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12월호 [쟁점과 현안]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날치기’당하다_최진협
[쟁점과 현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날치기’당하다
최진협
2006년 11월 마지막 날, 수많은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반대했던 비정규직 관련법(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노동위원회법)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야합으로 직권상정되어 날치기 통과되었다. 이는 10년 전 노동자를 쉽게 정리해고하고 파견이라는 중간착취를 합법화시켰던 ’96년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너무나 닮았다.
그러나 이번에 날치기 통과된 비정규 관련법은 단언컨대 ’96년 노동법개악보다 더욱 노동자의 삶을 비참하게 옥죄일 것임이 분명하다.
2년 기간제한은 정리해고보다 손쉬운 해고방안
’96년 말, 정리해고가 입법화되면서 노동시장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경영상 이유가 있으면 몇 가지 절차만 밟아 누구든 해고시킬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안정된 생활을 저해하는 핵심이었고, 회사로서는 너무나 손쉬운 해고방안이었다.
그러나 정리해고보다 더 손쉬운 해고방안은 이번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명시된 “2년 기간제한” 규정이다. 이 법을 근거로 이제 회사는 어떤 업무에든 ‘2년 내’라는 기간만 정해서 고용한다면 언제든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있고, 또 ‘해고’라는 ‘칼’을 들지 않더라도 기간이 지나면 기간만료로 계약관계를 끝낼 수 있다. 이는 정리해고보다 더욱 ‘간결하고 깨끗하게’, 노동자의 저항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손쉬운 해고방안이다.
이러한 비정규 ‘악법’은 상시적 업무를 하는 계약직 노동자의 계약해지가 해고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그나마의 여지마저 묵살하고, ‘계약해지’는 계약이 끝난 것일 뿐, 해고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에 34명 중, 6명만 제외하고 12월로 모두 계약을 끝낼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10년 넘게 일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계약 끝났다고 나가라고 하는데, 이런 회사한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건지…”
“12년을 근무한 40세도 안된 성실히 일해 온 직원을 이제 와서 계약기간이 끝이니 나가라니요”
-비정규직법안 내 사례로 바꿔내기1) 중-
더욱이 ‘2년 기간제한’은 계약직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진실을 “2년 뒤, 정규직화”라는 숱한 언론과 정책의 감언이설 속에 숨길 수 있기에 96년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저항을 이끌어낸 정리해고보다 한수 위일 수밖에 없다.
“2년 뒤 정규직화”는 허상
이 법이 통과되자 많은 언론에서는 “2년 뒤 정규직화”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 “2년 뒤 정규직화”는 소급적용되지 않으며 이 법이 시행되는 2007년 7월부터 2년 이상 고용되는 노동자에 한한다. 따라서 그전에 아무리 오랜 기간을 계약직으로 일했다 하더라도 똑같이 법이 시행되는 2007년 7월부터 2년 이상 고용되어 2009년 7월을 넘어서서 계속 고용되어 있어야만 정규직화가 가능하다. 물론 법안 자체만 보면 2년 계속 고용 시, 정규직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사용자가 과연 ‘쉽게 해고 못하고, 인건비도 많이 들고, 노조까지 만드는’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는가. 결국 이 법의 진실은 ‘2년 뒤 정규직화’가 아니라 ‘2년 뒤 계약해지’다. 이것이 과도한 우려가 아님은 96년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즉, ‘2년이 지나면 직접고용’이라는 규정이 2년 뒤 직접고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2년 뒤 계약해지’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법안이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온갖 언론이 2년 뒤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저는 파견으로 2년을 근무하면서 연장근로수당은커녕 임금은 정규직의 1/4도 안되게 받았습니다. 처음 들어 올 때는 그냥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시켜 주겠다기에 그 말만 가슴에 새기고 2년을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 2년 만료일이 다가오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그냥 아무렇지 않게 퇴사를 하랍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제 무너지는 마음을 모를 겁니다. 사탕발림으로 꼬셔놓고... 나중에는 가차 없이 버리는... 우리가 무슨 물건입니까?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느냐 구요.”
-비정규직법안 내 사례로 바꿔내기 중-
특히, 함께 날치기된 파견법 개악안은 2년 뒤 직접고용 의제규정마저 ‘직접고용의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변경시켜 과태료만으로 직접고용의 책임을 면하도록 하여 기존의 법에서 더욱 후퇴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별이 싫어요’
차별은 차이를 이유로 분리하여 한쪽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다. 똑같이 노력하고, 똑같이 일하는데 불이익을 받는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그러나 노동시장은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차이를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차별은 더욱 견고해졌다. 비정규직은 동일․유사한 업무를 함에도 정규직에 비해 월급도 적고, 손쉽게 해고되었으며, 복지측면에서도 열악한 형편이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비정규직은 새로운 신분제도처럼 계급화되고, 인격적 종속과 차별로 이어져 노동자 양극화의 핵심이 되었다.
“여름에 시댁이 집과 논밭이 떠내려가는 수해를 입었습니다. 수해지역공무원들은 일주일간 특별휴가를 주길래 저도 해당될까 싶어 말씀드렸더니 안 된답니다. 행정사무보조 비정규직이라서…”
“제가 출산을 들어가려고 출산휴가를 달라고 하자 비정규직은 출산휴가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회사 내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행정실에서 비정규직만 체육복을 제공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팀장이 바로 행정실로 전화해서 ‘그걸 누군 주고 누군 안주냐’며 항의를 하며 체육복을 받기는 했지만 잘못한 한 것도 없이 참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나에게... 늘... 반말이다. 존대를 쓰는 사람은... 10%정도? 나에게 욕까지 하며 ‘이년, 저년, 니가, 야’ 이런 호칭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계약기간이 끝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수많은 정규직들로부터 나의 미래를 염려 당했다. ‘계약기간이 다 되어 가는데 어쩔 거야? 어디 가서 6개월만 알바 하다가 다시 와… 6개월 지나면 다시 계약할 수 있어’ 등 끊임없이 비정규직들은 어딘가 완전하지 못한 모자란 존재처럼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것 같다.”
“추석명절에 정규직 공무원들은 성과급과 명절상여금이 동시에 지급되어 웃음꽃을 피웠지만 비정규직은 그런 것이 없는 관계로 그렇지 않아도 궁핍한 생활인데 더 궁핍해져만 간다”
-비정규직법안 내 사례로 바꿔내기 중-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의지를 갖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이 사회의 핵심의제다. 그러나 비정규법안이 담고 있는 ‘차별금지’의 규정은 노동시장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는 차별에 손도 델 수 없을 만큼 무디며, 형식적이다.
예상되는 미래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KTX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에서도 볼 수 있듯 많은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최근 은행권에서 직무분리2)를 통해 여성노동자의 고용현실을 악화시키는 것은 이 법을 통해 거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계약직과 파견노동자를 확대시키고, 차별금지에 대한 의지가 부재한 이 법을, 날치기시킨 거대 양당과 정부, 보수언론은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과연 이 법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1) 한국여성민우회는 11월말까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사례를 접수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확보에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 알려내고자 “「비정규직 법안」 내 사례로 바꿔내기”를 운영하였다.
“「비정규직 법안」 내 사례로 바꿔내기” 홈페이지 <http://www.womenlink.or.kr/labor/intro.php>
2) 은행권의 직무분리란, 기존에는 창구업무와 사무업무 등에서 정규직과 함께 일하던 비정규직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전에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수행하던 업무 중 예를 들면 빠른 창구업무 등을 비정규직의 업무로 배치하고 비정규직으로만 구성된 직군을 새로이 신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은 정규직
최진협 | 상근활동가
비정규직 악법이 시행되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상담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야 하나..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뇌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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