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4월호 [쟁점과 현안]모성보호에서 권리 담론으로 - 수영장 생리 할인 논의와 관련하여
2007년 3·4월호_쟁점과 현안
모성보호에서 권리 담론으로 - 수영장 생리 할인 논의와 관련하여
키라
최근 생리 결석 인정 및 수영장요금 생리 할인과 같은 이슈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겁다. 이에 대해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반응은 뚜렷하게 나뉘었다. 한 가지는 ‘당연히 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선된 제도의 오남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역차별이다’는 의견이었다. 두 의견은 사실 팽팽히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두 의견이 근거로 들고 있는 내용 자체가 논쟁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오남용을 걱정하는 측은 ‘생리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도 있다’라고 주장하고, 당연한 구제를 주장하는 측은 ‘생리 때문에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말은 둘 다 맞는 말이며 전혀 대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지금 묻고 싶어지는 것은 두 가지이다. 왜 여성들은 이제까지 수영장에서의 불편함에 대해 침묵했을까? 수영장에서 ‘표준의 몸’, ‘표준이지 않은 몸’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묻고 싶은 것은 ‘생리’가 공적 경험인지에 대한 것이다. 여자의생리가 이렇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주제인가? 언제부터 그랬는가? 생리혈이 바지에 묻은 상태로(그렇지만 개의치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를 본 적이 있는가? 대중 목욕탕 라커룸에서 생리대를 팬티에 부착하는 여자를 본 적이 있는가? 교수가 ‘생리’를 휴강의 사유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한 적 있는가? ‘생리’가 모성보호라는 거대한 국가 담론에 포섭되어 갑자기 공론화된 경향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리하는 몸’에 대한 터부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적 경험으로 여겨지는 ‘생리하는 몸’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몸’이다. 수영장에서 피 흘리는 여성이 자신과 함께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수영장에서 여자들의 생리로 인한 불편함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수영장에 있을 몸의 분비물은 생리 이외에도 많다. 발톱 손톱의 때부터, 비듬, 콧물, 방귀, 소변, 머리카락 등등. 그 모든 것보다 생리혈이 더 불결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리혈을 터부시하는 성별화된 규범의 해석이다. 생리하는 여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편하게 ‘변화된 정책’을 이용하려면 이러한 ‘생리하는 여자’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 불편함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수영장에서의 변화 뿐 아니라 더 넓은 영역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며 이는 ‘생리’와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지적되어야만 한다.
두 번째로 묻고 싶은 것은 ‘생리하는 몸’에 대해 ‘어떻게’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이다. 소위 젠틀한 사람들은 생리와 관련된 문제를 “‘가임 기간’의 여성이 생리하는 건 ‘남녀의 자연적’ 인 차이이고, 국가에서 여성의 ‘임신 가능한 몸’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것 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상식’이 여성을 모성으로 등치시켜 여성에 대한 본질적 사고를 강화한다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사고는 여성을 ‘항상 임신해있거나, 임신할 준비를 하고 있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리가 여성이 ‘가임 기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기제로서의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가임 기간의 의미가 큰(특정한 시공간의)여성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것 이외에 여성들의 개인 몸을 통해 경험되는 생리의 내용, 생리가 이들의 일상과 연관되어 있는 방식, 생리가 여성들에게 갖는 의미는 다양하고도 다를 것이다. 따라서 생리와 여성의 몸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에는 ‘모성 보호’ 가 아니라, 개인 여성의‘생리 경험’이 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모성 보호’담론은 어머니가 될 몸을 보호하는 것, 건강한 아이와 건강한 가족의 수호자인 어머니를 보호하는 것이 남성 국가가 수행해야 할 당연한 의무로 여겨지는 가부장제에 전혀 도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생리하는 여성의 몸을 이러한 ‘담론’에 의지하여 사회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은 모든 여성의 몸을 ‘예비 엄마’로 위치시켜 결국 여성의 몸을 단일화하고 남성과의 차이를 본질화 하는 담론을 강화하며 이와 무관한 여성몸-경험을 배제해 버린다. 그렇기에 생리와 관련한 불편함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은 여성의 생리 경험을 모성보호 담론 안으로 끌어가려는 경향에의 도전과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한편 ‘생리할인’에 대한 반대 의견 중 하나인 여성들이 구제책을 오남용할 것이라는, 한 마디로 ‘거짓말’할 수 있다는 상상은 ‘생리하는 몸’의 구체적 경험에 대한 상상력 없음에서 기인한다. 생리하지 않는 성인 남성의 몸이 표준인 곳에서 표준의 몸이 아닌 몸들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생리라는 경험이 공적 공간에서 드러나고 그 경험의 내용의 다양함에 대해서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거짓말’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에대해서도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생리하는 여성들의 몸이 생리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대표적 생리 경험으로써 담론화 하는 것은 제도의 변화에 의도치 않은 부정적인 효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모든 여성이 생리를 동일하게경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생리통이 없거나 덜 심한 여성들의 경험을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여성으로 일반화할 필요도 없이, 수영장이라는 공간에 특정한 여성들의 생리와 관련하여 불편한 경험들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생리통이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여성들을 구제한다기보다, 그 몸의 ‘다름’ 이 경험으로 드러나고 그 경험이 공적 영역에서 논의되고 해석되는 것을 통해 이것이 하나의 ‘권리’담론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서’라기 보다는 ‘불편해서’여야 하며, 무엇이 불편한 지, 왜 불편하게 되는 것인지와 같은 그 불편함과 관련한 몸 경험이 이야기 되고 축적되어야 한다. 그 경험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먼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키라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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