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 [쟁점과현안]직군분리제,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대안일 수 있는가
[2007년 1,2월호 쟁점과현안]
직군분리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대안일 수 있는가?
최진협
작년 11월 말 비정규직 관련법안이 날치기 통과되자마자 이어진 소식은‘우리은행이 3천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한다’ 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대부분의 언론은 비정규직 법안의 효과가 빛을 발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며 우리은행측의‘용기있는’결단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과연‘우리은행식 정규직화’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크게 고용안정확보와 차별해소에 있다. 우리은행의 정규직화 방안은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말 이외에 정규직 전환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아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몇 차례 공청회 등을 통해 발표된 자료를 분석 해보면 우리은행의 정규직화가 고용 안정확보와 차별금지.해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은행의 정규직화는 직군분리를 병행하는 것이다. 직군분리제는 기존에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하는 업무를 별도의 직군으로 분리하여 별도의 급여체계를 적용하고, 과장이상의 승진은 불가하는 승진체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승진제한의 경우 역량급제 도입안이라고 해서 4단계 직위체계를 4단계 역량급체계로 변경하면서 자동승진을 일정 자격 취득제로 바꾸고, 승진연한을 늘려 근속에 따른 승진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정규직 하위 직위에 대한 업적평가에 비해서도 강화된 차별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임금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별도의 직군으로 분리하여 역량에 따른 차등 지급을 통해 저임금을 받도록 제도화 시켰다. 즉, 기존 정규직에 비해 훨씬 불이익한 승진제도와 저임금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직군분리제는 9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은행에서 행원과 여행원을 분리하여 임금과 승진체계를 성차별적으로 운용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지금까지 은행 내 여성노동자는 여행 원제도와 외환위기 과정에서 주변화, 외부화 되었고 제일 먼저 비정규직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차별적 직군분리제의 피해효과는 대부분 여성노동자에게 미칠 수 밖에 없다. 즉, 일차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재편되었던 여성들을 또다시 직군분리제를 통해 승진을 제한시키고 임금을 적게 준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우리은행의 직군분리제를 두고 사라진 여행원제를 또 다른 이름으로 부활시킨 것에 다름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여행원제와 직군분리제가 그나마 다른 게 있다면, 여행원제가‘여(女)’를 명백하게 드러낸 것에 반해 이번 우리은행의 직군분리제는 형식적으로 직무를 기준으로 분리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성차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직군분리제를 통해 정규직화의 대상이 되는 창구텔러, 사무지원 직군, 고객관리직군 등의 업무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그리고 숙련도가 요구되는 업무다. 그래서 그동안 은행은 형식적인 계약을 두어 원하는 만큼 계약갱신을 통해 인력을 확보해나갔다.
그러나 비정규직 법안의 ‘2007년 7월 이후부터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무기 계약 전환 조항’으로 인해 더 이상 그것이 불가능하자,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계약기간을 두어 고용해온 관행 자체가 불합리하였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기계약 전환’이 곧 고용안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은행의 ‘계약직 인사관리개선안(2005. 12. 29)’과 ‘인사연수제도 개선안 공청회 자료(2006. 7)’에 따르면 3년 계약을 1년 계약으로 단축하고, 개인업적평가제와 개인성과급제를 대폭 확대 적용하여 2년 이상 고용 시 무기계약 전환 후에도 계약해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고용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우리은행의 ‘정규직화’가 고용안정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도 불투명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렇듯, ‘우리은행식 정규직화’는 고용안정도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차별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2007년 7월부터 시행될 기간제법에서 정한 기간제에 대한 차별처우 금지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직군분리제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으로 양극화되었던 노동자를 직군분리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양극화 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그리고 그 양극화의 아래는 여성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우리은행의 직군분리제를 통한 ‘정규직화’는 비단 우리은행의 문제만 아니라 제1.제2금융권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서비스․유통부문, 공공부문 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직군분리제가 확대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별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고착화될 것이다.
따라서 직군분리제가 갖고 있는 차별적 성격이 과연 비정규직, 나아가 여성 차별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의식의 공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진협 :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비정규직 관련 글을 쓰면 속이 많이 상합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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