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 [쟁점과현안]호樂호樂캠페인을 추억하며
[쟁 점 과 현 안]
호樂호樂캠페인을
추억하며
다라 ●
‘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호칭 바꾸기, 호樂호樂캠페인’은 12월 말 온라인사이트를 오픈하고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호樂호樂캠페인’은 평소 사용하는 호칭들이 결혼 제도 속에서 불편하게 다가온 경험 사례를 모집하고 드러내어 가족내 호칭들이 가족관계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가족 내 개인과 개인이 보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부르면 부를수록 즐거운’대안 호칭을 함께 찾아보고자 시작된 캠페인 입니다.
1월 초, 주요 일간지에 캠페인 관련 기사가 실리면서 방문자가 급속히 늘며, 특히 비방과 욕설, 악성 루머들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 문제와 함께 논쟁위주의 선정적인 언론보도, 진행상의 문제 등으로 인한‘며느리’의 어원 논쟁비화 등으로 캠페인의 취지가 흐려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제안으로 토론방을 개설하고, 안팎의 부단한 노력으로 어원논쟁과 욕설.비방글의 불길을 잡아 사이트 운영을 정상화 하였습니다.
캠페인 취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게시판 내에 욕설.비방글에 대해 자정노력을 기울여 주신 많은 누리꾼들께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온라인게시판에는 캠페인의 충분한 근거가 되어 준 가족호칭에 관한 생생한 경험과 의견들이 올라왔으며, 호칭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사회적 쟁점이 되어‘다음’과‘인터넷 한겨레’토론방에서 찬반투표가 진행되는 등 불평등한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점이 공론화 되었습니다.
벌써, 옛날 일이 되었다. 빛의 속도…까지는 아니지만 못지않게 빨리 집중되었다 흩어지는 누리꾼들의 관심이 호락호락 사이트에서 떠난 것이. 하지만 아직도 호락호락사이트를 접속할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그새 습관이 된 긴장과 불안이 마음을 스친다.
출근,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똥글 처장이 의연하게‘이정도 백러쉬(backlash)는 예상했다.’라고 말할 때, 나는 충격으로 연신 뻐끈한 뒷목을 두드렸다. 대표님들이 여유 있게 웃으며 ‘군가산점 폐지운동 때도 대단했었지.’하실 때, 나는 이상하게 식욕이 없고 등과 어깨의 원인모를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하루 동안에 수백 개의 글들이 올라오고 실시간 댓글이 달렸다. 상근자들의 출퇴근에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 누리꾼도 있었다. 퇴근하면 집에서 맛난 치킨사드시라는, 게다가‘껍질은 벗기고 드세요’라는, 격려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글에 황당해 한 적도 있었다. 댓글에 진지하게 대응하면 내용과 상관없는 조롱과 비아냥이 되돌아왔고, 위트와 재치로 대응하면‘장난하냐’며 화를 냈다.(-_-;) 대응하지 않으면 논리에 자신이 없는 거라며 또 조롱이 붙었다. 이것 참… 어찌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대책이 안서는 게시판 상황에 당황하고, 도를 넘어서는 일부 누리꾼들의 공격에 충격받으면서도, 거 참 이상하지, 비상 등이 켜진 것처럼 눈은 반짝, 게시판을 모니터하느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집중하고 있어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결국 ‘그’를 만나고 말았다. 민우회 붙박이 신, ‘야(夜).근(勤).신(神)’을…ㅠ.ㅠ(이제 그만 물러가라~물러가~! 훠이훠이~!)
그렇게 호.호.캠페인은 나의 민우회 생활에 굵직한 선을 그으며 여러 가지 추억을 새겨 넣었다.
야근신’과의 조우에 못지않게 내게 중요한 사건은, 댓글을통해 여성운동에 대한 적나라한 사회적 통념과 마주한 일이었다. 물론 잠시 게시판을 뒤덮은 글들이 사회의 평균적인 인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세력화된 인식집단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렬하고 일방적이었던 첫 만남에서, 이들이 내뱉은 것들 중 일부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답하려고 애썼고,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던 몇 가지를 적어 본다.
게시판을 잠시라도 둘러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 캠페인이 다루는 내용이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이며 세상에 ‘더 중요한 문제’가 많으므로 그에 더 집중하라는 내용이 참 많았다. 이런 충고는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이 캠페인을‘쓸데없다’고 평가하는것이, 자신이 결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감수성이 없어서가 아님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방어를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런‘쓸데없는’캠페인을 하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나 사회를 바라보는 식견에 있어 우위에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노골적인 성차별주의자로 판단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즐겨 선택할 만한‘비판’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여러 형태의 억압, 고통에 대해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사소한지를 자신이 결정할 수있다는 태도는 분명 오만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판단이 그 억압을 경험하는 당사자의‘외침’을 배제하고 있음을(이런 글의 아래위로 특정 호칭의 사용이 불쾌하고 불편하다는‘당사자’들의 사례와 주장들이 올라와 있다), 바로 그것이 그 억압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털끝만큼도 성찰하지 못하는 이런 말들은 충분히 불쾌하다.때로는 노골적인 욕설글보다 더욱.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던 중에‘불쌍한 구녕들… 여성부는 뭐하고 있는지 쯧쯧…’과 같은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여성가족부든 사회단체든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성들을 ‘구녕들’로 환원시키는‘당신’의 시각이 바로 그러한 참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모른단 말인가.
또한 ‘더 중요한 문제’로 나열된 문제들‘미혼모, 자녀양육, 성매매 여성들의 새 삶터 제공…’을 보면,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불쌍하고 약한‘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거나, ‘모성’처럼 자신의 권력에 위협적이지 않은 주제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위협하고 주변의‘착한’여성들을 물들이는 일상적.문화적 성차별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수천 년이 지나도 그들에게‘중요하다’는 말을 못들을 것이다.
또 하나는‘여자도 군대가라~!’이다.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이 댓글은 그러나 여성주의적 이슈에 붙는‘고정 레파토리’라고 한다. 게시판에서 재미(?) 있었던 것이 있는데, 일부 누리꾼들은 호락호락캠페인이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피해의식’의 절정을 보여준 것은 ‘일부남성들’이었더라는 것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호칭’으로 캠페인 주제를 한정했음에도, 그 먼 곳까지 일부러 방문해 열성적으로 악플을 달고, 뜬금없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군대가라~!’를 외치는 일부 남성들의 ‘피해의식’은 실로 많은 사람들을 놀래켰다.
군대는 우리사회의 커다란 상흔의 대량생산 공장이다.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그곳에서 억울하게 죽고, 다치고, 모욕당하고, 구타당하고, 연인을 잃고, 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한다. 게다가 그러한 박탈이 모든 남성들 안에서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이 모든 박탈을 고스란히 경험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유유히 그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빗겨나가 연애를하고, 돈을 벌고, 자존감을 지킨다. 그러나 너무나 강력하고 절대적인 대상(군대-국익-국가)에 대한 반항을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착한(!)’남성들에게, 결국 군대는 ‘어른’, ‘진짜 남자’가 되게 하는 곳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러한 강박적인 순종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상처와 분노는, 더쉽고 안전한 대상을 찾아 우회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병역기피 연예인, 된장녀, 여성운동….
여성들은 사회 혹은 관습(즉, ‘남성들’이 구축한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를 절대 쉽게 말하지 못한다.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 ‘내가 나쁜 년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너무 인내심이 없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내가 잘못되어서가 아닐까’ 끊임없이 반문한다. 여성문제에 있어서 ‘공개적인’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이 ‘실제로 느끼는’ 부당함이 구조적인 모순과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느낌’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에 있다.
우리가 지금껏 질리도록 해온 이러한 자학적인 자기검열을 권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여성이슈에 대해 분노를 표현할 때 약간의 자기성찰이 사회적으로 권장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너무이른 꿈일까. 지금 자신이 내뿜는 분노의 대상과 이유가 정당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캠 페인을 진행하면서 여러 분들이 많은 의견을 들려 주셨다. 반가워하고 지지해 주신 분들은 큰 힘이 되었고, 구체적인 비판과 조언으로 부족함을 지적해 주신 분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일상’의 옷을 입고 당연한 척 행해지는, 그리고 그 당연함을 재생산하는 ‘말’속의 불평등 드러내기는 중요한 이슈이다. 여러분들이 짚어주신 부족함을 보완해, 좀 더 설득력 있는 기획으로 다시 한 번 세상과 마주할 호락호락 캠페인 II를 기대해 주시길.
마지막으로 많은 부분 ‘남성’과 ‘여성’으로 주어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갑갑하고 아쉽다. 호樂호樂캠페인 게시판에서 보여진 성별 동질성에 대한 강박이 끔찍했음에도, 성별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다양한 정체성, 남성들 간의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분명 내게 있는 성별적인 고정관념과 이분법적 편가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라. 한국여성민우회 신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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