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12월호 [특집]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모니터링을 마무리하며_오골계
[특집]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
모니터링을 마무리하며
오골계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신문지 더미가 사무실 가득 쌓여있을 땐 앞이 아득한 것이 어디로든 도망갈 궁리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나른해져 버렸다. 모니터링 작업은 정말 끝나고 만 것이다. 사실 나보다 훨씬 많은 몫의 일을 한 상근활동가들을 생각하면 내가 한 일은 아주 작다. 여하튼 그들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기어이 흘러가고 만 것에 대단한 자축이라도 하고픈 마음이다.
모니터링의 시작
수개월을 같이 한 모니터링 팀의 결과물인, 책자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의 머리글을 보면 성폭력 상담소 내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입 밖으로 내는데 겪는 어려움에 대해 나와 있다. 이처럼 자신이 경험한 것이 남들과 일반적으로 공유될 수 없다고 여겨지면 말하기를 주저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망설임을 체화하게 되는 과정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일련의 것들은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이미 학습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정상의 규범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가족 형태를 지녔거나, 어울리는 무리의 아이들과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진 경우 예외 없이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해보거나 지켜본 적이 있다.
호들갑스러운 선긋기와 편 가르기를 주동했던 인물을 따라야만 어지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과거의 기억은 성폭력과 관련해 잘못된 통념에 기반해 있더라도 ‘평균’적인 인식에 기대어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신문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이번 모니터링에 참여한 것은 이런 신문의 보도태도들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지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방대’할 뿐이오.
대박이었다. 2006년 상반기에는 온갖 종류의 성폭력 사건이 신문지상에 연일 보도되면서 사무실에는 각 신문사의 신문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전례 없는 작업을 하려다보니 일이 두서가 없었다. 처음에는 기사가 실린 신문 한 장을 7명의 모니터링 팀원들이 동시에 들여다보며 한 기사마다 이야기 할 수 있는 꺼리들을 모두 쏟아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한 장의 신문을 7명이 함께 보는 것이 작업의 속도와 집중력을 얼마나 떨어트리는지 모두들 체감하고 있었지만, 기존의 작업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변경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심정 속에 사흘에 걸쳐 신문 오리기와 복사작업을 했고 그 결과 100여 쪽 되는 스크랩북 3권이 만들어졌다. 이후 팀원들은 두고두고 ‘이 걸 안 만들었다면 대체 어떻게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지만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업 결과를 더듬어 가는 것은 매번 반복되었고, 사실 이것이 우리의 모니터링 과정의 전부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신문 기사를 보며 우리가 내뱉은 말들을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쉽고 간결한 말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정리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 이라는 결과물을 내는 것도 우리의 목표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신문기사에 실린 성폭력에 관한 말들을 검토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담론을 점검’해보자며 의기양양하게 작업을 시작했지만, 비슷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기사들 속에서 선명하게 정리하지 못한 말들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비판이 소모적이라고 느끼기도 했고, 습관처럼 걸고넘어지는 기사의 일정 부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잊기도 했다. 끊임없이 내뱉었지만, 마땅히 담을 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에 점점 지쳐갔다.
서서히 말이 없어지는 모니터링 작업을 뒤로 한 모임에서 한 명 두 명씩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는 지치고 피로해서 무감각해진 자신의 시선이 투영된 모니터링의 결과물이 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두렵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완전히 잊은 거 같다고 했다. 모두가 지쳤다고 깨달았을 때마다 작업형태를 조금씩 달리하거나 작업단계를 옮기는 식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필연적이었다. 우리는 이내 작업 분위기를 환시시키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기사 분류 작업을 통해 모니터링 틀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개괄적인 모니터링 틀에 걸러졌고, 작업은 제법 뼈대를 갖춰가고 있었다. 다만, 몇몇 기사들이 사무실 한 켠에 정리되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비판의 도마 위에서 결단나지 못한 기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또다시 침묵이었다. 지난번 침묵이 피로누적에 의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했다. 특정기사가 분명 독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걸 설명해낼 마땅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그것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정리하지 못했음을 밝히는 채로 이번 작업의 마지막 과제로 남기기로 했다. 관련한 내용은 책자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의 본문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한다.
『모니터링 틀을 정리하기 위한 긴 토론 속에서 여전히 정리하지 못했던 한 가지 논쟁점은 소수자의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2006년 상반기에 기사화된 성폭력 사건은 아동이 살해된 사건, 가해자가 국회의원인 사건 등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아동이 살해된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부각시키는 보도가 많았다. 이후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후속보도에서도 피해아동이 겪는 고통을 강조하는 특징적인 보도태도가 발견된다.
(중략)만약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피해가 이야기된다면, 그 전형성에 들어맞는 피해자에 대해서만 사회적인 연민을 베푸는 방식으로 성폭력이 논의될 뿐일 것이다.
(중략)이런 우려 속에서도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한 방법으로 피해자의 고통과 열악함을 호소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부분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모니터링 틀 속에 이 고민은 빠지게 되었다.』 |
보일락 말락 한 끝자락
모니터링 작업의 말미에 팀원들은 드디어 경지에 이르기 시작했다. 모니터링 글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떤 신문사의 기사를 찾을라치면 그 신문사 담당이었던 모니터링 팀원은 그 기사가 놓였던 페이지 수와 기사 위치, 삽화, 기사의 상세내용을 다 읊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탄복했고, 경이로웠다. 그러나 시련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내부적으로 검토가 끝난 모니터링 글을 전문가들에게 보이고 코멘트를 받는 시점에서 팀원들은 특히, 마지막에 가장 많은 짐을 졌던 팀원인 상근활동가들은 다시 한 번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수개월 간 팀 내부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쌓아왔지만 결과적으로는 간단하게 정리된 말들이 성폭력 보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경할 수도 있는 기자들에게도 납득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 큰 벽에 부딪친 것이다.
2차 작업이란 말을 다듬는 작업 정도였지만,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팀원들은 정말로 버겁게 한 걸음씩 움직여나갔다. 모니터링 글은 어렵사리 마무리 지어졌고, 자그마한 소동 정도로 기억될 차후 행사 스케줄 조정 및 심포지엄 참석자 섭외를 끝으로 모니터링 작업은 서서히 마무리되어 갔다.
대망의 심.포.지.엄
시종 차분한 분위기였던 심포지엄은 여성단체가 성폭력 관련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에 기대하는 바와 언론계 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 비춰보게 하면서도, 그 괴리를 좁혀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서로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남성중심적인 신문사의 구조 속에서 피해자의 많은 수가 여성인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이 가지는 사건의 몰이해, 오프라인에서 판매되는 지면신문들의 수입악화가 상업성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기사들이 더욱 선정적이고 노골적이 되는 상황들이 담담하게 토로하는 기자는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 내부적인 성찰을 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역시 기자 자격으로 참석한 <한겨레>의 이유진씨는 이번 모니터링 결과를 신문사 내부 가이드라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서, 수개월 간 모니터링을 했던 수고로운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심포지엄이 있기까지 한동안 쉬면서 여유롭게 지냈는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된 심포지엄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과 그들의 관심을 보고나니 모니터링의 사후 작업에 대한 고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모니터링 작업이 단지 나와 몇몇 사람들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 언론의 가이드라인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접점을 찾기 위해 마지막 남은 노력을 더 보태야겠다.
오골계
뇌가 다섯개인 검은 색 닭 오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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