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 [쟁점과현안]끝나지 않는 사건, 계속되는 질문
[2007년 1,2월호 쟁점과현안]
끝나지 않는 사건, 계속되는 질문
이임혜경
[시민의신문 성폭력 사건의 개요]
수차례에 걸친 시민의신문 이형모 대표이사의 성희롱에 대해 2006년 9월, 시민의신문 유관단체 간사이던 피해자가 진술서를 썼고, 2004년 11월에 발생했던 시민의신문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이형모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한 공문서를 이 진술서와 함께 시민의신문 간부 5인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내면서 사내에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시민의신문 최고 경영자의 성추행사건에 대한 규탄 및 경영정상화를 위한 직원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직원대책위는 ‘이형모 사장 사태에 책임지고 시퇴하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형모 사장은 전 직원들 앞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 후 수 회에 걸친 이사회가 열리면서‘사표를 수리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와 표결을 통해 사표를 반려하기로 결의’되기도 했으나 4회 이사회에서 ‘이형모 본인이 사퇴 의사를 고수하여 9월 30일자로 대표이사 및 이사직 사표 를 수리한다’는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
오래 전,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열을 삭히지 못해 밤마다 울며 혼자 끙끙대고 고민하며 뜬 눈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문제’를 위해 내가 투여했던 마음과 정신과 시간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을 정도다. 혼동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 사람과의 대면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의 문제점과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말로 한다고 해서 뭔가가 해결된다거나 고리를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건 아니다. 괴로운 상태에서만은 빠져나오고 싶었을 뿐이다.
말문을 열었다. 심호흡을 하며 평정을 찾고자 했으나 목소리는 떨렸고 심장은 뛰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 감정은 격앙되어 갔고 서러움 같은 느낌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는 내내 내 눈을 쳐다보는 상대방의 눈빛으로 차분해지는 내 기분을 감지했다.
‘진심으로’ 문제를 듣고 내 마음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인 듯 했다. 얘기 중간중간 상대방이 던진 말은 이런 것들이다.‘ 그런 의도가 조금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줄은 몰랐다.
흔히들 변명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이런 말들이 변명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느껴졌고, 분노와 상처라는 말만으로 똘똘 뭉쳐있던 내 마음이 풀어지며 가벼워졌다. 이후 그 사람은 나를 대하는 태도와 생활에서 변화를 갖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읽혔다.
값진 경험이었다. 진심으로 반성을 하는 사과를 받는 것, 무엇보다도‘미안하다’는 말의 실천이 이렇게 내 분노와 고통을 가볍게 하고 홀가분하게 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상대방의‘진 심’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 사과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건의 개요에 나타나 있듯이 이형모 전 사장은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동안 4명의 직원을 성추행 및 성희롱하였고 이에 대해 자신의 행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내부 직원들에게‘사과’공문 발송과 재발방지를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이형모 전 사장은 또 다시 직원을 성희롱 하였고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퇴를 한다.
그 당시 이형모 전 사장의 사퇴를 두고 이래저래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내용은 사실 안들어도 비디오다. 이형모 전 사장의 지인 중에는 사건이 부풀려진 것이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설사 성희롱을 했다하더라도 이렇게 처리하기에는 아깝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이렇듯 떠도는 풍문 말고 활자로 드러난 논평도 있다.
‘...이 대표가‘성희롱’으로 얼마만큼 큰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과문에 나타난 문맥으로는 그의 사회생활이 더 이상 불가능한 것 같다. 한 인간이‘성희롱’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공인으로서의 생활을 순식간에 종지부 찍어야 할 정도로 이 사회는 정말 건강한지 시민사회단체의 알레르기 현상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은 지난시기 장원 씨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 시민의신문 이형모 대표이사‘성희롱’관련 사퇴, 문제 있다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 논설주간. 2006.9.14) -
바로 다음 날인 9월 15일에 같은 사람이 또 이형모 전 사장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논평을 냈다. ‘사적 분쟁은가혹한 압력보다 사법부의 판단에 의뢰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중간제목 아래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성적인 사안을 이렇게 처리한다면 법원은 불필요하다. 모든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가,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법적 판단에 의뢰하지 않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든 사회적 직무를 포기하게끔 압력을 가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 점에선 C모간사의 가혹한(?) 요구에 승복한 이 전 대표도 할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마지막 부분에 이 전 대표를 타박(?)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다. 피해자가 가혹한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뒤 이형모 전 사장은 직원들 앞에서 사과문을 낭독했다.
‘시민의 신문과 시민운동 종사자들의 명예를 도매금으로 매도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 사퇴는 물론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
그러나 이형모 전 사장은 그 말에 잉크도 마르기 전 10월, 아시아교육연구원 개원식 사회를 보기도 하고 주주총회에 나타나 사퇴를 번복하기도하고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부끄러운 일을 안했다’며 관련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급기야 지난 1월 9일에는 직원들을 상대로 1억 8천만 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렇듯 앞의 최 논설주간이 걱정한 만큼 이형모 전 사장은 사회생활이 불가능하지 않았고 물론 공인으로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지도 않았다. 그 정도로 이 사회가 건강하지는 않다. 당신같이 가해자 걱정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는 이렇게 돌아간다.
자신의 잘못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반성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위 논평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가해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동정적이다. 사건을 둘러싼 주변인들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피해자가 감당해야하는 사회적인 부담보다는 한순간 흔들린 가해자의 권위에 대해 더 많은 마음을 쏟아주는 덕분에, 가해자는 스스로를 동정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한다.
한 인터넷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형모 전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성 관련 문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가 어렵다. 사실은 못 밝히면서 상황만 부끄러운 일로 번지기 때문에 (사퇴를)한 것이다.”
본인은 부끄러운 일을 안했고 현재도 꽤 당당한 듯 보이는데, 글쎄, 이렇게 몇 개월 동안의 이형모 전 사장과 그 주변인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나는 꽤나 당황스럽다. 그리고 내 시선은 점점 가혹하고 냉정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애초 가해를 했을 당시 그것이 ‘범죄’이니 그만 멈추라는 말과 함께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이형모가 발표했다는 사과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그 당시 당신은 무엇을 사과한 것인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행동은‘시민의 신문과 시민운동 종사자들의 명예를 충분히 도매금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 같은 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뭘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한 것인 지도 알고 싶다. 당신은 반성을 위해 어떤 시간을 가졌나.
사과문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발표’에 끝나지 않고 무게감을 갖기 위해 진심을 담을 때 어려운 일이다. 해야 할 일도 지켜야 할 일도 많고 앞으로 성찰하고 반성할 일도 있는 것이다. 진정한‘사과’란 그런 것이다. 어디어디를 사임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하지 않고를 피해자나 조직과 합의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알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 하는 것이 반성이고 사과의 자세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시민의 신문의 복잡한 상황을 만든 것은‘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을 갖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당신 때문은 아닌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라. 스스로 책임지고 실천하는 반성의 시간을!
>>이임혜경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힘든 일이 있을 때나 괴로우면 도망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문을 겁니다. ‘그래, 이 순간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어.’ 근데 저 성장하고 있는 거 맞아요?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소식지인 [디딤] 통권 42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하여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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