
환경부 등 한국 정부는 스스로 '애초 협상 목표에 미치지 못했으나, 미군이 해외에서 정화한 사례가 없어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미군이 해외 주둔 미군에 적용하는 규제가 없는 것을 보여준다.
필리핀에서는 92년 폐쇄된 미군기지 터와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오염에 노출되어 백혈병 등 암 관련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2세들이 선천성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알려진 피해자만 수백 명에 달하고 있고, 매년 아무런 보상이나 의료 지원도 없이 피해자들이 사망하고 있다.
카리브 해에 있는 비에케스는 매향리와 비슷한 경우인데, 미 해군 훈련장 때문에 비에케스 주민들의 암 발생률은 푸에르토리코의 다른 지역보다 30% 이상 높다. 공장이 하나도 없는 작은 섬인데도 주민들의 체내 중금속 농도 조사에서 대상자의 44%가 수은 중독 상태였고, 73%가 납 중독으로 밝혀졌다. 이들 대부분이 임산부와 아이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적용될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환경문제는 방치되고 있다.
여전히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정화 문제는 한미 간 논의 대상이다.
2003년 합의서에 명시하지 못한 '오염정화의 기준'을 뚜렷하게 합의해야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나 북핵 문제 등에 흔들리지 않는 환경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11년까지 한국으로 반환될 미군기지는 60여개에 달한다. 앞으로 공원, 학교뿐 아니라 여러 공공시설로 다시 태어날 이 공간의 환경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화 비용을 누가 지불 하느냐도 문제이지만, 제대로 오염정화가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교/안보라는 이름으로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정부를 보면, 오염 정화가 제대로 되는지 지켜보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는 올해 7월 전까지는 국회의원에게 조차 보고가 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시민단체가 제기한 춘천 캠프 페이지의 오염조사 결과 비공개에 대한 처분 취소소송은 이런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자료를 공개하는 일이 가장 먼저가 될 것이다.
고이지선 - 녹색연합 녹색사회국 활동가.
미군기지 환경피해 때문에 아픈 필리핀의 아이들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픈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환경정의를 실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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