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 [모람세상]서른즈음에 쓰는 두서없는 넋두리
[2007년 1,2월호 모람풍경]
서른즈음에 쓰는 두서없는 넋두리
가락
바야흐로, 새해다. 사실 지난해는 이십대의 마지막 해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여러 특별함이 공존한 한 해였다. ‘다사다난’이라는 진부하기 그지없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일의 측면에서는‘프리랜서’란 그럴듯한 타이틀 아래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빡센 나날을 보내기도 하고, 일 없으면 핑핑 노는 불규칙한 생활 속에 돈 제때 못 받아서 전전긍긍하는 나날을 보냈다. 때론 돈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정글 속에서 웬만큼 이 세계의 룰을 익히고 나니 다시 매일 출근할 곳이 있는 직장인이 부럽다. 아무래도 새해에는 새 둥지를 찾아 날아가야 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맺은 새로운 인연 중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민우회와의 만남일 것이다. 사실 그 전까지는 딱히 여성의 관점을 가졌다기 보다는 여러 일들에 대해 부당하다고만 생각했지 행동하지 않은 측면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여성’의 관점으로 보고‘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데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민우회와 함께 난자 관련 소송을 하게 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송이 가장 큰 부담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한정되어있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지만, 후회하지 않을 싸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겠지만 그 사건을 통해 내가 조금은 발전한 것도 사실이니까.
사실 난“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알지 못했었다. 일터에서의 부당한 요구와 갖은 행태 등에 대해 힘겨웠지만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것에 의외로 큰 울림이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니 무조건 참고 말하지 않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난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갖고 있던 피해의식 때문인지 모든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어딘지 모르게 굳어 있었고 주눅 들지 않으려고 도리어 씩씩하고 털털한 척 해왔던 것 같다.‘ 내숭 따윈 필요 없어!’를 외치면서
연애 전선에서는 늘 포커페이스로 제자리에만 앉아 있든가 아니면 먼저 치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기 일쑤였다.
암튼 무언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얻는 것도 없고 나이만 먹어가는 것 같아 우울하던 차에 어느새 2007년이 다가와 버린 것이다. 마침 하던 일들도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끝이 났고,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목적지는, 학창 시절부터 가고 싶었던 울릉도. 혹시나 간다는 말만 하고 용두사미가 될까봐 주변에 여행 떠난다는 광고까지 해댔다. 그렇게 떠난 울릉도는 겨울이라 좀 스산하기도 했지만 번잡한 곳을 싫어하는 내게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기암괴석과 갖은 지형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풍광, 제주도와도 비교할 수 없이 투명한 쪽빛 바다, 따스한 해양성기후와 관광지치고는 후덕한 인심. 낮에는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밤에는 민박집에서 <화성의 인류학자>라는 책을 읽었다. 혼자 산길을 헤매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잠시, 살아야 할 이유라기 보단 아직은 할 일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 대인기피는 어쩌면 평생 지고 가야 할 마음의 장애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게 가장 큰 즐거움도, 가장 큰 고통도‘사람’이지만 무조건 피하거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새해라서, 서른이 되었다고 해서 좋은 일만 생기리란 기대 따윈 하지 않지만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면 나 또한 소중한 존재가 될 테니. 2007년엔 더 많이 웃고 싶다. 물론 민우회와 함께.
>>가락 : 딴따라 기질을 주체하기 힘든 프리랜서 기자 혹은 작가 지망생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