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4월호 [쟁점과 현안]‘가족’정책 기본법의 험난한 여정
2007년 3·4월호_쟁점과 현안
‘가족’정책 기본법의 험난한 여정
-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 공청회를 다녀와서
다라
2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 공청회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의 공청회에서의 대립이 얼마나 첨예할지 이미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방청석의 분위기는 날카로웠다. 한 노인 단체에서는 이날 공청회 때문에 ‘버스를 대절’해서 오셨다고 한다. 삼십여 석 되는 방청석에 미리 배정된 좌석수를 훨씬 넘는 인원이 회의장 안팎을 지키고 계셨다. 이분들은 건강가정기본법을 대체하기 위한 전부개정법률안 ‘가족정책기본법’의 통과를 격렬히 반대하고 계신다. 현재 ‘가족정책기본법’은 대한 노인회와 여성단체협의회 등 일부단체의 개정안 통과 반대 압력으로 인해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6개월 째 표류중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제정하여 2005년 1월부터 시행된 건강가정기본법(이하 건기법)은 시행 전부터 많은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 이 법이 ‘저출산 쇼크’나 이혼증가’, ‘고령화’, ‘가족해체’ 등의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문제’로 인식, 정상가족이데올로기의 회귀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상의 근본원인을 묻고 사회의 변화에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기존의 가치와 제도를 고수. 강화함으로써 변화를 억누르려는 것이 법안의 기조이다. 그래서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 로 한한 건기법의 ‘가족’ 정의나 ‘건강가정’이라는 개념은, ‘이성애.혼인관계인 양성부모와 혈연으로 연결된 자녀’로 구성되지 않은, 현실속의 많은 가족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1), 다양한 형태로 ‘돌봄’과‘양육’을 나누고 있는 관계들을 수용·지원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하여 여성계, 사회복지계를 비롯한 각계의 비판이 있어왔다. 민우회 또한 많은 여성단체와 함께 건기법의 정을 촉구해 왔다.
이날 공청회의 주인공인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법명 : 가족정책기본법)’은 말 그대로‘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전면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양산하는 법명(‘건강가정’)을 중립적인 법명으로 바꾸었고, 건기법이 간과한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족정의를 수정하였으며, 가족구성원간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등에 대한 조항을 수정·보완하였다. 이러한 부분들은 건기법 시행 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각계의 비판을 수렴한 것으로, 사회의 변화에 적합하고실효성 있는 정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정책지원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 있다.
이러한 전부개정법률안의 수정 조항들에 대해 일부 단체는 강력한 반대압력을 행사 중이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법사위에서는 11월 다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여성단체협의회, 대한 노인회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대의견이 있었던 거의 모든 조항을 원래(건기법)대로 수정2)하여 의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절차를 거쳤음에도 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사실혼에 기초한 공동체를 지원 대상에 포함한 것과 법의 목적과 이념, ‘가족/가정’용어 등에 대한 일부단체의 수정 요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원래의 건기법을 조금도 수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혀 협상·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함께,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공동체나 노인독거가구 등 실존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지원대상에 포함하기 위한 개정안이 가정해체를 조장하거나 경로효친에 위배되는 것처럼 호도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공청회 당일에도 이러한 점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김화중 여성단체협의회 회장과 최성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의 진술에서는 ‘가정파탄, 해체조장’, ‘탈선’, ‘국가 위기’, ‘일탈적이고 비도덕적인 남녀관계 양산’ 등의 선정적인 발언3)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공청회 자료집 진술요지에 법안심사소위수정안 이전의 법안 을 실어놓고 이미 수정된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복하였다. 가능한 한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해야 할 ‘진술’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수렴된 수정안을 무시하고 굳이 수정전의 법안-갈등의 요소가 훨씬 많았던-을 언급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는지, 혹시 더 많은 선정적인 발언을 위한 고의적인 선택은 아니었는지 의문스럽다. 그들의 선정적인 발언에 탄식과 한숨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나라망치는 사악한’ 전면개정안 통과에 대한 투쟁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듯 결연한 눈빛을 서로 교환하는 방청석의 노인들을 보면 더욱 그런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
한 두 단체나 몇몇 개인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사회는 변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사회 구성원간의 유대와 돌봄, 다음 세대의 양육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편협한 가치판단과 배제가 아니라, 다양한 지향과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가족’안에서 돌봄과 양육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며, 또한 그 다양성이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 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법사위원회도 일부단체의 근거 없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듯, 개정안의 안건상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1) (의도적이든 아니든) ‘건강가정’이라는 개념이 논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도출하여 ‘정상가족’범주에 들지 않은 가족들을 위축시킨다는 사례가 있고, 같은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수정’하고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2005년 10월)
2) 가족정의에 포함하였던 사실혼과 단독가구 조항을 삭제하고 지원특례 규정을 두는 것으로 수정하였고, 개정안에서 삭제하였던 가정의례, 가족해체예방 등의 조항을 모두 살린 수정안을 11월 30일 법사위 소위원회에서 의결하였다.
3) “가정을 없애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고 … 가정의 해체를 조장하고 있다 …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안은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아주 무서운 일이다 ··· 저는가슴이 두근거린다.”- 김화중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발언
다라 ● 의원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편협한 가치판단으로 점철된 발언이 난무하던 공청회, 우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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