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 [문화산책]마법을 부릴 수 없는 마법사들
[2007년 1,2월호 문화산책_읽자! 보자! 놀자!]
마법을 부릴 수 없는 마법사들
홍하이영
현재 이후에 과거가 올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현재는 미래가 되고 과거는 현재가 되는 것인가. 혹은 과거가 미래가 되어 현재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해독불가한 말장난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지금은 현재다.
분절할 수 없는 시간, 분해되지 않는 시선. 영화 <마법사들>의 내용은 이렇다.
자살한 마법사 밴드의 기타리스트 자은을 추억하기 위해 깊은 산 속 구겨져 있는 카페로 밴드 멤버들이 모인다. 카페의 주인이자 자은의 옛 애인인 재성, 자신 때문에 자은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보컬 하영,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만 주변에서 맴돌기만 하는 명수.
시간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지만 시선(장면)은 현재를 미루고 과거로 회귀한다. 둘은 동시에 흐른다. 기이한 현상이다.
단 한 번의 컷(cut)뿐인 이 영화 - 컷(cut)은 화면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A의 얼굴을 보여준 후 B의 얼굴이 나온다면 이는 두 개의 컷이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카메라가 단 한 번도 꺼지지 않고 완성되었다. 배우는 1시간이 넘게 진행될 모든 대사와 동작을 다 외워야 하는 것이다.- 는 마치 인생이 한 컷이듯 연속적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특별한 기법도 없다. 영혼이 되어 애인의 곁에 머물며 립스틱을 들어 거울에 글을 쓰던 <사랑과 영혼>이나, CSI 특수 분장팀이 결합했다는 <미녀는 괴로워>에 나올법한 장면이 없다. 오히려 영혼인 자은이, 앞으로 선을 보겠다는 재성에게 꿀밤을 준다. 명수와 재성이 마실 술잔을 선반에서 꺼내준다. 재성이의 유머에 제일 큰 소리로 웃는다.
이들은 옷을 바꿔 입고 손수 파우더를 얼굴에 바르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카페 밖으로 장소를 옮긴다. 그러면 그곳은 과거가 된다. 자은은 여전히 마약을 하면서 자해를 하고, 연락두절이던 하영이는 명수와 함께 핫초코를 마시고 있다. 그러다가 그들이 다시 예전의 옷으로 바꿔 입으면 현실이 되고 만다. 노래를 부르면 죽는다는 하영이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겠다는 소심한 명수가 자리에 있다.
감독은 전작의 작품과는 다른 공간에 밴드를 배치한다. 세 여인들이 찾아갔으나 이미 사라진 <꽃섬>이나, <거미숲>의 터널같이 불확실하고 해결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실존하는‘카페’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정확히는 사람들을 버려둔다. 이곳에서는 그들이 알아서 사건을 만들고,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하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침범하는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모이기로 한 시간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밤은 점점 진해져가고 명수는 이미 취했 버렸을 즈음 휴대폰도 안 갖고 다니는 하영이가 폭설을 뚫고 카페로 들어온다. 능글맞은 재성과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명수를 뒤로 하고 손을 비비며 춥다한다. 난로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녀에게 추위는 자책감이었을까. 아니면 아쉬움인가, 혹은 후회인가.
여기에 오늘 하산하는 전직 스님이자 전-전직 국가대표 스키선수가 끼어든다. 승복 안에 AUDI가 새겨진 스키복을 입고 재성에게 맡긴 보드를 찾으러 온 것이다. 스님의 차분한 말투가 변신하여 마법사밴드의 노래를 부를 때, 자은을 위한 염불을 외다 중간에 목이 막히는 장면에서는 정말 폭소가 터져 나온다. 보는 내내 앞으로 옆으로 구를 정도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영화의 유머는 사회비판이나 정치적인 선과 멀고 오히려 일상적이고 사소하다.
살아있을 때는 사과의 아삭거리는 소리에 소름끼쳐 하던 자은이, (옷을 바꿔 입은 후)자신의 제사상에 놓인 사과를 먹는다. 영화 속에서 모든 확실한 존재는 불확실하나, 모든 불확실한 존재는 확실하다. 그렇게 밴드의 추억은 멀리 도망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과 과거의 만남은 옷 하나 바꿔 입으면 되는 것처럼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나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과거를 다시 조작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내 능력의 부재는 영화 속 사람들과 마찬가지이다. 나 때문에 자살한 자은을 막고, 하영이에게 멋진 프로포즈를 한다 하고 마법을 부릴 수 없는 이유도 안다. 분절되어 있다면 잘라내서 던져버리면 될 기억들이지만, 아무도 거부할 수 없듯 (누군가의 말처럼) 산다는 일의 상처는 개별성의 훼손에서 오기 때문이다.
홍하이영 : 민우회 신입활동가이자 마이더스의 손. 손만 대면 물건이 망가지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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