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호[민우칼럼 창]여성운동의 기록보존시스템 마련, 시급하다
[민 우 칼 럼 창 ]
여성운동의 기록보존시스템 마련,
시급하다
권미혁 ●
민우회가 어언 스무돌이 되었다.
그래서 20주년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여성운동 역사의 적어도 한 페이지는 민우회가 쓰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나는 스무돌 행사 중에서도‘20주년 운동사 펴내는 사업’을 제일 기대하고 있다.
모든 역사서술이 그렇겠지만 사료가 잘 보관되어 있어야 제대로 된 서사가 나온다. 지난 20년 동안 민우회가 해온 엄청난 일의 양을 생각하면 아이템만 나열해도 A4용지를 한참 넘길 것이다. 거기에 매순간의 치열한 고민과 평가까지 생생한 육성으로 남아있다면 여성운동사에서의 기록적 가치는 상당하리라 본다. 이런 과정은 여성운동 후배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운동사를 정리하면서 보니 아쉬운 점은, 그나마 민우회에선 꽤 남기려고 노력했음에도 1차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펴냈던 기관지, 자료집, 평가서 등을 토대로 집필위원들이 작업하고 있지만 당시를 복원하기엔 한정된 자료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상당부분 활동 경험자들의 구술에 기대게 되는데 문제는 구술할 당사자들 대부분이 당시의 일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다 심지어 적합한 구술자와 연락이 닿지 않기도 한다는 점이다.
1차 자료가 이렇게 부족한 데는 과거독재정권 시절, 정부의 사찰을 피하기 위해 가능하면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전통도 작용했지만(초창기 민우회도 서대문서에서 담당형사가 수시로 들락거렸었다) 기록을 분류, 보존하는 시스템의 부족도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그동안 이런 관리에 비용을 들일 만 한 여유가 우리에게 없었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활동의 기록과 보존에는 우선 이 업무를 전담할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록을 보존할 유, 무형의 공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오로지 기록만을 담당할 상근자를 둘 수 없는 형편이다. 또한 대부분의 단체가 당면과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찰 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있어 자료수집과 보존은 뒤로 미뤄지기 마련이었다.
올해 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20주년이며, 평화여성회는 10주년이다. 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은 2년 후 20주년을 맞는다. 또한 올해는 87년 6월 항쟁이후 20년이 되는 해이다. 개인적으로 당시 6월 항쟁 전후해서 여성들이 어떻게 싸웠고 그 성과가 지금의 여성운동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쓰고 있는데 이 부분은 자료가 더욱 없다보니 어려움이 많다.
사정에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성단체에서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 본다. 해서 이참에 여성운동의 기록보관시스템을 공동으로 구축하는 것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해 본다. 자료의 기록, 보관에 만만치 않은 자원이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 단체의 역량만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료의 선택 자체에 이미 일정한 철학이 담겨있는 것인데, 자료를 쌓아놓는 것 이전에 동시대에 같이 운동을 하는 우리들도 자신의 사업에만 매몰되어 여성운동의 각 시대별 점검과 의미부여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 여성운동은 한편으로는 서로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분화하여 가고 있다. 이같은 분화와 다양화가 추세라면 더더욱 여성운동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서로 소통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현재 민우회 20주년 운동사는 그간의 운동사 정리가 대부분 몰성적이거나 단일한 범주로서 여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역사적 줄거리를 따라가는 통사적인 방식이 아니라 몇 가지 주제별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우회 운동의 논쟁사, 리더쉽, 생활과 지역운동, 그리고 생협, 가족, 노동(노동파트는 따로 떼어 ‘20주년 여성노동운동사’로 정리되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건강, 미디어운동 등.
이같은 서술방식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역사기록에 재미를 줄 뿐 아니라 주제에 따라 여성운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민우회운동사가 완결되면 그 성과가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전체와 공유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같은 운동사의 집필을 계기로 연말에 민우회의 모든 단위들이 모여 올해 운동을 정리하고 꼭 남겨야 할 자료의 목록을 같이 짜고 그것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장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나저나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과연가능하긴 할까? 그래도 힘들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은 해야 할 것 같다.
권미혁 ● 한국여성민우회 공동 대표. 밥과 찌개를 좋아하는 그녀, 빨강색을 좋아하는 그녀,
특히 민우회와 여성운동을 사랑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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