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4월호 [모람풍경]행복을 찾아 떠난 남인도 유람기
2007년 3,4월호_모람풍경
행복을 찾아 떠난 남인도 유람기
26days in INDIA
이미혜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 무렵 내 삶은 무작정 불행했다. 정확한 이유도 위로를 받을 만한 명분도 없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 어느 저녁 그저 무심코 전자레인지 속에서 익어가는 3분 햇반을 들여다보다‘삶이, 결국 3분 햇반’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똑같은 질량과 맛과 생김새로 진공포장된 일상들이 그제, 어제, 오늘이란 이름을 달고 차례로 공장의 트레이드밀러를 벗어나 나에게로 배달되어왔다. 어느 것을 집어 드나 차이는 없었다. 하나의 유통기한이 다하면, 또 다른 햇반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그런 출근과 퇴근과 업무와, 사소하거나 좀 중대한-그러나 전우주의 평화나 지구의 존폐나 남북전쟁발발위기나 본인의 생사와는 아무 상관없는-몇몇 트러블과 그로인한 스트레스와 한 잔의 맥주 같은 소소한 행복이 반복될 뿐이었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은, 내일은, 모레는, 다음 주는, 내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일상은 이미 대량생산되어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세상을 바꾸기로 했다. 먹고 사는 장소의 이동. ‘열대의 야자수와 카레 향과 넘실대는 아라비아 해의 태양과 코코넛, 히피들의 천국….’남인도를 설명하는 이 모든 환상적인 수식어들은 더 이상 내일이 흥미롭지 않은 스물아홉이란 애매한 나이에도 충분히 흥미진진할 만했다. 인도에 가자. 고아에 가자. 오토바이를 타자. 계획은 그 뿐이었다.
엉성한 플랜이야 어찌되었건 말건 나태한 탑승자와 달리 꽤나 성실했던 비행기는 약속한 9시간의 비행 끝에 이 오래된 대륙에 도착했다. 특유의 카레향이 밴 공항엔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와 언어가 까맣고 눈이 큰 인파들과 뒤섞여 9시간 전의 생활인을 이방인으로 만들어 줬다. 숙소조차 정해 두지 않은 탓에 당장 오늘부터 어디에서 잠을 자게 될 지, 그것부터가 이 방인의 새로운 미션. 자신의 의지에 따른 일상의 재구성이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과정은 쉬울 리 없었다. 어렵사리 택시를 잡고, 뭄바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게이트웨이오브인디아’앞에 도착했지만 성수기인 탓에 방이 날 때까지 무작정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간 건 한국을 떠난 지 19시간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싼 방이 없다는 이유로 뜻밖의 거금 17만원을 들여 선택한 별 4개짜리 호텔의 아침 뷔페식당에선 이틀 연속 바퀴벌레가 출몰했다. 목적지인 해안 도시 고아까지 가기 위한 야간열차 역시 성수기인 탓에 이틀이나 더 기다린 후에야 예약이 가능 했고, 이젠 어엿한 인구밀도 세계 1위라는 인도의 명성답게 엄청나게 붐비던 기차역에선, 세상에, 옆 자리의 아주머니가 의자에 앉은 채로 태연하게 오줌을 쌌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할수록 나는 더 피곤했다. 꿀라바 시장, 쪼파티 해변, 올드고아의 포르투갈 양식의 성당, 돌고래 투어…. 관광 가이드 책에 소개된 숱한 관광지들을 다 구경하고, 괜찮은 평점을 받은 음식점을 최대한 섭렵하는 사이 이상하게 하루는 한국에서보다 더 바빴고, 발은 늘 아팠으며, 어디를 가야할지, 무엇을 봐야할지, 머릿속은 복잡했다.‘ 왜, 굳이 한국을 떠나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일상을 벗어나면 행복이란 놈이 두 팔 벌려 달려올 줄 알았는데, 다가오는 건 이름대신 ‘꼬리아! 꼬리아!’를 함부로 외쳐대는 장사꾼과 무서운 마약상과, 먼지처럼 거리에 주저앉았다 파리 떼처럼 달라붙는 걸인들뿐이었다.
한 차례 열사병마저 앓았다. 외로웠다. 그제야 에어컨도 없는 열대의 좁은 숙소 안에서 이 피로의 원인과 마주했다.‘ 여행을 떠나왔으니 무언가 색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난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한국에서의 익숙한 습관대로 계획을 세웠고, 스케줄에 맞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의 한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쉬는 법을 몰랐다.
박제되었던 일상이 조각나고, 그 파편들이 내 의지대로 재구성되기 시작한 건 남인도에 도착한지 보름이 훨씬 지나서였다. 이동을 멈추고, 남인도의 작은 마을 안주나에서 남은 일정을 모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오래 머물기에 안전하고 편안해 보이는 숙소로 모든 짐을 옮겼다. 그 마을에서 제일 비싸다고는 하나, 하룻밤에 3만원, 우리나라의 여관방보다 저렴하다. 에어컨은 물론 발코니와 수영장마저 갖춰진 그럴싸한 빌라였다.
특별히 해야 할 무언가가 사라지니 하루의 일과는 자연히 심플해졌다. 이른 아침이든, 늦은 아침이든, 눈을 뜨고 싶을 때 눈을 뜨고 그날 의 기분에 따라 하루를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날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숙소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해변에서 낮잠과 선배쓰를 즐겼다. 혹은 좋아하는 바닷가 카페‘주리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의 맙사 시장에 들러 장을 봤고, 길거리의 전단지를 얻어 그때그때 보고 싶은 시타르 연주를 들으러 가거나 공연이 열리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잤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다보니 과식을 할 일도 없었고, 불면의 밤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고자 했을 땐 볼 수 없던 것들과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아라비아 해와 적도의 태양이,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창공의 독수리와 어느 대륙에서 흘러왔을지 모를 구름의 조각들이, 야자수 잎으로 소리를 내는 바람의 수다가, 내 방 창가에 앉은 새들의 지저귐이, 그리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이….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밤하늘을 바라보다 두 팔을 뻗으면 저 많은 별들 사이에, 그 우주에 내 몸의 일부가 담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아 오토바이를 타고 밤길을 내달릴 때도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움직일 때보다 오히려 외롭지 않았다. 무리를 하지 않으니 피곤할 일도 없었다. 행복했다.
그 지극히 단출하고 행복한 생활 속에서 ‘어쩌면 그동안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번 게 아니라, 먹고 싸기 위해 돈을 벌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연봉, 더 좋은 집, 더 비싼 옷, 없어지면 그만일 그 많은 소모품을 위하여 금보다 더 귀하다는 시간을 허비해 온 것이다. 소비만 있고, 축적이 없는 삶이었으니 허무할 수밖에….
안주나에 머무는 동안 와가또르의 해변 식당에서 만난 한 인도 청년은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지금 이 대화가 당신의 마지막 말이 될 지 그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죽는 순간을 알 수 없다. 왜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소중한 것들은 모두 놓치고서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사는가. 미래를 위해 살면서도 그들에겐 미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의 진실. 9시간이나 날아온 이 낯선 땅에서, 2차선 도로 한 복판을 느리게 걸어가는 코끼리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소떼와, 믿거나 말거나 갠지스 강에서도 산다는 돌고래와 함께, 비로소 바람과 별과 하늘과 바다와 적도의 태양 아래 숨어있던 삶의 소중한 유물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공장의 트레이드 밀러를 벗어난 일상은 노릇노릇 익어간다. 한 겨울의 한국보다 38도쯤 높은 적도의 열기 속에서 오늘도 행복하게….
이미혜 ● 세계를 내집처럼 생각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요즘 사진과 그림에 푹~ 빠져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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