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12월호 [민우ING] 외화더빙모니터링보고서-그 여성들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_한국여성민우회 외화다시보기모임
[민우ING] 외화더빙모니터링보고서
그 여성들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한국여성민우회 외화다시보기모임
TV외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상의 성차별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모인 우리는 지난 9월 9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2개월간 공중파 방송(MBC, SBS, KBS1, KBS2)에서 방영된 영어권 외화 27편1)을 모니터링 하였다. 대상 영화는 공중파 방송사를 통해서 방영되는, 영어로 제작된 외화로 한정하였다. 공중파 방송사를 선택한 이유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볼 것 같기 때문이고, 외화로 한정한 이유는 존대와 하대의 구분이 없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번역된 한국어의 성차별성이 편견과 관행의 문제임을 선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어를 영어로 한정한 이유는 존대와 하대의 구분이 없는 대표적인 외국어이기 때문이며, 외화다시보기모임이 그나마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영어이기 때문이었다.(^^)
1. 남편은 반말, 부인은 존댓말?!
첫 번째 문제제기. 가장 빈번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차이가 있다. 바로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존댓말을 그리고 남성은 여성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제기에 대해서 혹자는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에서 흔히 남성이 여성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되물으련다. 이승기 노래 '넌 내 여자니까'의 가사 "너라고 부를께, 누난 내 여자니까, 넌 내 여자니까"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여우야 뭐하니'의 철수(천정명 분)는 왜, 늘 "누나"라고 부르던 9살 연상인 병희(고현정 분)를 연인이 되는 순간 갑자기 "병희야"라고 부르는 거냐고.
모니터링을 실시한 27편의 영화 중 남녀의 부부관계나 연인관계가 나오는 영화는 총 15편2)으로 55.6%를 차지한다. 또한 이러한 설정이 나오는 영화 15편 중 12편3)(80%)에서 여성배우자 혹은 여성연인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존댓말을, 남성파트너들은 그녀들에게 반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표> 부부관계에서 성별에 따른 불균형한 대화의 사례
영화 |
원 대사 |
번역 대사 |
투모 로우 |
남편 : I just saw that Sam got an F in calculus. 부인 : I'm aware, Jack. I get a copy of his report card too. |
남편 : 샘 성적표가 왔는데 알아? 미적분이 F야. 부인 : 알아요. 성적표 봤어요. |
트루 크라임 |
남편 : It's me, sweetheart. 부인 : Steve, thank God. Where are you? 남편 : I'm at the paper. They roped me in. 부인 : Oh no. Did they call you at the gym? |
남편 : 나야. 부인 : 세상에...지금 어디에요? 남편 : 일이 좀 생겼어. 부인 : 헬스클럽으로 전화했어요? |
대화는 상대적인지라 대화에서 사용하는 언어 역시 상대적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반말을 사용할 때, 남성의 그 언어는 사용자의 위치뿐만 아니라 듣는 여성의 위치도 결정한다. 내가 처음 보는 남성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때, 나의 존대는 내 인격의 훌륭함(^^;)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남성이 나에게 하대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 그 남성의 위치가 나보다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남성이 나에게 반말을 사용한다면 그 순간 나의 위치는 그 남성보다 낮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의 남성 파트너들은 반말을, 그리고 여성 파트너들은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서로의 위치를 위계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2. 성격은 남자만 있다? - 역할표현에 쓰이는 반말, 여성은 적용제외
악당캐릭터이거나 긴박한 상황을 표현해야 하거나, 극도로 화가 난 상황을 표현할 때에는 성별이나 연령, 계급 등이 무시된 채 그 상황과 캐릭터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일관되게 반말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말투에 의한 역할과 캐릭터표현을 성별로 살펴보았을 때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1) 누구에게나 반말하고 반말당하는 악당! 그 악당에게 존대하는 그녀들
자, 아무에게나 일관되게 반말을 하는 나쁜 캐릭터 악당은 당연히 주인공을 비롯한 모두에게 반말을 ‘당’하지만, 이들에게 유일하게 존칭을 써주시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여성이다.
다음은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 악당(스티븐)이 상대방 여성(스텔라-주인공들 중 유일한 여성)이 자신이 죽인 사람의 딸이란 걸 의심하는 순간의 대사이다.
영화 |
원 대사 |
번역 대사 |
이탈리안 잡 |
스티븐 : There's only person I've ever heard say that 스텔라 : I don't remember. You are hurting me. |
스티븐 : “그거 알아? 너와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 스텔라 : “이거 놔요. 아파요.” |
영화에서 모든 출연진은 아무도 악당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여성만이 악당에게 사로잡히거나 고통을 당하는 순간에도 예의바르게 존대해주신다. 혹시 남자쪽이 더 나이가 많아서가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면? 자, 생각해보자. 우리는 얼굴로 나이를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얼굴생김새로 나이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예의에도 어긋난다(--;). 그것은 번역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번역자가 보는 시나리오에 캐릭터의 나이가 나와 있지 않을까라고? 원문시나리오를 찾아서 대조해봤다. 그런 거 없다.
2) 거친 그들은 반말, 거친 그녀들은 거친 와중에도 존대
영화 [블레이드2]와 [캐러비언의 해적]은 소위 ‘액션’영화이고 ‘액션’영화의 주인공인 남성들은 거칠고 험한 캐릭터를 표현한다. 그래서 모두들 주로 거침없이 반말을 사용하는데, 특히 애인관계이거나 사귀는 관계에서는 여지없다. [블레이드2]에서 블레이드도 [캐러비언의 해적]에서 해적도 모두 반말이다. 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시카고]에서 르네 젤위거는 살인자에다가 교양도 없고 무례한 캐릭터로 분했다. 그러나 이 거친 캐릭터는 남성들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사용한다.
3) 친절한 여자들에겐 계급 효과가 사라진다.
외화 더빙에서 여성과 남성의 대화는 사회적 지위와 친밀성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은 대부분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은 누구에게나 존대를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이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는 것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요, 남성다움의 표식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언어를 사용할 때 자유롭지 않다. 즉 여성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을 표현하듯이 대부분의 경우 상대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부드럽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
영화 [파프롬 헤븐]의 경우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가 영화의 배경이다. 집주인 남편(백인)은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지만, 집주인 여성(백인)은 누구에게나 존대를 한다. 이 여성이 반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뿐이며 자기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남성, 흑인)와 가정부(여성, 흑인)에게 모두 존대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인 남편은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모두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이런 현상은 [스타워즈]나 [언더월드]에도 나타난다.
3. 당신은 하오, 나는 해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나오는 ‘로즈메타’(가게주인, 여성)와 ‘코넬리우스’(마법부 장관, 남성) 사이의 대화 한 토막.
코넬리우스 : 아 그거야 아시다시피 살인범이 탈옥했잖소.
로즈메타 : 시리우스 블랙 말인가요? 흐흥. 그 사람이 여길 왜 오는데요?
코넬리우스 : 해리 때문이오.
로즈메타 : 해리라구요?
자, 남성은 ‘~하오’를, 여성은 ‘~해요’를 쓰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쉽게 가자. 여성에게 주어지는 해요체에서는 가벼움과 애교(?)가, 남성들에게 맡겨지는 하오체에서는 무게감과 권위가 느껴진다. 당장에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하오체’를 한 번 검색해 보시라. ‘무게’나 ‘권위’ 따위의 낱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사회에서 그와 같은 단어는 여성의 몫이 아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바로 하오체와 해요체가 한국어의 높임법 분류에 속한다는 것. 하오체는 ‘예사높임’으로, 상대, 즉 듣는 이가 친구이거나 아랫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높여 말할 때 쓰는 높임법이다. 따라서 ‘절대로’ 윗사람이나 연장자에게 써서는 안 된단다. 반면 해요체는 상대방을 무조건 높이는 것으로, 합쇼체보다는 격식을 덜 차리지만 친밀감을 배가할 수 있는 높임법이다.
정리하자면 상대가 나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일 때 그 상대를 높이는 높임법=하오체=남성발화, 상대가 나보다 높을 때=해요체=여성발화. 어미만으로 이토록이나 명확하게 상하를 구별할 수 있다니, 오 놀라워라, 한국어. 원작 영화에서는 단지 친분이 있는 가게 주인과 손님 이상이하도 아닐 터. 설령 상대가 마법부 장관일지라도 등장인물의 성별에 따라 갑자기 위계질서에 편입하는 이 기현상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제 영화나 책에 나오는 ‘하오’가 ‘명백한’ 반말이 아니라고 좋아하지 말자. 그건 자신의 교양을 보이기 위해서건, 관용을 내세우기 위해서건 어쨌건, 단지 (높은) 남성이 (낮은) 상대 여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니까 말이다.
나오며 : TV외화다시보기를 다시 보며
혹자는 남성/악역이 반말을 하고 여성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현실’, 바뀐 지 좀 오래 되지 않았나? 또 보자. 어떤 사람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반말을 해댄다면 당신, 어떻게 하겠는가? 대번에 “그런데 왜 반말이세요?”라고 따지거나, 소심해서 그렇게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날 저녁 ‘오늘 겪은 황당한 일’을 친구들에게 구시렁대지 않겠는가?
이처럼 TV 외화 번역의 ‘현실’이 실제 현실에서 뒤처져 있는 까닭이 개봉영화를 몇 달~몇 년 뒤 방영하는 그들만의 ‘동떨어진 타이밍’ 때문일까? 혹은 번역학원에서 가르친다는 소문이 있는 ‘모범번역’ 때문일지, 사회와 번역자 자신이 ‘남성답고’ ‘여성다운’ 말투를 내면화한 것이 ‘듣기에 거슬리지 않는’ 번역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원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대/하대가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원어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어내는 일은 몇몇 번역자 개인의 ‘양식’이 아니라(물론 번역자의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영화가 지상파 더빙 판에서는 남-반말, 여-존댓말이던 것이 오히려 케이블 TV 자막에서는 남녀 공히 존댓말을 사용한 예도 있는 것처럼!), 저런 번역들을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실제 부부나 연인이 서로 공히 존댓말을 하거나 반말을 하는 사례가 이전보다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여기서 한국어의 높임법을 없애자거나 존댓말만 쓰자거나 반말만을 남기자는 유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상-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굳이 성에 따라 반말-존댓말로 위계를 세우는 번역은 분명 문제가 있다. 성차별적 의식에 기반한 번역은 성에 따라 위계적인 언어를 써야한다, 혹은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식을 확산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적 언어사용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주말 TV 방영 영화를 볼 당신, 새로운 눈과 귀로 영화를 한 번 들여다보자. 모니터링에 딱 걸린 것과 같은 표현들이 나온다면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한 마디 남기는 것이 어떨지?
1) MBC(총 11편) - 애프터 선셋, 블레이드 2, 미션, 시카고, 상하이 나이츠, 80일간의 세계일주, 투모로우, 캐리비안의 해적, 나비효과, 언더월드, 이탈리안 잡
KBS(총 8편) -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프리즈 프레임, 파 프롬 헤븐, 머시니스트, 스타워즈 4, 5, 6, 슈렉 2
SBS(총 7편) - 트루 크라임, 클린, 턱시도, 캣츠 앤 독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스토리 오브 어스
1) 모니터링 대상 연화 중 애프터 선셋, 시카고, 투모로우, 캐리비안의 해적, 나비효과, 언더월드, 머시니스트, 슈렉2, 트루 크라임, 상하이 나이츠, 클린, 캣츠 앤 독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파 프롬 헤븐, 스토리 오브 어스에서 남녀의 연인관계 혹은 부부관계가 등장하고 있다.
1) 해당 영화는 애프터 선셋, 시카고, 투모로우, 머시니스트, 트루 크라임, 슈렉2, 클린, 캣츠 앤 독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파 프롬 헤븐, 스토리 오브 어스, 상하이 나이츠이다.
외화다시보기모임 - 여성주의영어자료읽기위원회 바닥의 회원 중
곰, 서소, 타기, 따우, 오이와 초청간사 박봉이 외화 번역상의 성차별성 모니터를 위해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 꾸린 단기소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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