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 [평동사무실에서]안식년, 그후!
[2007년 1,2월호 평동 사무실에서]
안식년, 그 후!
여진
대다수 사람들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맞이 해돋이 이벤트를 통해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다른 시간테이블을 갖고 살아왔다. 그 다른 시계는 언제나 민우회였다. 적어도 최근 9년 동안. 지난해 사업평가와 올해의 사업계획을 의결하는 1월에 있는 민우회 총회. 그 준비로 12월부터 1월까지 눈코뜰사이 없이 보내다 보면 멀리서 들려오는 제야의 종소리는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시계처럼 시끄러웠고, TV 화면으로 보는 해돋이는 그림의 떡이었다. 마음 한 켠에서는 새해계획을 세워야지 하는 가슴속의 메아리에 대해 언제나‘새해 시작은 음력 설이야’라고 답하곤 하였다. 남들과 다른 뒤늦은 시작에 대한 조급 함과 사라져버린 1개월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총회의 끝남과 동시에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그러던 나에게 2007년의 시작은 이전과는 달리 아주 생소하였다. 2006년 안식년을 끝내고 복귀하는 날이 마침 새해 문을 여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복귀전이라 묘하게 긴장되는 기분으로 출근 전날 사무실에 들고 가야할 물품을 정리했다. 그동안 길들여진 야행성 생활습관 탓에 지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목욕재개하고, 초등학교 이후 하지 않았던‘가방 싸놓기’를 한 후, ‘새 나라 어린이’의 취침시간에 맞추어 잠자리에 들었다.
2007년 시무식날임과 동시에 복귀 첫날, 전체 상근자들의 회의(굿모닝 위민링크- 본부 전체 상근자들이 모여 일정을 공유하고 개개인의 삶을 나누는 시간)에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 혼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을 2006년 속에서 살고 있는 상근활동가들(총회가 끝나지 않은 그들에게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과‘과거는 없어요~’오로지 2007년의 시작만 존재하는 나. 2007년의 달력은 나에게만 존재하는 듯했다. 마치 400미터 계주를 하는 데 나 혼자만 아주 멀리 앞서와 있는 듯한 생소함이었다. 너무나도 어색하고 생뚱맞아 어리버리한 그 상황에서 문득 나의 새해 계획이 떠올랐다.
그 중 하나는‘많이 웃으며 지내기’다.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 곳이었고, 함께 한 사람들 이어서 아주 쉽게 기분이 나쁘면 표정이 굳어버리고, 화가 나면 토라져있던 나의 지난 얼굴에 대한 아주 부끄러운 반성의 결과이다.
함께 일하고 지낸다는 것은 함께 활동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함께 삶의 자세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실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의 나눔자’들과 함께 거주(?)하는 곳이 바로 내가 일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아주 쉽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누군가가 웃지 않고 무표정하면 그것이 감기 바이러스처럼 나도 모르게 전염되어 옮기도 하고, 내가 그런 표정이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나한테 사소하게 취급되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사소한 문제가 되는 것처럼‘삶의 거주’공간인 이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가 알게 모르게 스스로 옮고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좀 더 많이 웃으면 다른 사람이 웃을 수 있고 그러면 민우회에서 좀 더 빠사샤~한 기운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먼저 인사하기이다. ‘인사’는 타인과의 소통의 시작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이는 당신!‘ 당신이 거기에 있었군요!’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첫 시작이 ‘인사’라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들과 맨 처음으로 하는 말이 그 나라의 인사말이다. 멜하바, 찐짜오, 하이, 오하이요, 안녕…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고, 그 시작을 내가 먼저 하는 것이 나의 새해 계획이다. 소통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중요한 것은 말로 시작하는 것이겠지만서도.
무심코 지나쳐 왔던 일상의 나의 모습들에 대한 부끄러운 반성 속에서 올해 내가 만들어가고픈 한해의 모습은 일상에서부터 아주 작고 기본적인 것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과 실천에 옮기는 의지 갖기, 그리고 그것에 함께 동참하려는 정겨운 얼굴들과 웃으며 격려하기다.
사실 복귀 1주일 후 이러한 나의 생각이 만만치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기도 하였다. 연초 떠들썩했던 그 호락호락 캠페인 때문에 아침에 걸려 온 5통의 욕설 전화를 받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손을 떨며 울었다. 불과 한달 사이에 많이 웃으며 지내기가 웃으며 성질내기로 바뀌는 시련(?)을 맞이한 것이다.
터키 배낭여행을 하는 동안 튀르키예(터키) 사람들은 항상 먼저 웃으며 인사하였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웃을 수 있었으며 즐거운 기운이 넘쳐날 수 있었다. 소중한 경험과 배움을 삶을 자세로 익히는 것… 그것이 내가 그곳에 받은 커다란 선물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계획이지만 소가 되새김질하는 자세처럼 2007년에는 새해 계획을 되새김질 하며 지켜 나가고자 한다.
여진 : 사무실에서 항상 먼저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는 여진, 1년간의 휴식이 만들어 낸 그 넉넉함과 여유가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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